뉴스페이퍼 아카데미
← 학원 소개로 돌아가기 실제 수업 강의노트

수업에서 읽는 강의문을, 그대로 공개합니다

요약 카드가 아니라 뉴스페이퍼 아카데미 수업에서 실제로 읽는 강의문 본문입니다. 수업의 깊이와 문장 피드백의 방향을 급하게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원하는 순서로, 편하게 읽어 보세요.

학생 글이 어떻게 바뀌는지 먼저 봅니다

강의문 안에 들어 있던 합평 예시를 앞쪽으로 꺼냈습니다. 학생 이름이나 개인 정보는 빼고, 수업에서 실제로 어떤 문장을 문제로 보고 어떻게 다시 쓰게 하는지 바로 확인할 수 있게 정리했습니다.

관찰 훈련

해석을 덜어내고 눈에 보이는 동작만 남깁니다

수정 전

카페에 들어온 중년 남성. 작가처럼 보였다.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영감을 찾는 것 같았다.

수정 후

회색 코트, 검은 바지. 카운터 좌석에 앉음. 왼손 검지로 페이지 위쪽 모서리를 문지름. 7초 정도 창 밖을 보다가 다시 노트북으로 시선을 내림.

“작가처럼”, “깊이 생각”, “영감”은 모두 해석입니다. 수업에서는 먼저 보이는 동작을 기록하게 하고, 해석은 글을 쓸 때 다시 다룹니다.

시점의 제한

내가 볼 수 없는 것은 쓰지 않게 합니다

수정 전

남자의 동공이 좁아졌다.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는 지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수정 후

불빛이 눈을 찔렀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녀는 눈꺼풀을 반쯤 내린 채 나를 보았다.

1인칭은 자기 동공을 볼 수 없고, 타인의 마음도 바로 알 수 없습니다. 시점을 지키면 정보는 줄지만 장면의 빈 곳이 살아납니다.

내적 독백

생각은 길게 설명하지 않고 동작에 붙입니다

수정 전

오늘 것은 괜찮은 편이다. 어제는 열 마리뿐이었고 상태도 별로였다. 손님 눈에 잘 들어오는 것 같다.

수정 후

한 마리가 꼬리 쪽으로 살짝 휘어 있었다. 아래에 깔아야지. 전화기가 울렸다. 액정에 ‘수산’이라고 떴다. 오늘도 우럭인가.

내적 독백이 길어지면 수필처럼 설명이 많아집니다. 짧은 생각이 동작과 붙을 때 인물의 직업, 습관, 감각이 보입니다.

합평 정리

클리셰 대신 한 사람의 3분을 씁니다

수정 전

한여름 볕 아래서 그는 하루 종일 깃발을 흔들었다. 아무도 그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는 묵묵히 깃발을 흔들었다.

수정 후

깃발 봉이 손바닥의 같은 자리를 눌렀다. 왼손은 주머니 안에서 껌 포장지를 만지작거렸다. 11시 47분. 점심 교대까지 13분.

“보이지 않는 노동자”라는 익숙한 서사를 반복하지 않고, 손바닥·껌 포장지·시간처럼 그 인물에게만 붙은 구체를 찾게 합니다.

01

기초 강의: 문학은 왜 존재하는가

문학은 왜 존재하는가

게으른 사유, 사회의 파괴, 재현의 윤리, 그리고 문학의 역할

고등학교 문예창작과 지망생을 위한 강의서

주요 텍스트: 하성란, 「당신의 백미러」 (1999) / 기형도, 「안개」 (1985)

1. 악의 평범성 —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1961년 예루살렘. 한나 아렌트라는 철학자가 법정 방청석에 앉아 있습니다. 피고인석에는 아돌프 아이히만이 서 있습니다. 유럽 전역에서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수용소로 이송한 나치 관료입니다. 아렌트는 괴물을 볼 준비를 하고 갔습니다. 살기 어린 눈, 광기에 찬 연설, 인간 이하의 무언가를 기대했습니다.

법정에 선 아이히만은 대머리에 안경을 쓴, 서류 정리를 잘하는 중간관리자였습니다. 자신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반복했고, 유대인에 대한 개인적 증오는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거짓말이 아니었습니다. 아이히만은 실제로 유대인을 특별히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단지 생각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이송 서류에 적힌 숫자가 사람이라는 것을, 그 사람들에게 아이들이 있고 저녁에 먹던 수프의 맛이 있고 잠들기 전 나누던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한 번도 구체적으로 상상하지 않았습니다. 생각하지 않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했습니다.

아렌트는 이것을 '악의 평범성'이라고 불렀습니다. 악은 뿔 달린 괴물의 형상이 아니라, 출퇴근하고 월급을 받고 상사의 지시에 고개를 끄덕이는 평범한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 악의 조건은 잔인함이 아니라 사유의 부재라는 것.

이 이야기가 여러분의 글쓰기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아직 모르겠다면, 잠시 기다려주십시오. 이것은 글쓰기 기법의 문제가 아닙니다. 문학이 왜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지의 문제입니다.

* * *
2. 분류는 지우고, 지움은 파괴한다

인간의 뇌는 효율의 기계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무한한 정보를 처리하기 위해 뇌는 끊임없이 분류합니다. '의자'라는 단어를 보면 앉는 물건이라는 정보가 자동으로 처리되고, 나뭇결의 무늬나 다리의 흠집이나 등받이에 남은 누군가의 체온 따위는 삭제됩니다. 이 자동화 덕분에 우리는 세상을 빠르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자동화가 사물이 아니라 사람에게 적용될 때 벌어집니다.

'노숙자.' 이 단어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 뇌는 거리에 누운 사람의 이미지를 꺼내옵니다. 술 냄새, 골판지, 더러운 옷. 이미지 처리 완료. 뇌는 다음 정보로 넘어갑니다. 그 사람이 한때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며 아침마다 일어났다는 것, 좋아하는 노래가 있었다는 것, 어떤 구체적인 사건이 그를 거리로 밀어냈다는 것 — 이런 것들은 분류 과정에서 소거됩니다.

'트랜스젠더.' 이 단어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에도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뇌는 뉴스에서 본 이미지, 누군가의 농담, SNS의 논쟁을 순식간에 불러오고 분류를 끝냅니다. 한 사람이 회색 원피스 앞에서 한달에 한 번씩 멈춰 서서 한숨을 쉬는 장면, 바이올린 선율에 맞춰 손가락이 꽃잎처럼 열리는 장면, 봉고차 뒤칸에서 사발면을 먹으며 "루나는 달의 여신이래요"라고 말하는 쉰 목소리 — 이런 것들은 분류의 바깥에 있습니다.

분류는 효율적입니다. 그러나 분류는 지웁니다. 그리고 지워진 것이 한 인간의 구체적 삶일 때, 그 효율은 폭력이 됩니다.

아이히만이 한 일이 정확히 이것입니다. 이송 명단 위의 이름들을 숫자로 분류했습니다. 숫자에는 얼굴이 없고, 얼굴이 없는 것에는 고통이 없습니다. 고통이 없는 것은 처리할 수 있습니다. 아이히만의 악은 잔인함이 아니라 추상화였습니다. 구체적 인간을 추상적 범주로 바꾸는 습관, 그것이 대량학살을 가능하게 만든 정신적 조건이었습니다.

이 메커니즘은 아이히만에게만 작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범죄자.' '불법체류자.' '정신병자.' 이 단어들은 각각 수만, 수십만 명의 구체적 인간을 하나의 범주로 압축합니다. 범주 안에 들어간 사람에게는 얼굴이 사라집니다. 얼굴이 사라진 사람에게는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추방할 수 있고, 격리할 수 있고, 무시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양심의 가책은 거의 발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추방한 것은 '사람'이 아니라 '불법체류자'이기 때문입니다. 범주에는 고통이 없으니까.

이것이 게으른 사유입니다. 생각하지 않는 것. 구체적으로 상상하지 않는 것. 눈앞의 사람을 이미 알고 있는 범주 안에 집어넣고 처리를 끝내는 것. 이 게으름은 개인의 차원에서는 무관심이고, 사회의 차원에서는 체계적 폭력의 토대가 됩니다. 20세기의 대량학살들은 모두 이 과정을 거쳤습니다. 먼저 범주가 만들어지고, 범주 안에 사람들이 넣어지고, 범주 안의 사람들에게서 구체성이 박탈되고, 구체성을 잃은 사람들이 처리됩니다.

물론 여러분은 아이히만이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뇌도 같은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뉴스에서 '난민 500명 익사'라는 헤드라인을 보고 3초 만에 스크롤을 내릴 수 있는 것은, 500이라는 숫자가 500개의 구체적 삶으로 변환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도덕적 결함이 아닙니다. 뇌의 설계입니다. 뇌는 효율을 위해 만들어졌고, 구체성은 효율의 적입니다.

그래서 문학이 필요합니다.

* * *
3. 문학은 뇌의 효율에 맞서는 장치다

문학이 하는 일은 본질적으로 하나입니다. 분류를 거부하는 것. 추상을 구체로 되돌리는 것. 뇌가 자동으로 처리하고 넘어가려는 것을 붙잡고 "아직 안 됐다, 더 봐라"라고 말하는 것.

하성란의 「당신의 백미러」를 봅시다. 이 소설의 중심인물 최순애는 트랜스젠더입니다. 그런데 소설 어디에도 그 단어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소설은 결말에서조차 직접 말하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만약 첫 문단에 "최순애는 트랜스젠더였다"라고 적혀 있다면, 독자의 뇌는 즉시 분류를 시작합니다. 그 단어에 이미 달라붙어 있는 이미지들 — 편견이든 동정이든 호기심이든 — 이 독자와 최순애 사이에 벽을 세웁니다. 독자는 최순애를 만나기도 전에 최순애를 이미 알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분류가 끝났으니까.

하성란은 이 분류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대신 독자를 남자의 눈 속에 넣어, 최순애를 아주 오랫동안 바라보게 합니다. 명동 코스모스 상가의 고정대 위에서, 감시카메라의 모니터 너머로, 찌고이네르바이젠 선율이 흐르는 매장 안에서. 독자는 최순애의 손에서 CD가 사라지는 순간의 경이를 경험하고, 라스베이거스 나이트클럽에서 은색 상자에 칼이 찔리는 동안 "날 믿으세요"라는 속삭임을 듣고, 봉고차 뒤칸에서 숯불구이 오징어의 눅눅한 냄새를 맡습니다. 이 구체적 경험들이 독자 안에 겹겹이 쌓인 뒤에야 — 소설의 거의 끝에서 — 깨진 백미러에 비친 최순애의 신체 일부가 잠깐 나타납니다.

그 순간 독자의 뇌에서 분류가 작동하려 합니다. 그러나 이미 늦었습니다. 독자는 최순애의 손놀림에 매혹된 적이 있고, 새벽에 사발면을 나눠 먹은 적이 있고, "우리 아이들도 장난감 대신 마술도구를 가지고 놀까?"라는 남자의 혼잣말에 마음이 움직인 적이 있습니다. 범주가 도착하기 전에 구체적 경험이 먼저 도착한 것입니다. 이 순서가 문학의 핵심입니다. 개념이 먼저 오면 경험이 죽고, 경험이 먼저 오면 개념이 흔들립니다.

이 원리는 소설에만 작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에서도 똑같이 작동합니다. 기형도의 「안개」(1985)를 봅시다. 이 시는 공장 지대의 어느 읍을 그립니다. 안개가 자욱한 샛강, 출근길에 깔깔거리며 지나가는 여공들, 느릿느릿 새어 나오는 아이들. 시의 중간에는 기숙사 근처에서 여직공이 겁탈당한 사건과 취객이 얼어 죽은 사건이 나옵니다. 그런데 시인은 이 사건들에 대해 어떤 논평도 하지 않습니다. 분노하지 않고, 고발하지 않고, 교훈을 끌어내지 않습니다. 다만 삼륜차가 죽은 취객을 쓰레기더미인 줄 알고 지나갔다고만 씁니다.

시의 마지막 행은 이렇습니다. 여공들의 얼굴은 희고 아름다우며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 모두들 공장으로 간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독자의 뇌에서 충돌이 일어납니다. '희고 아름다운' 얼굴은 사실 햇빛을 보지 못한 창백한 얼굴이고, '무럭무럭 자라 공장으로 간다'는 것은 교육받지 못한 채 산업의 부품이 된다는 뜻입니다. 기형도는 '착취'라는 단어를 쓰지 않습니다. '비참'이라는 단어도 쓰지 않습니다. 대신 아름답다는 말과 무럭무럭이라는 말을 놓아두고, 독자 스스로 그 말들이 감추고 있는 현실과 부딪치게 만듭니다.

만약 기형도가 '이 읍의 여공들은 착취당하고 있다'고 직접 썼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독자의 뇌는 '착취'라는 범주를 자동 처리하고 넘어갑니다.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니까. 그러나 '희고 아름다우며'라는 반어 앞에서 독자는 멈출 수밖에 없습니다. 이 문장이 무엇을 말하는지 스스로 생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멈춤이 문학입니다. 소설이든 시든, 문학은 독자를 멈추게 만드는 장치입니다. 분류를 지연시키고, 그 지연된 시간 안에서 구체적 타인의 존재가 독자의 의식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것.

* * *

4. 재현의 윤리 — 쓴다는 것은 누군가를 불러내는 것이다

3장에서 우리는 문학이 분류에 맞서는 장치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기서 한 겹 더 깊이 들어가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현실에 존재하는 — 혹은 존재할 수 있는 — 누군가를 언어 위에 불러내는 행위입니다. 이 행위에는 권력이 따릅니다. 작가는 인물의 말을 만들고, 행동을 결정하고, 운명을 설계합니다. 시인은 한 사람의 얼굴을 한 행의 이미지로 압축합니다. 인물은 반박할 수 없습니다. 이 일방적 권력 앞에서 작가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나는 이 사람을 불러낼 자격이 있는가. 나는 이 사람을 어떻게 보여주고 있는가. 이것이 재현의 윤리입니다.

재현은 단순히 '있는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재현에는 선택이 개입합니다.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감출 것인가, 어떤 순서로 보여줄 것인가, 누구의 시선을 빌릴 것인가. 이 선택들의 총합이 독자가 인물에 대해 갖게 되는 인상을 결정합니다. 따라서 재현의 모든 순간은 윤리적 결정의 순간입니다.

「당신의 백미러」에서 하성란이 직면한 재현의 문제를 생각해봅시다. 1990년대 후반, 한국 사회에서 트랜스젠더는 거의 전적으로 타자의 시선 안에서만 재현되던 존재였습니다. 뉴스는 '성전환 수술'이라는 의학적 사건으로, 예능은 희화화의 소재로, 혐오 담론은 비정상이라는 범주로 트랜스젠더를 다뤘습니다. 이 모든 재현의 공통점은 당사자의 구체적 삶이 소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트랜스젠더는 언제나 '~에 대한 이야기'의 소재였지, 스스로 이야기하는 주체가 아니었습니다.

하성란은 이 재현의 관성을 의식적으로 거부합니다. 소설 속에서 최순애는 '트랜스젠더에 대한 이야기'의 소재가 아닙니다. 최순애는 마술사이고, 도둑이고, 회색 원피스를 갖고 싶어하는 사람이고, 아버지에게서 마술을 배운 딸이고, "루나는 달의 여신이래요"라고 말하는 목소리입니다. 최순애의 성별 정체성은 이 구체적 삶의 층위들 안에 묻혀 있습니다. 소설이 그것을 마지막 순간까지 드러내지 않는 것은 숨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최순애를 성별 정체성이라는 단일한 축으로 환원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재현의 윤리가 작동하는 방식입니다. 재현의 윤리란 대상을 '긍정적으로' 그리는 것이 아닙니다. 최순애는 습관적으로 물건을 훔치고, 남자의 직장에 침입해 절도를 저지릅니다. 하성란은 이 행위를 미화하지 않습니다. 재현의 윤리란 대상을 내가 미리 정해놓은 틀 — 긍정이든 부정이든, 교훈이든 동정이든 — 에 맞춰 재단하지 않는 것입니다. 인물이 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가 되는 순간, 그 인물은 인간이기를 멈추고 기호가 됩니다.

여러분이 글에서 소수자를, 약자를, 혹은 여러분과 다른 삶을 사는 누군가를 인물로 불러낼 때, 이 질문을 반드시 해야 합니다. 나는 이 사람을 나의 메시지를 위한 도구로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 사람의 고통을 나의 교훈을 전달하기 위한 소재로 소비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 사람에게서 구체적 삶을 빼앗고 범주만 남기고 있지는 않은가.

게으른 재현의 전형적인 패턴이 있습니다. 소수자를 등장시켜 차별받는 장면을 보여주고, 주인공이 그것을 목격하고 분노하거나 깨달음을 얻고, 독자는 '차별은 나쁘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이 구조에서 소수자는 주인공의 각성을 위해 존재하는 장치일 뿐입니다. 이 소수자에게는 좋아하는 음악이 없고,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없고, 잠들기 전 떠오르는 얼굴이 없습니다. 이 재현은 차별에 반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소수자를 다시 한 번 도구화하고 있습니다. 타인의 고통 위에 나의 도덕적 우월감을 쌓는 것. 이것은 연민이 아니라 착취입니다.

하성란이 「당신의 백미러」에서 보여주는 것은 이 착취의 정반대입니다. 소설은 최순애의 '비밀'을 폭로하지 않습니다. 대신 최순애가 살아가는 구체적 장면들 — 마술, 절도, 원피스에 대한 집착, 아버지의 기억, 새벽의 봉고차 — 을 보여줍니다. 독자는 최순애의 삶 안으로 들어갔다가 나오면서, 자신이 최순애에 대해 모르는 것이 아는 것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과 마주합니다. 이 '모르는 것의 자각'이야말로 재현의 윤리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지점입니다. 나는 이 사람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사람이 구체적으로 존재한다는 것, 나의 범주 안에 들어오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은 안다.

* * *
5. 보여주기는 기법이 아니라 윤리다

4장에서 우리는 재현에 권력이 따르며, 그 권력을 어떻게 행사하느냐가 윤리의 문제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실제 글쓰기에서 이 윤리는 어떤 형태로 실현될까요. 여러분이 글쓰기를 공부하며 반복해서 듣는 '보여주기(show, don't tell)'가 바로 그 형태입니다. 다만 이것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기법이 아닙니다.

'말하기(tell)'는 분류입니다. "그녀는 슬펐다"는 슬픔이라는 범주 안에 한 인간의 구체적 감정을 집어넣는 행위입니다. 독자의 뇌는 '슬픔'을 자동 처리하고 다음으로 넘어갑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경험하지 못합니다. "그는 트랜스젠더였다"도 마찬가지입니다. 범주가 도착하고, 분류가 완료되고, 경험 없이 처리가 끝납니다.

'보여주기(show)'는 이 분류를 지연시키는 것입니다. 「당신의 백미러」에서 하성란은 최순애가 회색 원피스 앞에서 "가볍게 한숨을 쉰다"고만 씁니다. 이 한숨이 무엇인지 — 갖고 싶은 것을 가질 수 없는 슬픔인지, 자신이 되고 싶은 존재가 될 수 없다는 체념인지, 아니면 우리가 이름 붙일 수 없는 어떤 감정인지 — 소설은 말하지 않습니다. 분류하지 않습니다. 대신 독자에게 그 한숨을 직접 듣게 합니다. 독자는 그 한숨 앞에서 자기 안의 어떤 경험과 마주합니다.

이 과정은 느리고, 불편하고, 때로는 혼란스럽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을 통해서만 독자는 타인의 존재를 범주가 아니라 구체적 현존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보여주기가 윤리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보여주기는 타인을 내가 이미 알고 있는 범주로 환원하지 않겠다는 태도이고, 이름을 붙이기 전에 얼굴을 보겠다는 결정이며, 4장에서 말한 재현의 윤리를 문장 단위에서 실천하는 방법입니다.

따라서 보여주기를 배우는 것은 묘사 기술을 익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을 대하는 자세를 바꾸는 것입니다. 눈앞의 사람을 범주로 처리하려는 뇌의 첫 번째 반응을 멈추고, 그 사람의 구체적 한숨, 손짓, 침묵 앞에 머무르는 훈련. 이것은 글쓰기 교실에서만 유효한 원칙이 아닙니다. 세상을 파괴하는 게으른 사유에 맞서는 훈련입니다.

* * *
6. 문학이 없는 사회

문학이 없는 사회를 상상해봅시다. 정보는 넘쳐나지만, 모든 정보는 분류된 채로 유통됩니다. 뉴스는 사건을 범주로 전달하고, SNS는 사람을 입장으로 분류하고, 알고리즘은 이미 동의하는 정보만 보여줍니다. 누구도 자기가 이미 알고 있는 것 바깥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누구도 분류 이전의 구체적 인간을 만나지 않습니다.

이 사회에서 타인은 점점 추상이 됩니다. 추상이 된 타인에게는 공감이 작동하지 않습니다. 공감이 작동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아이히만 같은 사람이 양산됩니다. 악의 없이, 증오 없이, 다만 생각하지 않음으로써 타인을 파괴하는 사람들.

문학은 이 과정에 제동을 걸기 위해 존재합니다. 문학이 읽는 즉시 이해되게 쓰이지 않는 이유, 보여주기를 고집하는 이유, 결말에서 깔끔한 해답을 주지 않는 이유는 모두 같은 곳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빠른 이해는 분류이고, 분류는 지움이고, 지움이 축적되면 폭력이 됩니다. 문학은 이 연쇄를 끊기 위해 의도적으로 느리게 작동합니다. 독자를 불편하게 만들고, 혼란스럽게 만들고, 쉬운 답을 거부합니다. 그래야만 독자의 뇌 안에서 분류 프로그램이 잠시 멈추고, 그 빈 공간에서 구체적 타인의 존재가 들어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백미러」의 마지막 문장은 "미라보 관광호텔"입니다. 남자는 기억의 퍼즐 조각 하나를 되찾았을 뿐이고, 최순애가 정말로 누구인지는 아직 모릅니다. 복도에서 스쳐간 장발의 사내가 최순애라는 것을 독자만 알고 있습니다. 「안개」의 마지막 행에서 여공들의 얼굴은 희고 아름다우며 아이들은 공장으로 가지만, 그 아름다움 아래 무엇이 있는지는 독자만 알고 있습니다. 두 작품 모두 해답 없이 끝납니다. 판결 없이. 분류 없이. 그리고 바로 그 미완의 상태가 독자에게 남기는 것 — 내가 보지 못한 것이 있다는 불안, 내 옆의 사람을 나는 정말 알고 있는가라는 질문 — 이 문학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여러분이 작가가 되겠다는 것은 이 역할을 맡겠다는 뜻입니다. 게으른 사유에 맞서는 사람, 분류를 거부하는 사람, 세상이 지워버린 구체적인 것들을 복원하는 사람. 타인을 불러낼 때 그 불러냄의 무게를 감당하는 사람. 이것은 아름다운 문장을 쓰는 기술의 문제가 아닙니다. 세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02

심화 1: 관찰 훈련

관찰 훈련

보는 것과 아는 것을 분리하는 연습
뉴스페이퍼 창작 아카데미
심화 강의 1
1부. 왜 관찰 훈련이 필요한가
지난 과제에서 발견한 것

지난 과제에서 잘 쓴 글과 그렇지 못한 글 사이에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잘 쓴 글은 모두 실제로 본 것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렇지 못한 글은 모두 머릿속에서 만든 장면에서 출발했습니다.

이것은 실력의 차이가 아닙니다. 재료의 차이입니다. 상상으로 만든 장면은 아무리 정밀하게 쓰려고 해도 어딘가 빈니다. 그 빈 자리를 작가의 해석이 채웁니다. 실제로 본 장면은 해석이 필요 없습니다. 본 것 자체가 재료이니까요.

그러면 질문이 남습니다. 어떻게 봐야 합니까? 보는 것을 어떻게 훈련합니까? 오늘 강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관찰과 해석의 차이

먼저 구분을 하나 만들겠습니다.

관찰은 대상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기록하는 것입니다. 해석은 대상이 왜 그것을 하고 있는지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겠습니다. 편의점에서 한 사람이 도시락을 데우고 있습니다.

관찰: 그는 전자레인지 앞에 서서 유리문 밖을 보고 있었다. 도시락이 다 데워지자 비닐 포장을 벗겨 쓰레기통에 넣고, 도시락을 들고 문 밖으로 나갔다.

해석: 그는 혼자 식사를 해결하는 외로운 사람처럼 보였다.

첫 번째는 이 사람의 손과 눈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기록한 것입니다. 두 번째는 그 행위에 "외로움"이라는 의미를 부여한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의 뇌가 이 두 가지를 거의 동시에 한다는 것입니다. 보는 순간 해석이 따라붙습니다. 이것이 자동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관찰과 해석을 분리하려면 의식적인 훈련이 필요합니다.

오늘 강의의 목표는 이것입니다: 보는 것과 아는 것을 분리하는 능력을 훈련하는 것.

2부. 관찰 노트의 규칙
관찰 노트란 무엇인가

관찰 노트는 글쓰기가 아닙니다. 글쓰기 이전의 단계입니다. 특정 장소에 앉아서, 한 사람의 동작만 기록하는 것입니다. 이때 규칙이 있습니다.

규칙 1: 동사만 쓰십시오

관찰 노트에는 동사만 들어갑니다. "걷는다", "만진다", "놓는다", "돌린다". 형용사를 쓰는 순간 해석이 시작됩니다. "피곤해 보이는 발걸음"에서 "피곤해 보이는"은 여러분의 해석입니다. "느린 발걸음"은 관찰입니다.

"슬픈 눈빛"은 해석입니다. "창 밖을 보고 있는 눈"은 관찰입니다. "무료해 보이는 손"은 해석입니다. "탁자 위에 놓인 손"은 관찰입니다.

규칙은 간단합니다. 여러분이 쓴 문장에서 형용사를 빼보십시오. 빼고 남은 것이 관찰입니다.

규칙 2: 신체 부위를 특정하십시오

"그 사람을 보았다"는 관찰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오른손 검지가 전화기 옆면을 문지르고 있었다"는 관찰입니다.

"사람"은 범주입니다. "오른손 검지"는 관찰입니다. 범주로 보면 해석이 들어옵니다. 신체 부위를 특정하면 행위가 보입니다. 손, 발, 눈, 입, 어깨, 무릎. 여러분이 기록할 때 이 사람의 어느 부분을 보고 있는지를 항상 확인하십시오.

규칙 3: 시간을 기록하십시오

15분의 관찰 시간 동안, 시간을 함께 적으십시오. "2분경: 오른손으로 커피컵을 집어 입에 가져갔다. 마시지 않고 내려놓았다." 이렇게 시간이 붙으면 동작의 순서와 간격이 기록됩니다. 나중에 글로 쓸 때, 이 순서와 간격이 장면의 리듬이 됩니다.

규칙 4: "이 사람은 ~일 것이다"를 절대 쓰지 마십시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규칙입니다. 관찰 노트에 추측이 들어가면 안 됩니다. "이 사람은 직장인일 것이다", "이 사람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이 사람은 피곤해 보인다". 이런 문장은 전부 해석입니다.

여러분이 기록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이것뿐입니다: 이 사람의 몸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것 이상은 여러분이 덧붙인 것입니다.

3부. 예문으로 봅니다: 관찰 노트의 잘못과 올바름

규칙을 말로만 하면 공허해지니까, 같은 장면을 두 번 기록한 예문을 보겠습니다. 한 번은 해석이 섞인 노트이고, 다른 한 번은 관찰만 남긴 노트입니다.

예문 1. 카페에서 노트북을 펼친 사람
해석이 섞인 노트

0분: 카페에 들어온 중년 남성. 작가처럼 보였다. 노트북을 까비에 올려놓고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3분: 포크를 내려놓고 한참 창 밖을 보았다. 영감을 찾는 것 같았다. 다시 노트북에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필체가 정갈했다.

8분: 전화가 와서 받았다. 짧게 통화하고 다시 쓰기 시작했다. 글쓰기에 몰두하는 모습이었다.

무엇이 문제인가

"작가처럼 보였다"는 관찰이 아닙니다. 이 사람이 작가인지 아닌지 여러분은 모릅니다.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는 표정"도 해석입니다. 이 사람이 깊이 생각하고 있는지, 아니면 배가 아픈지, 여러분은 모릅니다. "영감을 찾는 것 같았다"도 마찬가지입니다. "필체가 정갈했다"는 멀리서 필체를 판단한 것입니다. "글쓰기에 몰두하는 모습"도 해석입니다. 이 노트에서 관찰은 거의 없습니다. 전부 해석입니다.

관찰만 남긴 노트

0분: 남성. 회색 코트, 검은 바지. 카운터 좌석에 앉음. 까비에 검은 표지의 노트북을 올려놓음. 아메리카노 주문. 노트북을 펼친 채 오른손으로 페이지를 넘김. 멈춤. 왼손 검지로 페이지 위쪽 모서리를 문지름.

3분: 포크를 접시 옆에 놓음. 오른손으로 컵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 내려놓음. 고개를 창 쪽으로 돌림. 7초 정도 창 밖을 보다가 다시 노트북으로 시선을 내림. 검은 볼펜으로 쓰기 시작. 손목이 빠르게 움직임.

8분: 핸드폰 진동. 왼손으로 핸드폰을 꺼냄. 귀에 댄. 오른손으로 볼펜을 놓지 않은 채 통화. 40초 정도 통화 후 끊음. 핸드폰을 노트북 옆에 놓음. 화면이 위를 향함. 다시 볼펜으로 쓰기 시작. 이번에는 쓰다 멈추고 왼손으로 머리 옆을 긁음.

무엇이 달라졌는가

첫 번째 노트에서 이 사람은 "작가"입니다. 두 번째 노트에서 이 사람은 "회색 코트를 입고 검은 볼펜으로 노트북에 무언가를 쓰고 있는 사람"입니다. 전자는 범주이고, 후자는 관찰입니다.

두 번째 노트에서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오른손으로 볼펜을 놓지 않은 채 통화"라는 기록. 이것은 눈에 보이는 동작입니다. 그런데 이 동작 하나가 많은 것을 열어줍니다. 이 사람은 통화를 오래 할 생각이 없었다는 것, 쓰는 행위를 중단하고 싶지 않았다는 것. 그러나 관찰 노트는 이것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냥 "볼펜을 놓지 않은 채"라고만 적습니다. 해석은 나중에 글을 쓸 때 합니다. 관찰 단계에서는 보이는 것만 기록합니다.

"쓰다 멈추고 왼손으로 머리 옆을 긁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첫 번째 노트였다면 "고민하는 표정으로 머리를 긁었다"라고 썼을 겁니다. 그러나 두 번째 노트는 그냥 "머리 옆을 긁음"이라고만 적습니다. 이 차이가 관찰과 해석의 차이입니다.

예문 2. 버스 정류장에서 벤치에 앉아 있는 사람
해석이 섞인 노트

어딘부터 온 것인지 모를 아주머니가 벤치 한쪽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피곤해 보였다. 손에는 비닐봉투가 하나 들려 있었고, 그것을 가끔 내려다보았다. 봉투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신경 쓰이는 것 같았다.

관찰만 남긴 노트

벤치 왼쪽 끝에 앉음. 여성. 남색 패딩 점퍼. 오른손에 흰색 비닐봉투. 봉투의 손잡이 부분을 오른손 세 번째와 네 번째 손가락 사이에 끼움. 봉투를 무릎 위에 올림. 왼손으로 봉투 위쪽을 펼. 안을 들여다보다가 다시 닫음. 발을 바닥에 놓지 않고 벤치 다리에 올려놓음. 신발은 검은 바닥의 운동화. 오른쪽 뒤축이 닳아 흰 천이 보임.

무엇이 달라졌는가

첫 번째 노트는 "아주머니", "피곤해 보였다", "신경 쓰이는 것 같았다"라고 썼습니다. 이 사람의 나이를 추측했고, 피로를 판단했고, 심리 상태를 추측했습니다.

두 번째 노트는 이 사람이 봉투를 어떻게 들고 있는지를 기록합니다. "세 번째와 네 번째 손가락 사이에 끼움". 이것은 눈에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른쪽 뒤축이 닳아 흰 천이 보임". 이것도 눈에 보이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기록에서, 여러분은 이 사람에 대해 무엇을 느낍니까? 아무것도 느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정상입니다. 관찰 노트는 감정을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모으기 위한 것입니다.

4부. 합평: 관찰과 해석의 경계 찾기

이제 여러분의 관찰 노트를 함께 봅니다. 합평의 방법은 단순합니다.

여러분이 가져온 관찰 노트를 함께 읽으면서, 각 문장에 표시를 합니다.

○ = 관찰. 눈에 보이는 것만 기록한 문장.

△ = 해석이 섞인 문장. 보이는 것에 판단이나 추측이 더해진 문장.

× = 완전한 해석. 보이는 것이 없고 판단만 있는 문장.

목표는 ○가 80% 이상인 노트를 쓰는 것입니다. △가 많다면 관찰과 해석의 경계가 아직 흐릿한 것이고, ×가 있다면 규칙 4를 다시 보십시오.

5부. 과제
과제 1: 관찰 노트 작성
다음 수업까지 관찰 노트를 하나 작성해 오십시오.

조건 1: 장소를 선택하십시오. 카페, 지하철 역, 버스 정류장, 편의점 앞, 공원 벤치. 어디든 사람이 있는 곳이면 됩니다.

조건 2: 한 사람만 관찰하십시오. 여러 사람을 번갈아 보지 마십시오. 한 사람의 동작을 15분 동안 기록하십시오.

조건 3: 4가지 규칙을 지키십시오. 동사만 쓸 것, 신체 부위를 특정할 것, 시간을 기록할 것, 추측을 쓰지 말 것.

조건 4: 관찰 노트 아래에 다음 질문에 답하십시오.

1. 어디에서, 몇 시에 관찰했는가?

2. 관찰하면서 해석을 쓰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는가? 그때 무엇을 쓰고 싶었는가?

3. 관찰 노트를 다 쓴 후, 이 사람에 대해 모르는 것이 아는 것보다 많은가?

과제 2: 관찰 노트를 글로 전환하기 (선택)

여력이 되는 사람은 관찰 노트를 바탕으로 3분의 글을 써 보십시오. 이전 과제의 금지 조건(범주 명칭 금지, 감정 단어 금지, 교훈 금지)을 그대로 적용합니다. 관찰 노트에 있는 것만 쓰십시오. 노트에 없는 것을 더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관찰한 것이 전부입니다.

오늘의 핵심

관찰과 해석을 분리하십시오. 보이는 것만 기록하십시오. 해석은 글을 쓸 때 하는 것이지, 보는 단계에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는 단계를 훈련하면, 쓰는 단계가 달라집니다.

03

심화 2: 시점의 제한

시점의 제한

이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뉴스페이퍼 창작 아카데미
심화 강의 2
1부. 시점이란 무엇인가
글에는 눈이 있다

모든 글에는 "누구의 눈으로 보고 있는가"가 있습니다. 이것을 시점이라고 합니다. 시점은 문학 이론에서 복잡하게 분류되지만, 오늘 우리가 다룰 것은 단 하나입니다.

시점을 정했으면, 그 시점에서 볼 수 있는 것만 쓰십시오. 볼 수 없는 것은 쓰지 마십시오.

이것이 오늘 강의의 전부입니다. 규칙은 간단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지키는 것은 어렵습니다. 왜 어려운지, 어디서 무너지는지를 오늘 배우겠습니다.

"볼 수 있는 것"의 범위

1인칭 시점("나"가 화자인 글)에서 "나"가 볼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의 눈에 보이는 것: 앞에 있는 사물, 사람, 풍경.

나의 몸이 느끼는 것: 촉각, 온도, 통증, 위치 감각.

나의 귀에 들리는 것: 소리, 목소리.
나의 코에 맡는 것: 냄새.

"나"가 볼 수 없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의 얼굴 표정. (거울이 없다면 보지 못합니다.)
내 뒷모습. (돌아보지 않는 한 보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 (절대 보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의 감정. (추측할 수는 있지만, 알 수는 없습니다.)

나의 동공의 크기. (내 몸 안의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내가 없는 곳에서 벌어지는 일. (내가 없으면 보지 못합니다.)

이 목록이 단순해 보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글에서 이 규칙을 어기는 문장이 반복적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 과제들에서 실제로 문제가 된 문장들을 보겠습니다.

2부. 여러분의 글에서 시점이 무너진 지점

지난 과제들에서 시점 위반이 일어난 문장들을 모았습니다. 각각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고칠 수 있는지를 함께 보겠습니다.

유형 1: 내 몸 안의 것을 밖에서 보는 문장

남자의 동공이 좁아졌다.

이 글의 시점은 남자 자신입니다. 그런데 자기 동공이 좁아지는 것을 사람은 보지 못합니다. 느끼는 것은 "눈이 부시다", "머리가 하얀다", "심장이 빠르다" 같은 감각입니다. "동공이 좁아졌다"는 의학적 서술이지 이 사람의 감각이 아닙니다.

→ "눈앞이 환해졌다" 또는 "불빛이 눈을 찔렀다"
유형 2: 내 얼굴을 내가 보는 문장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거울 앞이 아닌 이상, 자기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을 보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 문장은 누구의 눈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까? 밖에서 이 사람을 보고 있는 카메라의 눈입니다. 그러나 이 글의 시점은 "1인칭 나"입니다. 시점이 흔들린 겁니다.

→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또는 "눈 위의 근육이 조여들었다"

유형 3: 다른 사람의 감정을 아는 문장

그녀는 지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지친"은 여러분의 해석입니다. 이 사람이 지친 것인지 여러분은 모릅니다. 어쩌면 지루한 것일 수도 있고, 화가 난 것일 수도 있고, 아픈 것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보는 것은 그 사람의 얼굴 근육, 눈의 방향, 입의 모양뿐입니다.

→ "그녀는 눈꺼풀을 반쯤 내린 채 나를 보았다" 또는 "그녀의 입꼬리가 처져 있었다"

유형 4: 내가 없는 곳을 아는 문장

전날 후배들이 하루 동안 닦았을 벽에 기대어 잔다.

이 문장의 시점은 시험 감독관입니다. 감독관은 지금 시험장에 있습니다. "전날 후배들이 하루 동안 닦았을"은 이 사람이 어제 본 것이 아니라 추측입니다. 이 3분 안에서 이 사람이 보는 것은 "벽"입니다. 벽을 누가 닦았는지는 이 3분 안의 감각이 아닙니다.

→ "학생은 매끄러운 벽에 기대어 잔다" 또는 아예 삭제

유형 5: 영화적 시점의 침투

헝클어진 머리와는 어울리지 않는 아름다운 외모, 하얀 피부에 난 상처를 붓으로 세심하게 두들겨주는 사람들.

이 문장은 "나"의 시점에서 "그녀"를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름다운 외모"라는 판단, "세심하게 두들겨주는"이라는 서술이 들어가 있습니다. "아름다운"은 판단이지 관찰이 아닙니다. 더 큰 문제는 이 문장 전체가 영화의 한 장면처럼 구성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 사람의 눈이 아니라, 이 사람을 밖에서 찍고 있는 카메라의 눈입니다. 1인칭으로 쓰고 있는데 시점은 3인칭으로 넘어간 겁니다.

→ "이마를 손등으로 문질러 닦는 순간 무심코 고개를 돌리자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3부. 시점 제한의 원리
시점을 지키면 빈 곳이 생긴다

시점의 제한은 글을 불완전하게 만듭니다. 이 사람의 눈으로만 보면, 보이지 않는 것이 생깁니다. 그 보이지 않는 것이 빈 곳입니다.

지난 강의에서 이야기한 "빈 곳"을 기억하십시오. "모르는 것이 아는 것보다 많다는 느낌." 시점의 제한은 이 빈 곳을 만드는 기술적 방법입니다.

예문으로 보겠습니다. 지난 과제 예문에서 시험 감독관의 글을 다시 봅시다.

다섯 번째 자리 학생은 자고 있다.

이 문장은 감독관의 눈에서 보이는 것만 쓴 문장입니다. 이 학생이 왜 자고 있는지 감독관은 모릅니다. 어젯밤에 공부하다 몇 시간 못 잔 것인지, 시험을 포기한 것인지, 감독관은 모릅니다. 그 모름이 그대로 글에 남습니다. 독자도 모릅니다. 그것이 빈 곳입니다.

만약 여기에 "시험을 포기한 학생이 벽에 기대어 자고 있었다"라고 썼다면 어떻게 됩니까? 빈 곳이 사라집니다. 독자는 더 이상 상상할 필요가 없습니다. 작가가 이미 답을 주었으니까요. 시점을 어기면 정보가 늘어나지만 빈 곳이 줄어듭니다. 빈 곳이 줄어들면 문학이 줄어듭니다.

시점의 제한은 캐릭터를 만든다

시점을 지키면 또 하나의 효과가 생깁니다. 이 사람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보지 않는지가 이 사람의 성격이 됩니다.

시험 감독관 글을 다시 봅시다. 이 사람은 학생들의 시험지를 보고, 다리 떠는 것을 보고, 자는 학생을 보고, 앞 감독관의 운동화를 봅니다. 그리고 시계를 봅니다. 이 사람이 보는 것들의 순서와 선택 자체가,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줍니다. 시계를 반복적으로 보는 것으로 이 사람이 이 장소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것을 독자는 알게 됩니다. 그러나 이 글은 "빨리 벗어나고 싶다"라고 쓰지 않습니다. 시계를 보는 동작만 있습니다.

이것이 시점의 제한이 만드는 캐릭터입니다. 이 사람이 무엇을 보는지를 쓰면, 이 사람이 무엇을 느끼는지를 독자가 유추하게 됩니다. 직접 말하지 않아도 보여주는 것. 이것이 보여주기의 핵심입니다.

4부. 예문으로 봅니다: 같은 장면, 시점의 차이

같은 장면을 두 번 쓰겠습니다. 한 번은 시점이 흔들리는 버전, 한 번은 시점을 지키는 버전. 차이를 직접 확인하십시오.

예문. 편의점 야간 알바
시점이 흔들리는 버전

나는 카운터 안에 서서 손님이 나가기를 기다렸다. 손님은 도시락을 까비에 깜빍깜빍 빼먹고 있었다. 혼밥이고 까라톡이니 안쓰러워 보였다. 나는 피곤한 표정으로 시계를 보았다. 새벽 2시. 아직 4시간이 남았다. 손님이 나가자 나는 카운터를 마른 행주로 닦았다. 행주에는 지문이 없어야 하는데, 어두운 조명 아래서는 잘 보이지 않았다. 비닐 장갑을 꺼버리고 맨손으로 닦았다. 손끝에 마른 먹국이 묻어와 선반 위에서 탈취제를 까밐다. 날카로운 알콜 냄새가 손가락 사이로 퍼졌다.

무엇이 문제인가

"혼밥이고 까라톡이니 안쓰러워 보였다"는 손님의 사정을 추측한 것입니다. 혼밥인지 어떻게 압니까? 까라톡인지 어떻게 압니까? "피곤한 표정"은 내 얼굴을 내가 보는 것입니다. "지문이 없어야 하는데"는 규칙을 설명하는 서술이지 이 3분의 감각이 아닙니다.

시점을 지킨 버전

카운터 안에 서서 바깥을 보았다. 손님이 도시락 비닐을 까비에 밀어 넣고 있었다. 까비 안에서 비닐이 찌그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손님이 문을 밀고 나갔다. 자동문이 닫히면서 차가운 바람이 잘려 들어왔다가 끄겨졌다. 카운터 옆 시계를 보았다. 2시 4분. 카운터 밖으로 나와 행주를 한 손으로 문질렀다. 손가락에 마른 것이 묻었다. 선반 위에서 탈취제를 까바 손가락 사이에 믿었다. 알콜 냄새가 손가락을 타고 올라왔다.

무엇이 달라졌는가

첫째, 손님에 대한 해석이 사라졌습니다. "혼밥이고 까라톡이니"가 없습니다. 대신 "도시락 비닐을 까비에 밀어 넣고 있었다"라는 동작만 있습니다. 이 사람이 누구인지, 어떤 사정인지, 알 수 없습니다.

둘째, 내 표정이 사라졌습니다. "피곤한 표정"이 없습니다. 대신 "카운터 옆 시계를 보았다. 2시 4분"이라는 동작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시계를 보는 것으로, 독자는 이 사람이 시간을 세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피곤하다고 쓰지 않아도 피곤함이 보입니다.

셋째, 설명이 사라졌습니다. "지문이 없어야 하는데"가 없습니다. 대신 "행주를 한 손으로 문질렀다. 손가락에 마른 것이 묻었다"라는 촉각만 있습니다. 이 사람이 행주를 왜 닦는지, 규칙이 무엇인지는 이 3분의 감각 안에서 나올 필요가 없습니다.

넷째, 감각이 추가되었습니다. "차가운 바람이 잘려 들어왔다가 끄겨졌다"는 첫 번째 버전에 없는 문장입니다. 자동문이 닫히는 순간의 바람. 이것은 이 사람의 피부가 느끼는 것입니다. 시점을 지키면 이런 감각이 들어올 자리가 생깁니다. 해석을 빼면 감각이 들어옵니다.

5부. 시점 점검법

여러분이 글을 쓴 후, 시점을 점검하는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간단합니다.

점검 1: 각 문장에 "이 사람의 눈에 보이는가?"를 묻으십시오

글을 다 쓴 후, 처음부터 한 문장씩 읽으며 자문하십시오. "이 문장은 이 사람의 눈에 보이는 것인가?" 보이지 않는 것이면 빼십시오.

점검 2: "이 사람은 ~할 것이다"가 있는지 찾으십시오

추측이 들어간 문장을 찾으십시오. "지친 표정", "외로운 듯한", "무료해 보이는". 이런 표현이 있다면 시점 밖으로 나간 것입니다. 동작으로 바꾸십시오.

점검 3: 이 3분 안에 있는 것만 남았는지 확인하십시오

"수십 년을 버터온 손", "전날 후배들이 닦았을 벽", "언제나 그렇듯". 이런 문장은 이 3분의 시간 밖으로 튀어나간 것입니다. 이 사람이 지금 보고 있는 것, 지금 느끼고 있는 것, 지금 듣고 있는 것만 남겨두십시오.

6부. 정리와 과제
오늘의 핵심

첫째, 시점을 정했으면 그 시점에서 볼 수 있는 것만 쓰십시오.

둘째, 볼 수 없는 것을 쓰면 시점이 무너집니다. 시점이 무너지면 빈 곳이 사라집니다.

셋째, 시점의 제한이 빈 곳을 만들고, 빈 곳이 캐릭터를 만들고, 캐릭터가 문학을 만듭니다.

넷째, 글을 다 쓴 후 반드시 시점 점검을 하십시오. 모든 문장에 "이 사람의 눈에 보이는가?"를 묻으십시오.

과제: 시점 점검 후 다시 쓰기

여러분이 지금까지 쓴 작품 중 하나를 골라, 시점 점검을 한 후 다시 쓰십시오.

방법:
1. 기존 작품을 프린트하십시오.

2. 각 문장 옆에 ○(= 이 사람의 눈에 보임), △(= 해석이 섞임), ×(= 시점 밖으로 나감)를 표시하십시오.

3. △와 × 문장을 삭제하거나 동작으로 바꾸십시오.

4. 빈 자리에 이 사람의 감각(촉각, 청각, 후각, 율동감각)을 채워 넣으십시오.

5. 원본과 수정본을 함께 제출하십시오.
제출 시 함께 답하십시오:
1. 원본에서 △와 ×가 몇 개였는가?

2. 삭제하거나 바꿀 때 가장 어려웠던 문장은 무엇인가? 왜 어려웠는가?

3. 수정 후 글이 더 좋아졌다고 느꼈는가, 더 빈약해졌다고 느꼈는가?

04

심화 3: 내적 독백

내적 독백

카메라와 사람 사이
뉴스페이퍼 창작 아카데미
심화 강의 3
1부. 문제의 발견
여러분의 글에서 사람이 사라졌다

지금까지 세 번의 강의를 했습니다. 첫 번째 강의에서는 "감정 단어를 쓰지 말라"고 했습니다. 두 번째 강의에서는 "해석을 빼고 관찰만 남겨라"고 했습니다. 세 번째 강의에서는 "시점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이 규칙들을 성실하게 따랐습니다. 감정 단어를 빼고, 해석을 빼고, 시점 밖의 정보를 빼습니다. 그랬더니 글이 깨끗해졌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여러분의 글에서 사람이 사라졌습니다.

동작은 있습니다. 감각은 있습니다. 시간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가 없습니다. 이 사람이 무엇을 판단하고 있는지가 없습니다. 이 사람이 보고 있는 것에 대해 반응하는 머릿속이 없습니다.

글이 카메라가 되어버렸습니다. CCTV처럼 동작을 기록하고 있지만, 그 동작의 주인이 생각하는 존재라는 느낌이 없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여러분의 잘못이 아닙니다. 제 강의가 만든 문제입니다. 제가 "빼라"는 말을 너무 많이 했습니다. 감정을 빼라, 해석을 빼라, 추측을 빼라. 여러분은 성실하게 빼다 보니 너무 많이 뺐을 겁니다.

오늘 강의는 다시 넣는 강의입니다. 다만, 아무거나 넣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을 넣어도 되고 무엇을 넣으면 안 되는지를 구분하는 강의입니다.

2부. 내적 독백이란 무엇인가
정의

내적 독백은 화자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생각, 판단, 반응, 기억의 편린. 소리 내어 말하지 않지만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언어 활동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적 독백은 시점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의 머릿속은 이 사람의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하는지는 나만 압니다. 그러니까 내적 독백은 시점의 제한을 어기는 것이 아닙니다. 시점의 제한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배운 것과 모순되지 않습니까? 안 됩니다. 빼야 하는 것과 넣어도 되는 것을 구분해야 합니다.

빼야 하는 것과 넣어도 되는 것
빼야 하는 것: 다른 사람에 대한 해석

이것은 지난 강의에서 배운 것과 같습니다. 여전히 금지입니다.

그녀는 지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손님은 외로운 사람 같았다.

그는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이것들은 여전히 시점 밖입니다.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상태를 단정하는 것은 내 머릿속의 일이 아니라 작가의 해석입니다.

넣어도 되는 것: 화자 자신의 사유

이것이 오늘 강의의 핵심입니다. 화자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생각은 쓸 수 있습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그 조건을 지금부터 이야기하겠습니다.

3부. 내적 독백의 세 가지 조건
조건 1: 동작에 붙어 있을 것

내적 독백은 공중에 떠 있으면 안 됩니다. 반드시 동작이나 감각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이 사람이 무언가를 보고, 만지고, 듣고 나서 머릿속에서 반응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감각 없이 생각만 떠다니면, 그것은 수필이지 문학이 아닙니다.

예문으로 보겠습니다.

동작에 붙지 않은 내적 독백

나는 행주를 닦았다. 오늘도 별일 없이 하루가 지나가겠지. 이런 밤이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오늘도 별일 없이 하루가 지나가겠지"는 화자의 생각입니다. 그러나 이 생각은 지금 이 사람이 보고 있는 것, 만지고 있는 것, 듣고 있는 것과 연결되지 않습니다. 행주를 닦는 동작과 "별일 없이 하루가 지나가겠지"라는 생각 사이에 연결 고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생각은 공중에 떠 있습니다. 작가가 이 사람의 방향을 설명하기 위해 넣어놓은 메시지처럼 느껴집니다.

동작에 붙은 내적 독백

행주를 한 손으로 문질렀다. 손가락에 마른 것이 묻었다. 선반 위에서 탈취제를 까바 손가락 사이에 믿었다. 이거면 되려나. 손가락을 벌려 코 앞에 가져갔다. 알콜 냄새가 올라왔다.

"이거면 되려나"가 내적 독백입니다. 이 생각은 손가락에 묻은 마른 것이라는 촉각에서 출발합니다. 행주를 문지르는 동작에서, 손가락의 촉각에서, 탈취제를 까바 를려보는 동작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생각입니다. 동작 → 감각 → 생각이라는 순서가 있습니다. 이 순서가 있을 때 내적 독백은 동작에 붙어 있습니다.

조건 2: 짧을 것

내적 독백은 짧아야 합니다. 한 문장, 길어야 두 문장. 길어지면 두 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첫째, 글의 무게 중심이 동작에서 생각으로 옮겨갑니다. 동작과 감각이 중심인 글에서 갑자기 긴 사유가 나오면, 독자는 글의 결이 바뀌었다고 느낍니다. 감각의 글이 갑자기 에세이가 됩니다.

둘째, 긴 내적 독백은 설명이 됩니다. 생각이 길어지면 이유를 대고, 배경을 댓고,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그러면 이 3분의 시간 밖으로 튀어나갑니다. 지난 강의에서 배운 "이 3분 안에 있는 것만 쓰라"는 규칙과 충돌합니다.

예문으로 보겠습니다.

너무 긴 내적 독백

깃발을 세워 차를 멈췄다. 사실 이 일을 시작한 건 아버지 때문이었다. 아버지도 이 일을 했었고, 그때는 지금보다 일당이 높았다고 했다. 지금은 그런 시절이 아니지만 다른 걸 할 줄 아는 것도 없으니까. 깃발을 내렸다.

"사실 이 일을 시작한 건 아버지 때문이었다"부터 "다른 걸 할 줄 아는 것도 없으니까"까지, 세 문장이 이 3분을 벗어나 이 사람의 생애를 요약합니다. 이것은 내적 독백이 아니라 배경 설명입니다.

적절한 길이의 내적 독백

깃발을 세워 차를 멈췄다. 오늘은 왼쪽부터 세워볼까. 깃발을 내렸다.

"오늘은 왼쪽부터 세워볼까." 이 한 문장이 내적 독백입니다. 짧습니다. 깃발을 세우는 동작에 붙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한 문장이 많은 것을 열어줍니다. 이 사람은 매일 이 일을 한다는 것, 어제는 오른쪽부터 세웠다는 것, 이 사람에게 순서라는 것이 있다는 것. 이 모든 것이 한 문장 안에 있습니다. 설명하지 않았는데도 들어 있습니다.

조건 3: 결론을 내지 않을 것

내적 독백이 결론을 내면, 그것은 교훈이 됩니다. 첫 번째 강의의 금지 조건 "교훈을 달지 말 것"을 기억하십시오. 내적 독백에서도 같은 규칙이 적용됩니다.

결론을 내는 내적 독백

빗자루의 물기를 짜다 바닥에 놓았다. 결국 이런 일을 하며 평생을 보내겠지. 다시 빗자루를 들어 올렸다.

"결국 이런 일을 하며 평생을 보내겠지."이 문장은 이 사람의 생각처럼 보이지만, 사실 작가의 메시지입니다. 이 사람의 삶을 요약하고, 방향을 결정하고, 독자에게 연민을 유도합니다. 이것은 내적 독백이 아니라 교훈입니다.

결론 없는 내적 독백

빗자루의 물기를 짜다 바닥에 놓았다. 여덟 번째 바닥. 오늘은 좌측 복도부터 돌았으니까 다음은 오른쪽이다. 다시 빗자루를 들어 올렸다.

"여덟 번째 바닥"과 "다음은 오른쪽이다"가 내적 독백입니다. 이 사람은 바닥을 세고 있습니다. 순서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결론이 없습니다. 이 사람이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독자는 모릅니다. 다만 이 사람이 바닥을 세고 있고, 순서를 알고 있다는 것만 압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4부. 예문으로 봅니다: 카메라와 사람의 차이

같은 장면을 세 번 쓰겠습니다. 첫 번째는 내적 독백이 없는 글(카메라), 두 번째는 내적 독백이 과다한 글(수필), 세 번째는 내적 독백이 적절한 글(문학)입니다.

예문. 새벽 재래시장 생선 좌판
A. 카메라 (내적 독백 없음)

스티로폼 박스의 테이프를 떼자, 칼이 비닐을 그으며 삐 하고 울었다. 얼음 사이에서 갈치 열두 마리가 나왔다. 한 마리가 꼬리 쪽으로 살짝 휘어 있어서, 그것을 맨 아래에 깔았다. 나머지는 머리를 왼쪽으로 맞춰 늘어놓았다. 아홉 마리를 놓자 한 줄이 찼다. 전화기가 울렸다. 액정에 '수산'이라고 떴다. 전화를 받으며 왼손으로 열 번째 갈치를 집었는데, 손가락 사이로 얼음물이 흘러 고무장갑 안으로 들어갔다. 차가운 물이 손목까지 올라오는 동안, 전화 너머에서 오늘 우럭 없다는 말이 들렸다.

이 글은 깨끗합니다. 동작과 감각만 있습니다. 규칙을 모두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생각하는 존재라는 느낌이 없습니다. 갈치를 놓고, 전화를 받고, 얼음물이 들어오고. 이것은 기록입니다. 문학이 아직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B. 수필 (내적 독백 과다)

스티로폼 박스의 테이프를 떼자, 칼이 비닐을 그으며 삐 하고 울었다. 얼음 사이에서 갈치 열두 마리가 나왔다. 오늘 것은 괜찮은 편이다. 어제는 열 마리뿐이었고 상태도 별로였다. 한 마리가 꼬리 쪽으로 살짝 휘어 있어서, 그것을 맨 아래에 깔았다. 손님들이 돈을 내고 가져가는 것이니까, 웬만한 눈으로 보면 모를 정도로 아래에 놓아야 한다. 나머지는 머리를 왼쪽으로 맞춰 늘어놓았다. 어릴 적부터 이렇게 해왔다. 왼쪽으로 놓는 게 손님 눈에 잘 들어오는 것 같다.

이 글은 내적 독백이 너무 많습니다. "오늘 것은 괜찮은 편이다", "어제는 열 마리뿐이었고 상태도 별로였다", "손님들이 돈을 내고 가져가는 것이니까", "어릴 적부터 이렇게 해왔다", "손님 눈에 잘 들어오는 것 같다". 이 사람의 머릿속이 너무 시끄러워서 동작이 보이지 않습니다. 갈치를 놓는 손이 사라졌습니다. 설명이 손을 가렸습니다.

C. 문학 (내적 독백 적절)

스티로폼 박스의 테이프를 떼자, 칼이 비닐을 그으며 삐 하고 울었다. 얼음 사이에서 갈치 열두 마리가 나왔다. 한 마리가 꼬리 쪽으로 살짝 휘어 있었다. 아래에 깔아야지. 맨 아래에 깔고 나머지는 머리를 왼쪽으로 맞춰 늘어놓았다. 아홉 마리를 놓자 한 줄이 찼다. 전화기가 울렸다. 액정에 '수산'이라고 떴다. 오늘도 우럭인가. 전화를 받으며 왼손으로 열 번째 갈치를 집었는데, 손가락 사이로 얼음물이 흘러 고무장갑 안으로 들어갔다. 차가운 물이 손목까지 올라오는 동안, 전화 너머에서 오늘 우럭 없다는 말이 들렸다. 없으면 없는 거지. 끊고 나서 고무장갑을 벗어 안을 털었다. 물이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지며 얼음 가루가 하얗게 흩어졌다. 갈치 한 마리가 남았다. 열두 번째. 놓을 자리가 애매했다. 잠깐 들고 있다가, 첫 줄 맨 끝에 살짝 걸쳐 놓았다.

세 버전의 차이

A(카메라)에는 동작과 감각만 있습니다. 깨끗하지만 이 사람이 생각하는 존재라는 느낌이 없습니다.

B(수필)에는 생각이 너무 많습니다. 어제의 비교, 손님에 대한 고려, 어린 시절의 기억. 동작이 생각에 파묻혀 보이지 않습니다.

C(문학)에는 내적 독백이 세 군데 있습니다. "아래에 깔아야지", "오늘도 우럭인가", "없으면 없는 거지". 전부 짧습니다. 전부 동작에 붙어 있습니다. 전부 결론을 내지 않습니다.

"아래에 깔아야지"는 휘어진 갈치를 보는 순간 나오는 판단입니다. 이 판단은 이 사람이 매일 갈치를 놓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설명하지 않고 보여줍니다.

"오늘도 우럭인가"는 전화기의 '수산'을 보는 순간 나오는 반응입니다. "오늘도"라는 두 글자가 많은 것을 열어줍니다. 어제도 물어봤고, 그전에도 물어봤다는 것. 그러나 이것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오늘도"만 있습니다.

"없으면 없는 거지"는 우럭이 없다는 말을 듣고 나서의 반응입니다. 이 반응에 분노도, 실망도, 체념도 없습니다. 그냥 "없으면 없는 거지"입니다. 이 무덤덤함이 이 사람을 만듭니다. 이 사람이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가 이 한 문장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독자의 해석에 열려 있습니다. 독자는 이 무덤덤함을 담담함으로 읽을 수도 있고, 체념으로 읽을 수도 있고, 탄력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5부. 정리: 내적 독백의 공식

정리하겠습니다. 내적 독백을 쓸 때 지켜야 할 것은 세 가지입니다.

하나, 동작이나 감각에 붙어 있을 것. 무언가를 보고, 만지고, 듣고 나서 나오는 생각일 것. 공중에 떠 있는 생각은 수필이지 문학이 아닙니다.

둘, 짧을 것. 한 문장이 좋고, 길어도 두 문장을 넘기지 말 것. 길어지면 설명이 되고, 설명이 되면 동작이 사라집니다.

셋, 결론을 내지 말 것. 판단과 반응은 되지만 결론과 요약은 안 됩니다. "아래에 깔아야지"는 판단입니다. "결국 이런 일을 하며 평생을 보내겠지"는 결론입니다.

이 세 가지를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동작에서 나온, 짧은, 열린 생각. 이것이 문학에서의 내적 독백입니다.

지금까지의 강의 전체를 정리합니다

강의 1(취향 바깥의 인물): 감정 단어를 빼고, 해석을 빼고, 교훈을 빼십시오.

강의 2(관찰 훈련): 보는 것과 아는 것을 분리하십시오. 관찰만 기록하십시오.

강의 3(시점의 제한): 이 사람의 눈에 보이는 것만 쓰십시오. 보이지 않는 것은 쓰지 마십시오.

강의 4(오늘): 다시 넣으십시오. 단, 동작에서 나온, 짧은, 결론 없는 생각만 넣으십시오.

빼는 것을 배우고, 남기는 것을 배우고, 다시 넣는 것을 배운 겁니다. 이 세 단계가 모두 되어야 글이 됩니다. 카메라가 아니라 사람이 쓴 글이 됩니다.

6부. 과제
과제: 기존 작품에 내적 독백 넣기

여러분이 지금까지 쓴 작품 중 하나를 골라, 내적 독백을 넣어 다시 쓰십시오. 이미 시점 점검을 한 작품이면 더 좋습니다.

조건:

1. 내적 독백은 최소 2군데, 최대 4군데 넣으십시오.

2. 각 내적 독백은 한 문장을 넘기지 마십시오.

3. 모든 내적 독백은 바로 앞의 동작이나 감각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4. 내적 독백 안에 결론이 없어야 합니다.

원본과 수정본을 함께 제출하고, 수정본에서 내적 독백을 넣은 부분에 밑줄을 치십시오.

제출 시 함께 답하십시오:
1. 내적 독백을 몇 군데 넣었는가?

2. 각 내적 독백은 어떤 동작/감각에서 출발했는가?

3. 내적 독백을 넣기 전과 후, 이 사람이 달라 보이는가?

4. 내적 독백을 넣으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무엇인가?

05

심화 4: 장면의 시간

장면의 시간

무엇을 늘리고 무엇을 줄이는가
산문과 시에서의 시간 조절
뉴스페이퍼 창작 아카데미
심화 강의 4
1부. 글에는 속도가 있다
지금까지 배운 것

지금까지 네 번의 강의를 했습니다. 관찰을 배웠고, 시점의 제한을 배웠고, 내적 독백을 배웠고, 인물 구축의 함정을 배웠습니다. 여러분은 이제 한 장면 안에서 동작과 감각과 짧은 생각을 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글을 읽다 보면, 산문이든 시든,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글의 속도가 일정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빠르기로 흘러갑니다. 산문에서는 3초짜리 동작도 한 문장, 30분짜리 시간도 한 문장입니다. 시에서는 모든 행이 같은 무게를 갖고 있습니다. 어떤 행도 다른 행보다 느리지 않고, 빠르지 않습니다.

이것은 문제입니다. 글에는 속도가 있어야 합니다. 어떤 순간은 느리게, 어떤 순간은 빠르게 지나가야 합니다. 이 속도의 차이가 산문에서는 장면을 만들고, 시에서는 울림을 만듭니다.

시간과 지면의 관계

간단한 원리를 하나 세우겠습니다.

글에서 시간의 속도는 "실제 시간"과 "지면"의 비율로 결정됩니다. 3초의 동작을 다섯 줄에 걸쳐 쓰면, 그 3초는 느리게 흐릅니다. 3시간을 한 문장으로 넘기면, 그 3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갑니다.

이것은 산문에서만 적용되는 원리가 아닙니다. 시에서도 같습니다. 한 행이 0.5초의 감각을 담고 있으면 그 행은 느립니다. 한 연이 10년을 건너뛰면 그 연은 빠릅니다. 다만, 시에서는 이 속도를 조절하는 도구가 산문과 다릅니다. 산문은 문장의 길이와 수로 속도를 조절합니다. 시는 행과 연, 그리고 행 사이의 여백으로 속도를 조절합니다.

서사학에서는 이 속도를 네 가지로 분류합니다.

장면(scene): 실제 시간과 글의 시간이 거의 같은 것.

요약(summary): 실제 시간보다 글의 시간이 훨씬 짧은 것.

확대(stretch): 실제 시간보다 글의 시간이 더 긴 것.

생략(ellipsis): 시간이 아예 건너뛰어지는 것.

오늘 강의에서 다룰 것은 확대와 요약입니다. 산문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시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함께 보겠습니다.

2부. 산문에서 늘리고 줄이기
늘려야 하는 순간

시간을 늘린다는 것은 한 순간 안에 머문다는 것입니다. 동작을 더 세밀하게 쪼개고, 감각을 더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내적 독백이 끼어들 자리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순간을 늘려야 합니까?

규칙 1: 감각이 바뀌는 순간을 늘리십시오. 따뜻한 것을 만지다가 차가운 것에 닿는 순간. 조용한 곳에서 갑자기 소리가 들리는 순간. 이 전환의 순간을 늘리십시오. 감각이 바뀌는 순간에 사람이 깨어나기 때문입니다.

감각 전환을 늘리지 않은 글

행주를 짜고 싱크대를 닦았다. 찬물에 손이 시렸다. 수도꼭지를 잠그고 행주를 걸었다.

감각 전환을 늘린 글

행주를 짜고 싱크대 왼쪽부터 닦기 시작했다. 스테인리스 표면에 물줄기가 갈라지며 흘렀다. 오른쪽 끝까지 닦고 수도꼭지를 틀었는데, 물이 차가웠다. 손끝이 먼저 느꼈고, 손가락을 오므렸다가 다시 폈다. 찬물이 행주에 스며들면서 천의 무게가 달라졌다. 수도꼭지를 잠갔다. 행주를 두 번 짜서 걸었다.

규칙 2: 행위의 의미가 바뀌는 순간을 늘리십시오. 문을 열다가 멈추는 순간.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무는 순간. 내밀었던 손을 거두는 순간. 동작의 방향이 바뀌는 지점을 늘리십시오.

방향 전환을 늘리지 않은 글

봉투를 건네려다가 내려놓았다. 상대가 나갔다.

방향 전환을 늘린 글

봉투를 오른손으로 들어 올렸다. 상대 쪽으로 팔을 뻗었다. 상대의 시선이 봉투 위에 있었다. 팔이 멈췄다. 봉투를 들고 있는 손가락 끝에 힘이 들어갔다가 빠졌다. 봉투를 카운터 위에 내려놓았다. 상대가 봉투를 보고 있었다. 3초쯤 지나서 상대가 몸을 돌려 문 쪽으로 걸어갔다.

규칙 3: 처음 보는 것을 늘리십시오. 인물이 어떤 장소, 사물, 사람을 처음 보는 순간은 늘려야 합니다. 처음 보는 것에는 아직 이름이 없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익숙한 것은 빠르게 지나가야 합니다. 매일 출근하는 길을 다섯 줄에 걸쳐 묘사하면, 독자는 이 사람이 이 길을 처음 걷는 것이라고 느낍니다.

줄여야 하는 순간

규칙 1: 반복되는 일상은 줄이십시오. 첫 번째 아침은 장면으로 쓸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아침부터는 줄여야 합니다. 반복을 쓰면, 독자는 그 반복 안에서 변화를 찾으려 합니다. 변화가 없으면 배신당한 느낌이 듭니다.

규칙 2: 이동은 줄이십시오. A 장소에서 B 장소로 가는 과정은 대부분 줄여야 합니다. 이동 안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그 지면은 낭비입니다. "버스를 타고 시장에 갔다." 이 한 문장이면 됩니다.

규칙 3: 결과를 이미 아는 행위는 줄이십시오. 독자가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행위는 과정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반대로, 결과가 예상 밖인 행위는 과정을 늘려야 합니다.

3부. 시에서 늘리고 줄이기
시에서 시간은 다르게 작동한다

산문에서 시간의 속도는 문장의 수와 길이로 결정됩니다. 시에서는 다릅니다. 시에서 시간의 속도를 결정하는 것은 행, 연, 여백, 그리고 이미지의 밀도입니다.

시의 한 행은 산문의 한 문장과 같지 않습니다. 산문의 문장은 정보를 전달합니다. 시의 행은 감각을 전달합니다. 그래서 시에서 시간을 늘린다는 것은 정보를 더 많이 쓴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의 감각 안에 더 오래 머문다는 뜻입니다.

시에서 늘리는 법: 한 감각에 머물기

시에서 시간을 늘리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하나의 감각을 여러 행에 걸쳐 쓰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하나의 것, 손에 닿는 하나의 감촉, 귀에 들리는 하나의 소리를 끊어서, 행을 바꿔가며 쓰는 것입니다.

한 감각을 한 행으로 처리한 시
수도꼭지에서 물이 떨어졌다
창밖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컵을 들었다

세 행에 세 개의 감각이 있습니다. 물, 비, 컵. 각각 한 행씩입니다. 모든 감각이 같은 속도로 지나갑니다. 어떤 것도 다른 것보다 느리지 않습니다.

한 감각에 머무는 시
수도꼭지에서
물이 떨어졌다
한 방울이 싱크대 바닥에 닿아
퍼지고
다음 방울이 떨어지기까지
싱크대는 조용했다

같은 감각, 수도꼭지에서 물이 떨어지는 것이 여섯 행에 걸쳐 있습니다. 한 방울이 떨어지고, 퍼지고, 다음 방울까지의 간격이 기록됩니다. 이 사이에 시간이 느려집니다. 물방울 하나가 떨어지는 데 걸리는 1초도 안 되는 시간이 여섯 행의 지면을 차지합니다. 독자는 이 물방울 안에 머뭅니다.

이것이 시에서 시간을 늘리는 것입니다. 감각을 쪼개는 것. 하나의 동작을 여러 행으로 풀어놓는 것. 산문에서 동작을 세밀하게 기록하는 것과 원리는 같지만, 도구가 다릅니다. 산문은 문장을 더 씁니다. 시는 행을 나눕니다.

행 나누기가 시간을 조절한다

시에서 행을 어디서 나누느냐는 곧 시간을 어디서 멈추느냐입니다. 같은 문장이라도 행을 나누는 위치에 따라 속도가 달라집니다.

행을 나누지 않은 경우
어머니가 부엌에서 칼로 무를 썰고 있었다
행을 나눈 경우
어머니가 부엌에서
칼로
무를 썰고 있었다

첫 번째는 하나의 동작이 한 행 안에서 끝납니다. 빠릅니다. 두 번째에서 "칼로"가 독립된 행이 됩니다. 이 한 행 때문에 "칼"이라는 사물이 시간 속에서 정지합니다. 독자의 눈이 "칼로"에서 멈춥니다. 다음 행으로 넘어가기 전에, 칼이 보입니다. 행을 나누는 것만으로 0.3초의 동작 안에 정지의 순간을 만든 것입니다.

이것을 의식적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늘리고 싶은 순간에서 행을 나누십시오. 빠르게 지나가야 할 순간에서는 한 행 안에 동작을 담으십시오.

시에서 줄이는 법: 연 바꿈과 여백

산문에서 시간을 줄이는 것이 요약이라면, 시에서 시간을 줄이는 것은 연 바꿈과 여백입니다.

연과 연 사이의 빈 줄, 그것이 시에서의 생략입니다. 산문에서 "3년이 지났다"라고 쓰는 것을, 시는 빈 줄 하나로 합니다. 독자는 연이 바뀌면 시간이 이동했다고 느낍니다. 얼마나 이동했는지는 다음 연의 첫 행이 알려줍니다.

연 바꿈으로 시간을 줄이는 시
아버지가 마당에서 담배를 피웠다
연기가 처마 밑으로 올라갔다
나는 방 안에서 그 냄새를 맡았다
처마가 없어졌다
마당이 주차장이 되었다
담배 냄새는
내 코트 안쪽에 남아 있었다

첫 번째 연은 장면입니다. 아버지가 담배를 피우고, 연기가 올라가고, 화자가 냄새를 맡습니다. 이것은 한 순간 안에 있습니다. 시간이 느립니다.

연이 바뀝니다. 빈 줄 하나 사이에 수년이 건너뛰었습니다. "처마가 없어졌다", "마당이 주차장이 되었다". 이 두 행으로 독자는 집이 바뀌었거나, 허물어졌거나,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연 바꿈이 시간을 줄인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두 행에서 다시 시간이 느려집니다. "담배 냄새는 / 내 코트 안쪽에 남아 있었다." 수년이 지났는데, 냄새가 남아 있습니다. 이 한 감각에 머뭅니다. 시간은 현재인데, 감각은 과거에서 왔습니다. 이 교차가 시의 시간입니다.

시에서 흔히 하는 실수: 모든 행이 같은 속도

여러분의 시에서 가장 흔한 문제는 모든 행이 같은 밀도를 갖는 것입니다. 매 행마다 새로운 이미지가 하나씩 등장합니다. 꽃, 바람, 하늘, 구름, 나무. 한 행에 하나씩, 같은 속도로 지나갑니다. 이것은 관광버스에서 차창 밖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모든 풍경이 같은 속도로 지나가니까, 어떤 풍경도 기억에 남지 않습니다.

시에서도 속도를 바꿔야 합니다. 하나의 이미지에 오래 머무는 연이 있어야 하고, 여러 이미지를 빠르게 지나치는 연이 있어야 합니다. 느린 연과 빠른 연의 교차가 시의 리듬입니다.

4부. 산문 예문: 같은 이야기, 세 가지 속도

같은 이야기를 세 번 쓰겠습니다. 새벽 다섯 시, 두부 가게 주인이 가게를 여는 장면입니다.

A. 전부 늘린 글

새벽 다섯 시. 셔터의 자물쇠에 열쇠를 꽂았다. 열쇠가 구멍에 절반쯤 들어가다 멈췄다. 왼손으로 자물쇠를 잡고 오른손으로 열쇠를 살짝 올려 돌렸다. 딸깍. 자물쇠가 풀렸다. 자물쇠를 앞치마 주머니에 넣었다. 오른손으로 셔터 손잡이를 잡았다. 위로 밀었다. 셔터가 덜거덩 소리를 내며 올라갔다. 찬 공기가 안쪽에서 밀려나왔다. 코끝이 시렸다. 가게 안은 어두웠다. 벽 왼쪽의 스위치를 더듬어 눌렀다. 형광등이 두 번 깜빡이다 켜졌다. 바닥의 타일이 하얗게 보였다. 싱크대 쪽으로 걸어갔다. 수도꼭지를 틀었다. 물이 나오기까지 3초 정도 걸렸다. 물이 나왔다. 차가웠다.

이 글은 모든 동작을 같은 밀도로 쓰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매일 이 일을 합니다. 자물쇠를 여는 것이 새로운 감각일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글은 마치 이 사람이 처음 가게에 온 것처럼 모든 것을 하나하나 기록합니다.

B. 전부 줄인 글

새벽 다섯 시에 가게를 열었다. 물을 받아 콩을 불렸다. 여섯 시쯤 첫 솥을 올렸다. 일곱 시에 두부가 나왔다. 여덟 시에 첫 손님이 왔다.

세 시간을 다섯 문장으로 처리했습니다. 전부 요약입니다. 이 사람의 손이 보이지 않습니다. 감각이 없습니다. 이것은 일정표이지 글이 아닙니다.

C. 속도를 조절한 글

새벽 다섯 시에 가게를 열고 물을 받았다. 콩을 불리는 동안 앞치마를 두르고 칼을 꺼내 도마 위에 놓았다. 여섯 시쯤 첫 솥을 올렸다. 솥 뚜껑을 덮자 가장자리로 김이 새어나왔다. 오른손을 뚜껑 위에 올렸다. 아직 미지근했다. 손을 내리고 싱크대에 기대어 섰다. 벽시계가 여섯 시 사 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스물여섯 분. 솥이 끓기까지 스물여섯 분. 앞치마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화면에 아무것도 없었다. 다시 넣었다.

일곱 시에 두부가 나왔다. 첫 모를 틀에서 빼는데 모서리가 갈라졌다. 칼을 가져와 갈라진 부분을 잘라냈다. 잘라낸 조각을 입에 넣었다. 따뜻했다. 콩 맛이 아니라 물 맛이 먼저 왔다. 간수를 좀 더 넣었어야 했나. 두 번째 모는 괜찮았다. 나머지도 괜찮았다. 진열대에 놓고 비닐을 씌웠다.

여덟 시에 첫 손님이 왔다.

가게를 여는 과정은 줄였습니다. 한 문장입니다. 매일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솥을 올리고 기다리는 시간은 늘렸습니다. 뚜껑 위에 손을 올리는 것, 벽시계를 보는 것, 핸드폰을 꺼냈다 넣는 것. "스물여섯 분"이라는 내적 독백이 이 사람의 아침을 만듭니다.

두부의 첫 모가 갈라지는 순간을 늘렸습니다. "콩 맛이 아니라 물 맛이 먼저 왔다"는 감각이고, "간수를 좀 더 넣었어야 했나"는 내적 독백입니다. 이 순간에 이 사람의 판단이 있습니다.

"두 번째 모는 괜찮았다. 나머지도 괜찮았다." 이 두 문장은 요약입니다. 첫 모에서 이미 장면이 만들어졌으니, 나머지는 줄여도 됩니다.

5부. 시 예문: 같은 소재, 세 가지 속도

같은 소재를 시로 세 번 쓰겠습니다. 어머니가 저녁에 생선을 굽는 장면입니다.

A. 전부 같은 속도의 시
어머니가 생선을 굽는다
기름이 튄다
환풍기가 돌아간다
연기가 올라간다
접시를 꺼낸다
젓가락을 놓는다
밥솥에서 김이 난다
시계가 일곱 시를 가리킨다

여덟 행에 여덟 개의 동작 또는 상태가 나열되어 있습니다. 모든 행이 같은 속도입니다. 생선을 굽는 것과 시계를 보는 것이 같은 무게를 갖고 있습니다. 어떤 행도 다른 행보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목록입니다.

B. 하나의 감각에 머무는 시
기름이 튀었다
어머니의 손등에
작은 점 하나가 붉어졌다
어머니는 그 손으로
생선을 뒤집었다
환풍기 아래
연기가 어머니의 머리카락 사이로 올라갔다
나는 식탁에 앉아
그 연기를 보고 있었다

이 시에서 시간이 가장 느린 곳은 첫 번째 연입니다. "기름이 튀었다 / 어머니의 손등에 / 작은 점 하나가 붉어졌다." 기름이 튀는 0.5초의 순간이 세 행에 걸쳐 있습니다. 기름이 튀고, 손등에 닿고, 붉은 점이 생깁니다. 이 세밀한 진행이 시간을 늘립니다.

두 번째 연에서 시간이 빨라집니다. "어머니는 그 손으로 / 생선을 뒤집었다." 손등에 기름이 튀었는데, 그 손으로 생선을 뒤집습니다. 아프다는 말이 없습니다. 멈추지 않습니다. 두 행이 이 사람의 태도를 보여줍니다. 시간이 빨라지면서, 이 사람이 일상적으로 감내하는 것이 드러납니다.

세 번째 연에서 시점이 이동합니다. 화자가 식탁에 앉아 연기를 보고 있습니다. "그 연기를 보고 있었다"에서 시간이 다시 느려집니다. 보고 있는 동안의 시간입니다. 이 연에서 화자의 시선이 머물러 있습니다. 그 머뭄이 이 시의 감정입니다.

C. 연 바꿈으로 시간을 건너뛰는 시
기름이 튀었다
어머니의 손등에
작은 점 하나가 붉어졌다
그 점은
지금도 있다
어머니는 이제 생선을 굽지 않는다
환풍기가 없는 부엌에서
나는 가끔 기름 냄새를 맡는다

첫 번째 연은 B와 같습니다. 기름이 튀는 순간입니다. 시간이 느립니다.

두 번째 연. "그 점은 / 지금도 있다." 두 행 사이에 수년이 건너뛰었습니다. 연 바꿈 하나로 과거에서 현재로 이동했습니다. 산문이었다면 "몇 년이 지났다"고 써야 할 것을, 시는 빈 줄 하나와 "지금도"라는 부사 하나로 처리합니다. 이것이 시에서 시간을 줄이는 방법입니다.

세 번째 연에서 시간은 현재입니다. "어머니는 이제 생선을 굽지 않는다." "이제"가 시간 표지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제 굽지 않는다"고만 합니다. 그리고 "환풍기가 없는 부엌"이 있습니다. 환풍기가 없다는 것은 다른 부엌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집입니다. 이 모든 것을 설명 없이, 사물의 유무로 보여줍니다. 그리고 "기름 냄새를 맡는다"에서 시간이 다시 느려집니다. 과거의 감각이 현재에 스며드는 순간입니다.

6부. 여러분의 글에서 시간이 잘못된 지점

여러분의 과제에서 시간의 속도가 문제가 된 유형들을 모았습니다. 산문과 시를 함께 다루겠습니다.

유형 1: 전부 같은 속도 (산문, 시 공통)

가장 흔한 문제입니다. 산문에서는 글 전체가 장면이거나 글 전체가 요약입니다. 시에서는 모든 행이 같은 밀도의 이미지를 하나씩 나열합니다. 속도의 변화가 없으면, 어떤 순간도 특별하지 않습니다.

→ 산문: 가장 중요한 순간 하나를 골라 그것만 늘리고 나머지는 줄이십시오.

→ 시: 가장 중요한 이미지 하나를 골라 그것에 두세 행을 더 주십시오. 나머지는 한 행 안에 담거나 연 바꿈으로 건너뛰십시오.

유형 2: 산문에서 이동에 지면을 쓰는 글

"집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시장에 도착했다." 이것을 "현관문을 잠그고, 계단을 내려가고, 버스 정류장까지 걷고..."라고 쓰면, 독자는 이 이동 안에서 무언가 일어나기를 기다립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낭비입니다.

→ 이동이 끝나고 도착한 곳에서 장면을 시작하십시오.

유형 3: 시에서 연 바꿈 없이 시간을 점프하는 시

한 연 안에서 갑자기 시간이 바뀌는 시가 있습니다. 과거의 장면을 쓰다가, 같은 연 안에서 "지금은"이라고 현재로 넘어옵니다. 독자는 혼란을 느낍니다. 시간이 바뀔 때는 연을 바꾸십시오. 빈 줄 하나가 독자에게 "여기서 시간이 점프한다"는 신호를 줍니다.

유형 4: 시에서 설명이 시간을 죽이는 경우

시에서 감각을 쓰다가 갑자기 설명이 끼어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설명이 끼어든 시
어머니가 생선을 뒤집었다
어머니는 늘 그랬다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이었다
기름이 손등에 튀어도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이었다"는 설명입니다. 이 행이 들어오는 순간, 시의 시간이 멈춥니다. 감각이 아니라 판단이기 때문입니다. 합평 강의에서 다루었던 것과 같은 문제입니다. 시에서도 해석과 교훈은 시간을 죽입니다. 감각과 이미지만이 시의 시간을 살립니다.

→ "희생"이라는 단어를 빼고, 그 자리에 감각을 넣으십시오. "기름이 손등에 튀었다 / 어머니는 뒤집었다" 이것이면 됩니다.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십시오.

유형 5: 중요한 순간을 줄인 글 (산문, 시 공통)

글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을 한 문장 또는 한 행으로 처리해버리는 것입니다. 보통 그 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빠르게 넘어갑니다.

→ 여러분이 쓴 글에서 "가장 쓰기 어려웠던 문장"을 찾으십시오. 그 문장이 아마 늘려야 할 곳입니다. 쓰기 어려웠다는 것은 그 순간 안에 무언가가 있다는 뜻입니다.

7부. 정리

오늘 강의를 정리하겠습니다.

산문에서든 시에서든, 시간의 속도는 균등하지 않아야 합니다. 중요한 순간에 지면을 주고, 중요하지 않은 순간에서 지면을 거두십시오.

산문에서는 문장의 수와 길이로 속도를 조절합니다. 시에서는 행의 나눔, 연의 바꿈, 여백으로 속도를 조절합니다. 도구는 다르지만 원리는 같습니다. 늘리고 싶은 곳에서 머물고, 줄이고 싶은 곳에서 건너뛰는 것.

늘려야 하는 순간: 감각이 전환되는 순간, 행위의 방향이 바뀌는 순간, 처음 보는 것을 감각하는 순간.

줄여야 하는 순간: 반복되는 일상, 이동, 결과를 이미 아는 행위.

시에서 특히 기억할 것: 행 나누기가 시간을 만듭니다. 하나의 감각을 여러 행으로 풀면 시간이 느려지고, 한 행 안에 동작을 담으면 시간이 빨라집니다. 연 바꿈은 시간의 도약입니다. 빈 줄 하나에 수년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강의와 연결하면 이렇습니다.

강의 1(관찰 훈련): 보는 것과 아는 것을 분리하십시오.

강의 2(시점의 제한): 이 사람의 눈에 보이는 것만 쓰십시오.

강의 3(내적 독백): 동작에서 나온, 짧은, 열린 생각을 넣으십시오.

강의 4(오늘): 중요한 순간은 늘리고, 중요하지 않은 순간은 줄이십시오. 산문에서는 문장으로, 시에서는 행과 연으로.

8부. 과제
과제 1: 속도 분석 (산문 또는 시 중 택 1)

여러분이 지금까지 쓴 작품 중 하나를 골라, 시간의 속도를 분석하십시오.

산문을 고른 경우, 각 문장 옆에 다음 표시를 하십시오.

[장] = 장면. [요] = 요약. [확] = 확대. [생] = 생략.

시를 고른 경우, 각 행 또는 연에 다음 표시를 하십시오.

[느] = 느린 행. 하나의 감각에 머무는 행.

[빠] = 빠른 행. 동작이나 상태를 빠르게 지나치는 행.

[도] = 도약. 연 바꿈으로 시간이 건너뛴 곳.
표시를 다 한 후, 다음 질문에 답하십시오.

1. 가장 느린 곳은 어디인가? 그곳이 이 글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인가?

2. 줄여도 되는 곳이 있는가? 왜 그곳을 줄여도 된다고 생각하는가?

3. 늘려야 할 곳이 있는가? 왜 그곳을 늘려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과제 2: 속도 조절 다시 쓰기 (산문 또는 시 중 택 1)

과제 1에서 분석한 작품을, 속도를 조절하여 다시 쓰십시오.

조건:
1. 최소 한 곳은 기존보다 늘리십시오.
2. 최소 한 곳은 기존보다 줄이십시오.
3. 원본과 수정본을 함께 제출하십시오.
과제 3: 교차 쓰기 (선택)

같은 소재를 산문과 시로 한 번씩 쓰십시오. 둘 다 시간의 속도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두 글에서 "늘린 순간"과 "줄인 순간"이 같은지 다른지 비교하고, 그 이유를 한 문단으로 쓰십시오.

제출 시 함께 답하십시오:
1. 어디를 늘렸는가? 왜 그곳을 늘렸는가?
2. 어디를 줄였는가? 왜 그곳을 줄였는가?

3. 속도를 바꾸고 나서, 글의 무게 중심이 이동했는가?

4. (과제 3을 한 경우) 산문과 시에서 시간을 다루는 것이 어떻게 달랐는가?

06

모의 연습: 보여주기 글쓰기 1시간 30분 도시편

보여주기(Show-Don't-Tell) 글쓰기

1시간 30분 모의 연습 | 도시편
시험 안내 • 총 시간: 1시간 30분 (90분) • 문제 읽고 이해하기: 약 5분 • 글쓰기: 약 75분 (4-5시간 분량) • 검토 및 정리: 약 10분
1. 평가 기준
다음 항목들을 중심으로 평가합니다:
항목 설명
감각적 상세 구체적인 행동, 감각(시각, 청각, 촉각, 냄새, 맛), 신체 반응으로 상황을 표현했는가
낯설게 하기 진부한 표현을 피하고, 독자가 예상하지 못한 각도에서 상황을 포착했는가
서사 밀도 불필요한 설명을 최소화하고 보여주기로 가득 찼는가
도덕적 중립성 인물이나 상황에 대한 직접적 판단(좋다/나쁘다)을 드러내지 않았는가
2. 연습 문제 (총 3개)
문제 1: 감정을 보여주기 (25분)

다음 감정 상황을 설명하지 말고 보여주세요. 인물의 행동, 신체 반응, 환경 묘사로만 표현해야 합니다.

❌ 하지 말 것 "그녀는 매우 화났다. 마음이 답답해서 말이 없었다. 그냥 화풀이를 하고 싶었다."
✓ 이런 식으로 스마트폰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한다. 화면은 계속 켜져 있고, 한 글자도 읽혀 오지 않는다. 책상 위의 커피는 반쯤 식었다. 손톱으로 테이블을 긁는다. 손톱 자국이 흰색으로 남는다.

[문제 1] 다음 상황을 보여주기로만 표현하세요 (300-400자)

상황: 카페에서 일하던 중, 전 직장 동료가 들어온다. 이 만남에서 느끼는 감정(어색함, 불안감, 후회, 질투, 부끄러움 등 자유)을 행동과 신체 반응, 환경으로만 표현하세요. 감정 단어를 직접 쓰지 마세요. 작성 공간: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문제 2: 관계를 보여주기 (25분)

두 인물의 관계(거리감, 친밀함, 갈등, 신뢰 등)를 대사나 직접 설명 없이 상황과 행동으로만 드러내세요.

[문제 2] 다음 상황을 보여주기로 표현하세요 (300-400자)

상황: 지하철에서 새벽 퇴근길. 앞에는 직장 상사가 앉아 있다. 두 사람 사이의 복잡한 감정(계급 관계, 긴장, 거리감, 피로한 친밀감 중 하나 이상)을 실제 행동, 시선, 음악 소리, 신체 거리 등으로만 드러내세요. 작성 공간: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문제 3: 변화를 보여주기 (20분)

인물의 내적 변화나 깨달음을 사건과 행동의 변화로 표현하세요. 마지막에 "그는 깨달았다"는 식의 설명을 하지 마세요.

[문제 3] 다음 상황을 보여주기로 표현하세요 (350-450자)

상황: 회사 입사한 지 1주일 된 신입 사원이 첫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처음(떨리고 수동적인 신입)과 끝(무언가 바뀐 사원)의 구체적 행동, 태도, 말투 변화로 성장 또는 현실 인식을 드러내세요. 입사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의 변화. 작성 공간: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3. 모범 답안 및 평가
[문제 1] 감정을 보여주기 - 모범 답안

상황: 카페에서 일하던 중, 전 직장 동료가 들어온다. (불안감과 어색함)

에스프레소 머신의 음성이 급격해진다. 잔에 손이 떨린다. 손 아래 커피가 옷에 떨어진다. 보지 않으려고 했는데 눈이 간다. 그 사람이 지금 주문 줄에서 메뉴판을 보고 있다. 휴지로 옷을 닦다가 멈춘다. 아직 봤다고 할 수도 있고 안 봤다고 할 수도 있는 시간. 어디를 봐야 할지 모른다. 컵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한다. 그 사람이 움직인다. 카운터 쪽으로. 내가 서 있는 카운터로.
⭐ 이 답안의 장점:

"불안했다", "어색했다" 같은 감정 단어 없이, 손 떨림, 에스프레소 머신음 변화, 시선 처리, 컵을 들었다 놨다 반복으로 심리 표현

"아직 봤다고 할 수도 있고 안 봤다고 할 수도 있는 시간"은 인물의 심리 상태를 상황으로만 드러낸다

도시 카페라는 구체적 환경에서 일어나는 일상적 불안을 포착 (머신음, 커피 흘림, 옷 얼룩)

마지막 "그 사람이 움직인다. 카운터 쪽으로. 내가 서 있는 카운터로."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을 단호하게 드러낸다

[문제 2] 관계를 보여주기 - 모범 답안

상황: 지하철 새벽 퇴근길. 직장 상사가 앞에 앉아 있다. (계급과 피로한 친밀감)

그 옆 자리에 앉지 않는다. 두 칸 떨어져 앉는다. 휴대폰의 재생 시간은 1시간 23분. 이어폰을 낀 그를 보지 않으려고 스크린을 본다. 스크린도 본다고 할 수 없다. 방금 그가 하품을 했다. 아주 조용히. 손으로 입을 막았다. 직급에 맞게. 나는 웃음을 참는다. 웃음이 나온다. 음악이 크다. 아니면 내가 웃고 있는 걸 들렸나. 이어폰을 더 깊숙이 넣는다. 역시 그도 그렇게 한다. 누가 먼저 일어날까. 내려갈 역은 그가 먼저다. 그가 일어난다. 나도 일어난다. 몇 칸 떨어져서.
⭐ 이 답안의 장점:

"그 옆 자리에 앉지 않는다. 두 칸 떨어져 앉는다"와 "몇 칸 떨어져서"로 물리적 거리가 관계를 말한다

"손으로 입을 막았다. 직급에 맞게"는 상사의 자제와 거리감을 한 문장에 담는다

웃음, 이어폰, 나와 상사의 동시적 행동(이어폰을 더 깊숙이)은 같은 상황 속 반목과 공감을 동시에 드러낸다

"그가 일어난다. 나도 일어난다."는 계급 관계에서의 자동적 따라감을 암시한다

[문제 3] 변화를 보여주기 - 모범 답안

상황: 회사 입사한 지 1주일 된 신입 사원이 첫 프로젝트 진행 (처음→끝 변화)

입사 첫날, 손가락이 떨렸다. 마크다운을 배우던 중도 화장실에 가서 손을 씻었다. 손가락이 계속 떨렸다. 엑셀을 열었다. 닫았다. 코드를 쓴다는 게 죽을 것만 같았다. 팀장이 지나간다. 재채기를 참는다. 숨을 참는다. 이틀째, 어깨가 굳었다. 손가락은 떨리지 않는다. 대신 옆 사람이 물어봐도 대답이 늦다. 컴퓨터 화면만 본다. 일주일째 금요일, 화장실에 들어갔을 때 느낀 건 피로함이었다. 반복이었다. 다음주 월요일 아침, 엘리베이터에서 새 인턴을 본다. 손이 떨리는 그. 나는 그냥 커피를 마신다. 키보드를 입력한다. 떨지 않는다.
⭐ 이 답안의 장점:

처음의 "손가락이 떨렸다", "숨을 참는다"에서 끝의 "떨지 않는다"로 신체 변화가 성장을 암시한다

일주일 동안 떨림→경직→피로함→무감정으로 심리 변화를 보여준다. 성장이 아닌 현실 인식의 변화

마지막에서 새 인턴과의 거울 대비(그의 떨림 vs 나의 커피)로 1주일 전의 자신과 비교하는 구조

"코드를 쓴다는 게 죽을 것만 같았다"는 사무실 일상의 과장이 도시적 피로감을 생생하게 담는다

4. 채점 및 자가 평가 가이드
각 문제를 다음 질문들로 스스로 점검하세요:
감정/관계/변화를 말하지 않고 드러냈는가?
"불안했다" → "마크다운을 배우던 중도 화장실에 가서 손을 씻었다" "어색했다" → "그 옆 자리에 앉지 않는다. 두 칸 떨어져 앉는다" "성장했다" → "손가락이 떨렸다"에서 "떨지 않는다"로
도시적 감각 디테일이 살아 있는가?
있어야 할 것: 화면(스마트폰, 컴퓨터), 소리(에스프레소 머신, 이어폰, 지하철 소음) 신체적 거리감(좌석 배치, 엘리베이터, 사무실 공간) 현대의 시간 감각(앱 재생 시간, 1주일, 금요일 vs 월요일)
도덕적 판단이 드러나지 않았는가?
"그 직책에 어울리지 않게" (판단) → "손으로 입을 막았다. 직급에 맞게" (중립적 관찰) "신입의 불쌍한 불안" (감정 이입) → "손가락이 떨렸다"만 쓰기 (행동만) 독자가 스스로 판단하게 두었는가?
💡 핵심 기억하기

말하지 말고 보여주기. 에스프레소 머신음, 손가락, 좌석, 이어폰. 도시의 작은 세부가 감정을 말한다.

07

비유 다시 쓰기 교재

비유 다시 쓰기

‘아버지는 유리병 속 알약처럼 쓰러지셨다’를 응용해 자기 인물의 문장을 만드는 법

1. 출발점 — 문장은 설명이 아닙니다

1-1. 일상의 언어와 문학의 언어는 다르게 작동합니다

학교에서 우리는 단어를 사물의 이름으로 배웁니다. ‘사과’는 빨갛고 둥근 그 과일을 가리킨다, ‘쓰러지다’는 서 있던 사람이 옆으로 넘어가는 동작을 가리킨다, 라고. 단어 하나가 사물 하나·동작 하나를 가리키는 1대1 대응 — 이것이 일상 언어의 작동 방식입니다.

그러나 현대 문학의 문장은 이렇게 작동하지 않습니다. 한 문장에 들어간 단어는 그것이 가리키는 사물 ‘하나’로 환원되지 않습니다. 단어는 자기 안에 여러 층위를 품고 있고, 다른 단어들과 만날 때 그 층위들이 한꺼번에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유리병 속 알약’이라는 다섯 음절을 다시 봅니다. 이 묶음은 단순히 ‘약’이라는 사물 하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같은 자리에서 동시에 다섯 가지가 작동합니다.

— 그것은 사물(약)이고,
— 매일 먹어야 하는 상태(병)이고,
— 외부에서 정량으로 관리되는 자리(유리병)이고,

— 단단해 보이지만 깨질 수 있는 취약성(유리)이고,

— 사람을 ‘한 알, 두 알’로 정량화하는 시선이기도 합니다.

이 다섯 층위가 한꺼번에 ‘아버지’라는 원관념에 옮겨붙을 때, 작가는 단순한 설명으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자리에 도달합니다. ‘아버지는 약을 드신다’ ‘아버지는 병약하시다’ ‘아버지는 외부에 관리되는 사람이다’ — 이 세 문장을 모두 합쳐도 ‘아버지는 유리병 속 알약처럼 쓰러지셨다’ 한 줄이 만드는 두께에 미치지 못합니다.

문장은 설명이 아닙니다. 단어가 자기 안에 품은 여러 층위가 다른 단어와 만나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자리입니다.

1-2. 1대1 대칭이라는 함정

학생들이 비유 과제를 받았을 때 가장 흔히 빠지는 함정이 바로 이것 — 단어를 1대1 대응으로 다루는 일입니다. ‘쓰러진다’를 그리기 위해 ‘쓰러지는 다른 사물’을 찾고, 빨간색을 그리기 위해 ‘빨간 다른 사물’을 찾고, 떨어짐을 그리기 위해 ‘떨어지는 다른 사물’을 찾습니다. 동작 하나에 동작 하나, 색 하나에 색 하나, 모양 하나에 모양 하나를 대응시키는 것 — 이것이 1대1 대칭입니다.

워크숍에서 나온 다음 문장을 봅시다.

여동생은 물감과 다른 색의 물감이 섞이듯 계곡물에 쓰러졌다.

물감이 물에 풀어지는 시각은 ‘쓰러지는 시각’에 시각적으로 대응됩니다. 그러나 여기서 작동하는 것은 그 대응 하나뿐입니다. 물감은 여동생에 대해 다른 어떤 층위도 작동시키지 않습니다. 여동생이 누구인지, 어떤 자리에 있는지, 어떤 무게로 쓰러졌는지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습니다. 동작은 그려졌지만 인물은 그려지지 않은 것입니다.

비유가 비유로 도약하지 못하고, ‘닮은 모양 찾기’의 평면에 떨어져 단락되는 자리 — 이곳이 학생들이 가장 자주 멈춰 서는 자리입니다.

1-3. 그러나 낯섦 자체가 비유는 아닙니다

1대1 대칭의 함정에서 빠져나오려고 하는 학생들이 자주 빠지는 또 하나의 함정이 있습니다. 평면에서 벗어나려고, 인물과는 멀리 떨어진 낯선 사물을 갑자기 끌어오는 일입니다.

예를 들어 평범한 한국의 가정집을 배경으로 한 소설에 갑자기 ‘무도회의 가면’이 들어오거나, 강남 한복판에 사는 인물의 묘사에 ‘사막의 도마뱀’이 들어오면, 그 문장은 ‘낯설어’ 보입니다. 신선해 보입니다. 그러나 작가가 만든 것은 신선함이 아니라 단절입니다. 인물은 자기가 살지 않는 세계로 끌려가버리고, 독자는 인물의 좌표를 잃습니다.

비유의 보조관념은 인물이 사는 배경과 맥락 안에 실재해야 합니다. 아무 낯선 단어나 끌어다 붙일 수는 없습니다. 사물의 낯섦이 비유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물이 끌고 들어오는 의미망과 인물의 좌표가 만나는 자리가 비유를 만듭니다.

정리하면, 비유에서 작가가 피해야 할 두 가지 함정은 양극단에 있습니다.

— 너무 가까운 함정 (1대1 대칭의 함정): 닮은 모양의 다른 사물을 찾아 동작에 1:1로 대응시키는 일. 비유가 비유로 도약하지 못하고 평면에 떨어진다.

— 너무 먼 함정 (낯섦의 함정): 인물의 배경과 맥락에서 떨어진 낯선 사물을 끌어오는 일. 비유가 인물을 낯선 세계로 끌고 가버리고, 인물의 좌표가 흐릿해진다.

좋은 비유는 이 양극단 사이의 좁은 자리 — 인물의 배경과 맥락 안에 실재하되, 단순한 시각적 대응에서는 벗어난 자리 — 에 놓입니다.

1-4. 그래서 ‘응용’이란 무엇인가

이제 이 교재의 출발점을 분명히 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유리병 속 알약처럼 쓰러지셨다’를 응용한다는 것은 이 문장을 외워서 단어만 바꿔 쓰는 일이 아닙니다.

외운 문장에 단어를 바꿔 넣는 식으로 응용하면, 작가는 결국 사물 하나에 사물 하나를 대응시키는 자리로 돌아갑니다. 원본의 형식은 빌렸지만 원본이 작동시키던 여러 층위는 빌리지 못한 채, 빈 껍데기만 가져오게 됩니다.

응용은 그 반대편의 일입니다. 원본 문장이 어떻게 여러 층위를 동시에 작동시키고 있는가를 분석하고, 그 작동 원리를 자기 인물에게 옮겨와 새로운 의미망을 짜는 일. 구조는 빌리되, 의미망은 자기 인물의 세계에서 새로 길어 올려야 합니다.

이 일을 어떻게 하는가 — 그것이 이 교재의 나머지가 안내하는 것입니다.

2. 원관념, 보조관념, 그리고 의미적 거리
2-1. 원관념과 보조관념

직유에서 표현하려는 대상을 원관념이라고 부르고, 그 원관념을 빗대는 다른 사물을 보조관념이라고 부릅니다.

‘아버지는 유리병 속 알약처럼 쓰러지셨다’에서 원관념은 ‘아버지’이고 보조관념은 ‘유리병 속 알약’입니다. 작가가 직접 그리려는 것은 아버지이고, 아버지를 그리기 위해 가져온 다른 사물이 유리병 속 알약입니다.

2-2. 의미적 거리 — 두 항이 다른 의미장에 있어야 한다

직유가 작동하려면 원관념과 보조관념이 서로 다른 의미장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이것을 의미적 거리라고 합니다.

‘아버지’는 가족·인간·일상의 의미장에 있고, ‘유리병 속 알약’은 약품·의료·관리의 의미장에 있습니다. 두 의미장이 다릅니다. 이 거리가 있을 때 비로소 한 항이 다른 항을 ‘닮았다’고 말할 여지가 생깁니다.

반대로 두 항이 같은 의미장에 있으면 비유가 비유로 도약하지 못하고 같은 평면 위로 떨어져 단락됩니다. 워크숍에서 나온 다음 문장이 그 사례입니다.

아버지는 내 옷에 걸려 있는 낚싯바늘을 향해 다리를 바구니 속 지렁이처럼 앞뒤로 움직이셨다.

이 문장은 ‘낚싯바늘’이라는 사물을 같은 문장 안에 박아둔 상태에서 ‘지렁이’를 보조관념으로 끌어왔습니다. 그런데 낚싯바늘과 지렁이는 같은 의미장(낚시) 안에 있는 사물입니다. 그래서 독자의 머릿속에서 지렁이는 다리의 형상이나 움직임을 환기시키는 비유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낚시 미끼’로 즉시 환원됩니다. 비유가 비유로 작동하지 못하고, 본문 장면 안의 또 하나의 등장물로 흡수됩니다.

원칙은 이렇습니다. 보조관념의 의미장은 본문(원관념과 그 주변 사물들)의 의미장과 분리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비유는 비유가 되지 못하고 사라집니다.

2-3. 그러나 너무 멀어서도 안 된다

의미적 거리는 너무 가까우면 안 되지만, 너무 멀어서도 안 됩니다. 인물이 살지 않는 세계에서 사물을 끌어오면, 비유가 인물을 그 낯선 세계로 끌고 가버립니다. 2026년 한국의 병실에 있는 화자가 갑자기 ‘무도회의 가면’을 비유로 쓰면, 화자가 어느 세계 사람인지 흐려집니다.

비유의 보조관념은 본문의 의미장과는 분리되되, 인물의 일상 세계 안에는 실재할 수 있는 사물 — 그 사이의 적절한 거리에 있어야 합니다.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자리. 이것이 비유의 첫 번째 균형입니다.

3. 원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3-1. 보조관념은 단어가 아니라 관계다

원본 문장에서 보조관념은 ‘알약’이 아닙니다. ‘유리병 속에 들어 있는 알약’입니다. ‘유리병 속’이라는 위치가 빠지면 의미가 절반 이상 사라집니다.

그 안에서 작동하는 의미망을 풀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유리병: 투명하다(다 보이지만 만질 수는 없다), 단단하다, 깨질 수 있다, 외부에서 관리하는 용기다.

— 알약: 정량화된 단위로 존재한다, 처방받아야 한다, 몸 안의 결핍을 메우기 위한 것이다, 매일 같은 방식으로 반복된다.

— ‘속’: 갇혀 있다, 외부에서 정해진 자리에 놓여 있다.

— 쓰러지다(빗대어진 동작): 통 안에서 다른 알약과 부딪히며 둔탁하게 흔들리는, 그러나 깨지지는 않는 작은 단단함.

이 의미망이 아버지에게 옮겨붙으면 아버지는 다음과 같은 사람이 됩니다. 약을 매일 먹는 사람, 누군가에게 관리되는 사람, 다른 사람들 안에서 한 알처럼 정량화되어 존재하는 사람, 외부에서는 다 보이지만 정작 만져지지는 않는 사람, 쓰러져도 깨지지는 않을 만큼 단단해진 작은 존재.

한 단어로 ‘취약하다’ ‘병들었다’라고 말했다면 이 모든 것이 한꺼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의미망은 단어가 아니라 관계에서 나옵니다.

3-2. 보조관념이 끌고 들어오는 네 겹

비유 하나를 쓸 때 작가가 가져오는 것은 사물 하나가 아닙니다. 네 겹이 동시에 들어옵니다.

(1) 사물 하나 (예: 알약)
(2) 그 사물이 놓인 위치 (예: 유리병 속)

(3) 그 위치가 만들어내는 관계 (예: 외부에 의해 관리·정량화됨)

(4) 그 관계가 함의하는 사회적·경제적·심리적 조건 (예: 약에 의지해 살아가는 노년의 자리)

이 (1)부터 (4)가 한꺼번에 원관념(인물)으로 옮겨가는 것이 ‘의미망의 형성’입니다. 사물 하나만 들고 오면 (1)밖에 가져오지 못합니다. 좋은 비유는 (2)와 (3), (4)까지 함께 끌고 옵니다.

4. 응용 예시 — 어머니는 샤넬백 속 24개월 영수증이 떨어지듯 창밖으로 떨어지셨다

원본을 응용한 한 문장입니다.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지 짚어봅니다.

4-1. 같은 것 — 문장의 구조

원본: [인물]은 [장소·맥락] 속 [사물]처럼 [동사].

응용: [인물]은 [장소·맥락] 속 [사물]이 [동사]듯 [방향·자리]로 [동사].

응용은 ‘구조를 빌리는 일’입니다. 원본의 문법 골격은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인물이 있고, 그 인물을 빗대는 사물이 있고, 그 사물이 놓인 위치가 있고, 사물이 하는 동작이 있고, 인물이 하는 동작이 있습니다.

4-2. 다른 것 — 의미망의 내용

그러나 채워 넣은 내용은 완전히 다른 의미망을 만들어냅니다.

— 샤넬백: 사회적 지위, 품격,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라는 선언, 보여주기 위해 가지고 다니는 것.

— 24개월 영수증: 분할 결제, 할부, 한 번에 낼 수 없었던 돈, 미래의 부채.

— ‘샤넬백 속 24개월 영수증’: 외피와 내부의 결정적 간극. 겉은 명품, 안은 부채.

— 떨어지듯: 누군가 가방을 열었을 때, 의도치 않게 흘러나오는, 들켜서는 안 됐던 것.

— 창밖으로 떨어지셨다: 사회적 위치(고층)에서의 추락. ‘샤넬백을 들 만한 자리’에서의 추락.

이 의미망이 어머니에게 옮겨붙으면 어머니는 다음과 같은 사람이 됩니다. 사회적 외관을 위해 자기 경제력을 초과하는 지출을 감당해온 사람, 그 부채를 가방 속에 숨겨온 사람, 그 숨김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된 순간에 추락한 사람.

4-3. 응용에서 결정적으로 작동한 것

주목해야 할 것은, ‘영수증이 떨어진다’와 ‘어머니가 떨어지신다’가 같은 의미축 위에서 만난다는 점입니다. 두 떨어짐이 단순히 시각적으로 닮은 게 아니라, 의미적으로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숨겨오던 것이 들켜서 추락한다’는 한 의미축이 비유와 본문 동작 모두를 관통합니다.

응용의 본질은 여기에 있습니다. 원본의 구조는 빌리되, 보조관념은 자기 인물의 세계에서 새로 길어 올리고, 그 보조관념과 본문 동작이 같은 의미축에서 만나도록 짜는 것입니다.

5. 응용할 때 작동해야 하는 의미망의 네 축

응용한 문장이 의미를 만들어내는가 여부는 다음 네 가지 축에서 결정됩니다. 네 축이 모두 작동할 때 비유는 단순한 묘사를 넘어 인물 자체를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축 1. 사물이 인물의 좌표를 떠안고 있는가

가장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이 사물이 이 인물의 무엇을 말해주는가’입니다. 인물의 직업, 계급, 세대, 경제적 처지, 관계 내 위치 — 무엇이든 좋습니다. 사물이 인물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면, 그 비유는 그저 동작의 시각적 모사일 뿐입니다.

자가질문: 이 비유에서 인물의 이름을 다른 인물로 바꿔 넣어도 똑같이 통한다면, 그건 이 인물의 비유가 아닙니다.

축 2. 비유의 사물이 인물과 같은 세계에 사는가

비유는 인물을 그 보조관념의 세계로 끌고 가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인물이 사는 세계 바깥에서 사물을 끌어오면 인물의 좌표가 흔들립니다. 이것이 2장에서 말한 ‘너무 멀면 안 된다’는 원칙입니다.

자가질문: 이 사물이 이 인물의 일상 안에 실재할 수 있는가? 인물이 실제로 그 사물을 만지거나 볼 수 있는 시공간에 있는가?

축 3. 동사의 무게와 사물의 물성이 맞물리는가

‘쓰러지다’는 사람 몸의 무게가 실리는 동사입니다. ‘반지가 손에서 빠지다’는 가볍고 작은 동작입니다. 둘을 붙이면 시각적으로도 의미적으로도 어긋납니다. 단어는 물성과 감각을 가지고 있고, 작가가 그것을 무시하고 단어를 그냥 붙일 수는 없습니다.

자가질문: 이 비유의 사물이 움직일 때 발생하는 무게·속도·소리와, 인물이 움직일 때 발생하는 무게·속도·소리가 같은 결인가?

축 4. 비유와 본문의 동작이 같은 의미축에서 만나는가

좋은 비유는 ‘시각만’ 닮지 않습니다. 의미가 같이 움직입니다. ‘샤넬백 속 영수증이 떨어진다’와 ‘어머니가 창밖으로 떨어진다’는 둘 다 ‘숨겨오던 것이 들켜서 추락한다’는 같은 의미축 위에 있습니다. 시각이 닮은 동시에 의미가 만납니다.

자가질문: 이 비유의 동작이 끝났을 때 무엇이 드러나는가, 그리고 본문 동작이 끝났을 때 무엇이 드러나는가. 두 ‘드러남’이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가?

6. 응용할 때 기술적으로 점검해야 할 세 가지

5장이 ‘비유가 인물을 드러내는가’의 차원이라면, 이번 장은 ‘비유가 비유로 기능하는가’의 차원입니다. 의미망이 잘 짜여 있어도 다음 세 가지에서 어긋나면 비유는 작동하지 않습니다.

6-1. 보조관념의 물성과 동사·부사의 결

각각의 사물은 고유한 운동 양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알약은 통 안에서 굴러다니고, 영수증은 종이답게 가볍게 떨어지고, 지렁이는 꿈틀거리거나 구부러집니다. 지렁이는 ‘앞뒤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사물의 물성이 정해놓은 운동 양태를 무시하고 작가가 임의로 동사·부사를 갖다 붙이면, 그 묶음은 신체 운동의 형상으로도 사물 운동의 형상으로도 그려지지 않습니다.

자가질문: 이 사물은 정확히 어떻게 움직이는가? 내가 쓴 동사·부사가 그 사물의 운동 양태와 맞는가? (예: 알약은 ‘구른다’ ‘부딪힌다’지 ‘흐른다’가 아니고, 지렁이는 ‘꿈틀거린다’ ‘구부러진다’지 ‘앞뒤로 움직인다’가 아니다.)

6-2. 시각화 가능성 — 그림이 그려지는가

좋은 비유는 독자의 머릿속에서 그림이 그려집니다. 어떤 자세에서, 어느 신체 부위가, 어느 방향으로, 누구와 어떤 공간 관계에서 — 이것이 모두 채워져야 그림이 됩니다. 비유가 이 정보 중 하나라도 비워두면 묘사 자체가 시각화에 실패합니다.

실패한 예: ‘아버지는 낚싯바늘을 향해 다리를 앞뒤로 움직이셨다’ — 왜 손이 아니라 다리인지, 다리의 어느 부분이 어디로 가는지, 아버지와 화자의 공간 관계는 어떤지가 비어 있어서, 독자는 어떤 장면을 그려야 할지 알 수 없습니다.

자가질문: 내가 쓴 비유 문장을 읽을 때 독자의 머릿속에 하나의 분명한 그림이 떠오르는가? 자세, 신체 부위, 방향, 공간 관계가 모두 그려지는가?

6-3. 수식의 단일성 — 무엇을 닮았다고 말하는가가 한 갈래여야

직유는 ‘A는 B처럼 무엇하다’라는 구조에서, 보조관념(B)이 원관념(A)의 무엇을 닮았다고 말하는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형상인지, 움직임의 양태인지, 방향성인지, 색깔인지 — 한 갈래여야 합니다. 갈래가 두세 개로 흩어지면 독자가 어디를 봐야 할지 모르고, 비유 전체가 모호해집니다.

실패한 예: ‘바구니 속 지렁이처럼 앞뒤로 움직이셨다’에서 ‘지렁이처럼’은 ① 다리의 형상을 가리키는지 ② 움직임의 양태를 가리키는지 ③ ‘앞뒤로’라는 방향성을 가리키는지 — 갈래가 흩어집니다.

자가질문: 내 비유의 보조관념이 원관념의 무엇을 닮았다고 말하는가? 그것이 한 갈래로 분명한가?

6-4. 수식의 단순성 — 한 문장이 여러 갈래로 분기하지 않아야

비유 문장은 흔히 길어집니다. 보조관념이 단어가 아니라 관계라는 사실 때문에, 한 사물에 위치·상태·시간 등의 수식이 따라붙기 때문입니다. ‘유리병 속 알약’, ‘샤넬백 속 24개월 영수증’ — 이런 묶음이 자연스럽게 길어집니다.

그러나 길어지는 것과 갈라지는 것은 다릅니다. 좋은 비유 문장은 길어도 갈라지지 않습니다. 한 보조관념이 명확하게 한 가지를 가리키고, 한 동작이 명확하게 한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길어지면서 갈라지는 문장은 다음과 같이 됩니다.

— 한 문장 안에 보조관념이 둘 이상 들어가는 경우.

— 수식어가 여러 단어에 동시에 걸려서 어느 것을 수식하는지 모호한 경우.

— ‘…처럼’ 안에 또 다른 ‘…처럼’이 들어가는 중첩 비유.

— 보조관념을 꾸미는 형용사가 너무 많아져서 보조관념 자체가 흐려지는 경우.

원칙은 단순합니다. 한 문장은 한 비유, 한 비유는 한 갈래. 두 가지를 동시에 말하고 싶다면 두 문장으로 나누십시오. 비유는 짧고 명확할수록 더 깊게 박힙니다. 욕심을 내서 한 문장에 두세 가지를 담으려고 하는 순간, 독자는 어느 것도 보지 못합니다.

자가질문: 내 문장이 길다면, 길어진 이유가 한 보조관념의 의미망을 정확히 짜기 위함인가, 아니면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말하려는 욕심 때문인가?

6-5. 비문 피하기 — 문장의 골격이 무너지지 않도록

비유에 골몰하다 보면 문장의 기본 구조 — 주어와 서술어, 수식과 피수식의 관계, 시제의 일치 — 가 무너지기 쉽습니다. 워크숍에서 자주 보이는 비문의 형태는 다음과 같습니다.

— 주어가 사라지거나 도중에 바뀌는 경우.

— 수식어가 어느 단어를 꾸미는지 명확하지 않은 경우.

— 동사가 둘 이상의 주어에 동시에 걸리는데 서로 어색한 경우.

— 비유 부분과 본문 부분의 시제가 어긋나는 경우.

— 조사가 잘못 붙어 문장의 의미 관계가 헝클어지는 경우.

비유는 문장 위에 얹는 장식이 아닙니다. 문장의 일부입니다. 문장이 비문이라면 그 안에 든 비유도 작동할 수 없습니다. 좋은 비유를 짜놓고도 문장이 비문이면, 그 비유는 독자에게 도달하지 못한 채 흩어집니다.

자기 문장을 쓰고 다시 읽을 때 가장 먼저 점검할 것은 의미망이나 의미축이 아니라 ‘이 문장이 한국어 문장으로 바로 서 있는가’입니다. 주어와 서술어가 맞물려 있는가, 수식 관계가 헝클어지지 않았는가, 동사가 자연스럽게 작동하는가, 시제가 일치하는가 — 이 기본이 통과된 후에야 비유의 점검이 의미를 갖습니다.

자가질문: 비유를 다 걷어내고 문장의 골격만 봤을 때, 한국어로 자연스럽게 작동하는가? 큰 소리로 읽었을 때 어딘가에 걸리지 않는가?

7. 자주 빠지는 실패 패턴 — 워크숍 실제 사례

워크숍에서 실제로 나온 문장들로 점검해 보겠습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다른 종류의 실패를 보여주기 때문에, 각각이 어떤 축이나 어떤 점검에서 어긋났는지 함께 짚어 보십시오.

7-1. 의미적 거리 실패 — 보조관념이 본문 의미장에 흡수됨

아버지는 내 옷에 걸려 있는 낚싯바늘을 향해 다리를 바구니 속 지렁이처럼 앞뒤로 움직이셨다.

낚싯바늘과 지렁이가 같은 의미장(낚시) 안에 있어서, ‘지렁이’가 비유로 도약하지 못하고 본문 장면의 ‘미끼’로 흡수됩니다. 보조관념은 본문의 의미장과 분리되어 있어야 합니다. 동시에 사물의 물성(지렁이는 ‘앞뒤로’ 움직이지 않습니다)과 수식의 단일성(다리의 형상인지 움직임인지 방향성인지)에서도 어긋납니다 — 세 가지가 동시에 무너진 문장입니다.

7-2. 시각적 모사에 머무름

여동생은 물감과 다른 색의 물감이 섞이듯 계곡물에 쓰러졌다.

물감이 물에 풀어지는 것은 시각적으로 흩어짐을 묘사할 뿐입니다. 여동생이 누구인지, 어떤 자리에서 어떤 무게로 쓰러졌는지 — 비유가 아무것도 떠안고 있지 않습니다. 축 1이 비어 있습니다.

7-3. 색·모양만 닮고 재현의 윤리가 무너짐

아버지는 백숙의 몸통에서 삐져나온 대추처럼, 빨간 피를 토해냈다.

빨강과 빨강, 삐져나옴과 토함 — 닮은 것은 색과 모양뿐입니다. 게다가 아버지의 몸을 음식으로 치환하면서 인물이 사물로 납작해지고, 피를 토하는 장면의 무게가 우습게 가벼워질 위험이 생깁니다. 이건 대상을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사회적으로 이미 약속된 상징(백숙=잔치음식)을 끌어다 쓰시면 안 됩니다. 클리셰일 뿐 아니라 재현의 윤리에 어긋납니다.

7-4. 다른 세계의 사물을 끌어옴

동생은 무도회의 가면을 쓰듯 마스크를 쓰고 할머니를 만나러 갔다.

마스크는 감염병·병문안의 세계에 속한 물건이고, 무도회 가면은 유럽 귀족의 사교·은닉의 세계에 속한 물건입니다. 두 세계가 한 문장 안에서 부딪히면서 동생이 어느 세계 사람인지 흐려집니다. 축 2가 무너졌습니다. 상상해서 쓰지 마십시오. 무도회를 직접이든 간접이든 관찰하셨을 때라야, 그것이 할머니나 동생을 소환할 부분을 찾아 쓸 수 있습니다.

7-5. 무게 불일치

아버지는 왼손에서 빠진 금반지처럼 침대에 쓰러졌다.

반지가 손에서 빠지는 동작은 가볍고 작습니다. ‘쓰러지다’는 사람 몸의 무게가 실리는 동사입니다. 시각적으로도 안 맞습니다. 축 3이 어긋났습니다. 만약 ‘왼손 금반지’에 결혼반지의 함의를 의도하셨다면, 그 정보는 비유가 떠맡을 게 아니라 본문이 직접 다뤄야 할 사건입니다.

7-6. 클리셰 — 누구에게나 적용 가능한 비유

고모는 솜이 빠진 인형처럼 침대에 누워있었다.

‘솜 빠진 인형’은 기진맥진한 사람을 가리키는 관용에 가깝습니다. 고모 자리에 다른 인물을 넣어도 똑같이 통합니다. 그러면 이건 이 고모의 비유가 아닙니다. 축 1이 비어 있는 또 다른 형태입니다.

7-7. 비유와 동작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함

어머니는 색칠되지 않은 그림책처럼 방 안에서 혼자 콩을 먹고 있었다.

‘색칠되지 않은 그림책’은 무채색·미완성의 어머니를 말하고 싶어 하는 듯한데, ‘콩을 먹는다’는 매우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행위입니다. 비유와 동작이 옆에서 따로 떠다닐 뿐 만나지 않습니다. 축 4가 어긋났습니다. 더불어, 어머니를 어린아이의 미완성 사물로 비유하는 것은 그 자체로 조심해야 할 지점입니다.

8. 응용 절차 — 일곱 단계

원본을 응용해 자기 문장을 만들 때 다음 일곱 단계를 따라보십시오. 처음에는 단계별로 멈춰가며 점검하고, 익숙해지면 머릿속에서 동시에 처리할 수 있게 됩니다.

단계 1. 원본의 구조 분해하기

‘아버지는 유리병 속 알약처럼 쓰러지셨다’를 부품으로 나눕니다. [인물] / [장소·맥락] 속 / [사물] / 처럼 / [동사]. 응용은 이 빈칸들을 자기 인물의 좌표로 채워 넣되, 각 부품이 서로 의미적으로 맞물리도록 짜는 일입니다.

단계 2. 자기 인물의 좌표 잡기

어떤 인물을 그릴 것인지 정합니다. 막연히 ‘아버지’ ‘어머니’가 아니라, 그 인물의 직업·계급·세대·경제적 처지·관계 내 위치를 한두 줄로 적어둡니다. 인물의 좌표가 흐릿하면 사물도 흐릿한 것밖에 고르지 못합니다.

단계 3. 인물 세계 안의 사물 목록 만들기

그 인물이 매일 보는 것, 만지는 것, 사용하는 것, 그 인물의 직업·집·동선 안에 실재하는 사물 20개를 적어보십시오. 머릿속에서 그럴듯한 것을 만들지 말고, 직접·간접 관찰의 범위 안에서 적으십시오.

단계 4. 의미적 거리 점검

20개 중에서 두 부류를 제외합니다. 첫째, 본문 장면 안에 이미 등장한 사물의 의미장에 속한 것들 (그러면 비유가 본문 장면으로 흡수됩니다). 둘째, 인물이 살지 않는 세계의 사물들 (그러면 인물의 좌표가 흔들립니다). 남은 사물들이 의미적 거리의 적절한 자리에 있는 후보들입니다.

단계 5. 인물의 좌표를 떠안는 사물 골라내기

남은 사물 중에서, ‘이 사물이 왜 하필 이 인물 옆에 있는가?’가 설명되는 사물 서너 개를 골라냅니다. 이 사물이 인물의 사회·경제적·심리적 조건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가를 묻습니다.

단계 6. 사물의 ‘관계’ 한 줄 더 끌어오기

사물 하나만 끌어오지 마십시오. 그 사물이 놓인 위치, 다른 사물과의 관계, 그 사물이 거치는 시간 중 하나를 같이 끌어오십시오. ‘영수증’이 아니라 ‘샤넬백 속 24개월 영수증’입니다. ‘알약’이 아니라 ‘유리병 속 알약’입니다. 이 한 줄이 의미망을 만듭니다.

단계 7. 동사·부사 결 맞추고 그림 점검하기

선택한 사물의 운동 양태에 맞는 동사·부사를 고릅니다. 그리고 자기 문장을 소리 내어 한 번 읽으면서, 머릿속에 하나의 그림이 떠오르는지 점검합니다. 그림이 흐릿하다면 어느 정보가 비어 있는지 찾아 채웁니다.

워크스루 — 실제로 만들어보면

위 일곱 단계를 따라 한 문장을 만들어보겠습니다.

단계 1 (구조 분해): [인물]은 [장소·맥락] 속 [사물]처럼 [동사].

단계 2 (인물 좌표): 30년째 같은 자리에서 분식집을 운영해온 50대 후반의 여성. 자식 둘은 도시로 보냈고, 가게 옆 단칸방에서 혼자 산다. 새벽에 시장에서 재료를 받아 오고, 자정 가까이까지 가게를 연다.

단계 3 (사물 목록 20개 발산): 라면 냄비, 떡볶이 국자, 식자재 거래처 영수증 묶음, 손때 묻은 메모장, 자식들 옛 사진, 오래된 거래처 캘린더, 30년 된 간판, 매일 빨아 색이 바랜 앞치마, 카운터 옆 라디오, 단골 학생들이 두고 간 우산, 손등에 난 화상 자국 위에 붙인 일회용 밴드, 가스레인지 옆 부탄 토치, 셔터 손잡이, 입구 매트, 메뉴판 위 가격 수정 스티커, 단골 가게에서 빌려온 미니 냉장고, 자식들 어릴 때 쓰던 식탁, 봉지커피, 동전 통, 배달 가방.

단계 4 (의미적 거리 점검): 본문 장면이 ‘가게에서 일하는 모습’이라면, 가게 안의 도구들(라면 냄비, 떡볶이 국자, 가스레인지)을 보조관념으로 쓰면 비유가 본문 장면에 흡수됩니다. 제외. ‘무도회 가면’이나 ‘피아노 페달’ 같은 인물 세계 바깥의 사물은 애초에 목록에 들어 있지 않습니다(잘 발산했습니다). 남는 후보: 거래처 영수증 묶음, 메모장, 30년 된 간판, 앞치마, 자식들 옛 사진, 거래처 캘린더, 단골들이 두고 간 우산.

단계 5 (좌표를 떠안는 사물 골라내기): ‘이 사물이 왜 하필 이 인물 옆에 있는가?’를 묻습니다. — 30년 된 간판(30년이라는 시간이 인물 자체임), 매일 빨아 색이 바랜 앞치마(반복되는 노동이 인물 자체임), 단골들이 두고 간 우산(인물이 머무는 자리에 쌓이는, 인물의 것이 아닌 것들).

단계 6 (관계 한 줄 더): ‘간판’이 아니라 ‘글자가 다 벗겨진 채 30년을 매달려 있는 간판’. ‘앞치마’가 아니라 ‘매일 빨아 색이 바랜, 끈이 헐겁게 풀린 앞치마’. ‘우산’이 아니라 ‘단골들이 두고 간 채 카운터 옆 통에 꽂혀 있는 색 다른 우산들’.

단계 7 (동사·부사 결 + 그림 점검): 후보 문장 — ‘그녀는 글자가 다 벗겨진 채 30년을 매달려 있는 가게 간판처럼 셔터 앞에 서 있었다.’ / 그림이 그려지는가: 셔터 앞에 서 있는 여자, 그 위에 글자가 벗겨진 간판. 같은 자리, 같은 세월. 그림이 한 장으로 떠오릅니다. 의미축이 만나는가: ‘30년을 매달려 있다’(간판)와 ‘셔터 앞에 서 있다’(여자) — 둘 다 ‘같은 자리에 오래 머문 채 자기 정체가 점점 닳아온’ 한 의미축에 있습니다. 통과.

이렇게 만들어진 한 문장이 ‘그녀는 글자가 다 벗겨진 채 30년을 매달려 있는 가게 간판처럼 셔터 앞에 서 있었다’입니다. 원본의 구조를 빌렸지만, 보조관념·의미망·동사 결합·의미축 모두가 자기 인물의 세계에서 새로 길어 올려진 문장입니다.

9. 워크숍에서 작동한 응용 시도들

워크숍에서 작가님들이 실제로 쓴 문장들 중, 의미망이 형성되기 시작한 시도들을 함께 봅니다. 한 문장이 어떻게 네 축을 잠가가는지 같이 짚어 보십시오.

사례 A.

딸은 종이컵에 든 소주처럼 땀에 젖은 채 장롱에 숨어있었다.

종이컵에 든 소주는 임시성, 비공식성, 들켜서는 안 되는 것의 의미망을 갖습니다. 술잔이 아니라 종이컵이라는 것 — 정식 자리에서가 아니라 급하게, 숨겨가며 마신 것. 그 의미망이 ‘땀에 젖은 채 장롱에 숨어있는 딸’에게 옮겨붙으면서, 딸이 어떤 자리에 있는 사람인지가 한꺼번에 들어옵니다. 축 1·2·4가 함께 작동합니다.

사례 B.

누나는 다 쓴 파우더 속 퍼프의 짙은 갈색 면이 뻣뻣해지는 것처럼 친척들 앞에 서면 몸이 굳었다.

파우더와 퍼프는 누나의 일상 세계 안에 있는 사물입니다(축 2). ‘다 써서 짙은 갈색이 된, 뻣뻣해진 퍼프’ — 반복되는 사용으로 인해 닳고 굳어버린 것의 의미망이, ‘친척들 앞에서 굳는 몸’에 옮겨붙습니다. 반복적 마모라는 의미축이 비유와 동작 모두를 관통합니다(축 4). 누나가 친척들 앞에서 굳는 일이 한 번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누나의 표면을 굳혀온 일이라는 정보가, 비유 하나로 들어옵니다.

사례 C.

할머니는 내 상복에 간신히 걸려 있던 완장이 흘러내리듯 주저앉았다.

상복과 완장은 할머니의 죽음·장례라는 동일 시공간 안에 있는 사물입니다. 축 2가 거의 완벽하게 잠겨 있습니다. ‘간신히 걸려 있던’이라는 위태로움이 할머니의 무너짐과 같은 의미축에서 만납니다(축 4). 더불어 완장이 화자의 몸에서 흘러내린다는 것 — 화자 역시 그 무너짐의 자장 안에 있다는 것까지 함께 옮겨옵니다. 한 비유 안에 두 명의 인물이 동시에 드러납니다.

사례 D.

아버지는 위태롭게 쌓인 책더미 속에서 건축사 개론 책이 떨어지듯 콘크리트 바닥으로 떨어지셨다.

‘건축사 개론’은 아버지의 직업적 좌표를 떠안습니다(축 1). 그리고 ‘콘크리트 바닥’까지 같은 의미망 — 건축 — 안에 있습니다. 아버지가 평생 쌓아온 직업의 세계가, 그가 떨어지는 자리(콘크리트 바닥)와 그가 닮은 사물(건축 책)에 모두 깔려 있습니다. 의미망이 한 문장 안에서 세 번 만나는 셈입니다.

10. 아직 한 걸음 더 가야 하는 시도들

같은 워크숍에서, 시각은 닮았지만 의미축이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시도들도 있습니다. 이것이 ‘실패’가 아니라 ‘한 걸음 남았다’는 신호임을 기억하십시오. 어디까지 와 있고 어디가 비어 있는지 정확히 짚는 일이 다음 작업의 출발입니다.

나는 책가방 속 문제집처럼 바닥에 주저앉았다.

문제집은 화자가 학생이라는 좌표는 줍니다(축 1 약하게 작동). 그러나 ‘주저앉음’과 문제집의 관계가 단순 시각으로만 묶여 있어서, 책가방 속 문제집이 왜 바닥에 주저앉는지, 그것이 화자의 무엇을 드러내는지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한 걸음 더 가려면 사물의 상태를 한 줄 더 끌어와야 합니다 — 예를 들어 ‘모서리가 접힌 채로 가방 바닥에 눌려 있던 문제집’처럼. ‘눌려 있던’이 들어오는 순간 인물의 좌표가 함께 들어옵니다.

그는 책가방 속 위치추적기처럼 저멀리 튕겨져나가 쓰러졌다.

위치추적기는 강력한 의미망 — 감시당함, 추적당함, 의도와 무관하게 위치가 노출됨 — 을 갖습니다. 인물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줄 수 있는 사물입니다. 그러나 ‘튕겨져나가다’라는 동작과 위치추적기가 만나는 의미축이 아직 보이지 않습니다. 위치추적기가 책가방에서 튕겨 나가 신호가 끊긴다 — 라는 동작이라면 의미축이 잠깁니다. 동사를 다시 골라야 합니다.

11. 퇴고 — 객관화의 단계

응용 절차의 일곱 단계를 다 거쳤다고 해서 한 문장이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거의 모든 좋은 문장은 ‘쓰기 → 멈추기 → 다시 쓰기’의 두 번째 단계를 통과한 문장입니다. 이 두 번째 단계를 우리는 ‘객관화’ 또는 ‘퇴고’라고 부릅니다.

11-1. 객관화란 무엇인가

객관화는 자기가 쓴 문장을 남의 문장으로 읽는 일입니다. 내가 의도한 것이 아니라 문장 자체가 실제로 작동시키고 있는 것을 읽는 일. 내가 쓰고 싶었던 것과 내가 실제로 쓴 것 사이의 간극을 발견하는 일.

쓰고 나서 곧장 읽으면 객관화가 잘 되지 않습니다. 머릿속에 의도가 아직 너무 가까이 있어서, 문장이 실제로 말하지 않는 것을 ‘말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객관화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쓰고 나서 하루를 지나보내고, 다음 날 다시 읽어보는 것입니다.

11-2. 객관화의 구체적 절차

한 문장을 쓰고 다음 날 다시 읽을 때, 다음 질문을 차례로 던지십시오.

(1) 이 문장은 한국어 문장으로 바로 서 있는가? 비문은 아닌가? (6-5)

(2) 보조관념이 인물의 배경과 맥락 안에 실재하는 사물인가? 낯섦으로 도망치지 않았는가? (1-3)

(3) 보조관념의 의미장은 본문 의미장과 분리되어 있는가? (2장의 의미적 거리)

(4) 이 사물이 인물의 좌표를 떠안고 있는가? 인물 이름을 바꿔도 같은 문장이 되는가? (축 1)

(5) 이 사물이 인물의 세계 안에 실재하는가? (축 2)

(6) 비유의 동작과 본문의 동작이 같은 무게·속도를 갖는가? (축 3)

(7) 비유와 본문 동작이 같은 의미축에서 만나는가? (축 4)

(8) 사물의 물성에 맞는 동사·부사를 골랐는가? (6-1)

(9) 머릿속에 하나의 분명한 그림이 떠오르는가? (6-2)

(10) 보조관념이 원관념의 무엇을 닮았다고 말하는지가 한 갈래로 분명한가? (6-3)

(11) 한 문장이 여러 갈래로 분기하지 않고 한 비유, 한 갈래로 깔끔한가? (6-4)

11-3. ‘한 내용을 배우면 전 내용을 소홀히 하는 경향’

작가가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단계에서 가장 흔히 벌어지는 일은, 새로 배운 한 가지에 집중하느라 이전에 배운 것들을 놓치는 것입니다. 의미적 거리를 새로 배우면 인물 좌표를 잊고, 인물 좌표를 새로 배우면 동사 결합을 잊습니다.

객관화의 단계는 이것을 막아주는 자리입니다. 자기가 새로 배운 한 가지에만 집중해서 쓴 문장을, 다음 날 이전에 배운 모든 것의 체크리스트로 다시 점검하는 것. 그래야 비유는 한 축에서 작동하다가 다른 축에서 무너지는 일을 피할 수 있습니다.

12. 자가 점검 체크리스트

응용 문장을 다 쓰고 다음 날 다시 읽을 때, 다음 열네 가지를 통과하는지 점검하십시오. 하나라도 걸리면 그 자리에서 다시 씁니다.

문장이 한국어 문장으로 바로 서 있는가? 비문이 아닌가?

한 문장이 한 비유, 한 갈래로 단순한가? (보조관념이 둘이거나 수식이 여러 갈래로 분기하지 않는가?)

보조관념이 인물의 배경과 맥락 안에 실재하는 사물인가? 낯섦으로 도망치지 않았는가?

원관념과 보조관념이 서로 다른 의미장에 있는가? (의미적 거리 확보)

보조관념이 본문 장면에 이미 등장한 사물의 의미장에 속하지 않는가?

보조관념이 인물이 살지 않는 세계의 사물은 아닌가?

인물의 자리에 다른 인물을 넣어도 통하는 비유인가? → 통한다면 다시.

사물 하나만 가져왔는가, 사물이 놓인 관계까지 가져왔는가? → 하나뿐이라면 한 줄 더.

비유의 동작과 본문 동작의 무게·속도가 같은 결인가?

비유가 ‘시각만’ 닮았는가, 아니면 의미가 같이 움직이는가?

이미 사회적으로 약속된 상징·관용·클리셰를 끌어다 쓰진 않았는가?

인물을 사물로 납작하게 만들지 않았는가? (재현의 윤리)

사물의 물성에 맞는 동사·부사를 골랐는가?

내 문장을 읽을 때 독자의 머릿속에 하나의 분명한 그림이 떠오르는가?

◆ ◆ ◆
닫으며

비유는 작가가 인물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가장 정직하게 드러내는 자리입니다. 인물의 외부에서 인물에게 비유를 ‘입히는’ 것이 아니라, 인물이 사는 세계 안에서 인물 자신이 닮아 있는 것을 발견하는 일에 가깝습니다.

발견은 관찰에서 옵니다. 관찰에서 오지 않은 비유는 아무리 그럴듯해도 결국 빈말입니다. 작가가 인물의 세계를 충분히 보고 있을 때, 비유는 그 세계에서 저절로 떠올라옵니다. 비유가 떠오르지 않는다면, 비유 자리를 비워두고 인물의 세계를 다시 보십시오. 비유는 마지막에 와야 합니다. 인물보다 먼저 와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좋은 문장은 거의 모두 두 번째로 쓰인 문장입니다. 첫 번째로 쓴 문장을 다음 날 다시 읽고, 자기가 쓴 것을 남의 문장으로 객관화하고, 다시 쓰는 일 — 이 반복을 견딘 문장만이 작가의 의도를 넘어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08

외울 문장과 외우지 말아야 할 문장

외울 문장과 외우지 말아야 할 문장

― 문장 안목을 키우기 위한 안내 ―
뉴스페이퍼 창작 아카데미
들어가며 ― 왜 외우는가

문장을 외우는 일은 좋은 문장을 수집하는 일이 아닙니다. 외운 문장은 결국 손끝으로 흘러나옵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외우느냐가 곧 어떤 문장을 쓰게 되느냐를 결정합니다.

이 글은 좋은 문장의 목록을 알려드리려는 글이 아닙니다. 외울 만한 문장과 외워서는 안 될 문장을 스스로 가려낼 수 있는 안목을 키워드리는 것이 목적입니다. 좋은 문장을 모아두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무엇이 좋은 문장인지 자기 기준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적습니다. 그 기준을 가지신 분이 결국 글을 쓰게 됩니다.

문장을 가져오실 때마다 "왜 이 문장이 외울 가치가 있는가"를 한 줄로 적어 와 주십시오. 그 한 줄을 쓸 수 없다면 그 문장은 아직 본인의 문장이 아닙니다. "분위기가 좋아서", "마음에 와닿아서", "느낌이 좋아서"는 답이 아닙니다. 답은 통사·동사·명사·이미지·리듬 가운데 적어도 한 층위에서 나와야 합니다.

1. 외워야 할 문장의 네 가지 조건

좋은 문장은 화려한 문장이 아니라 정확한 문장입니다. 외울 만한 문장은 다음 네 가지 가운데 적어도 두 가지를 충족합니다.

1-1. 짧은데 밀도가 높을 것

짧다는 것은 단지 글자 수의 문제가 아닙니다. 짧은 문장 안에 정보·정서·시간이 동시에 압축되어 있어야 합니다. "길어서 풍성한 문장"은 대개 길어서 묽은 문장입니다.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그 애를 낳은 건, 우리가 너무 어렸을 때라. ― 김애란, 「두근두근 내 인생」

두 문장 안에 인물 관계, 시간의 층위, 정서적 무게가 동시에 들어섭니다. "어렸을 때라"의 어미가 회한과 변명을 동시에 머금고 있습니다. 이렇게 짧은 문장 안에 여러 겹이 포개진 것을 외워두십시오.

1-2. 비유가 아닌 동사·명사의 정확함으로 서 있을 것

비유는 손쉬운 도구입니다. 그래서 위험합니다. 진짜 좋은 문장은 비유 없이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동사 하나, 명사 하나의 선택이 정확하면 비유는 오히려 군더더기가 됩니다.

무재 씨와 나는 오래 걸었다. ― 황정은, 「百의 그림자」

부사도 형용사도 비유도 없습니다. "오래"라는 평범한 부사 하나와 "걸었다"라는 동사 하나로 인물 관계의 정서 전체를 세웁니다. 이런 문장을 외우시면 덜어내는 감각이 손에 붙습니다.

1-3. 한 번 읽으면 이미지가 또렷이 박힐 것

이미지는 추상이 아니라 구체에서 옵니다. 그리고 구체는 디테일의 정확한 선택에서 옵니다. 좋은 문장은 읽고 난 뒤에도 장면이 망막에 남습니다.

장 보러 가는 길 실종자 전단지를 받는다 나눠주는 이는 식당을 개업한 사람과 얼굴이 다르지 않다. ― 서윤후, 「소요한 생활」

두 개의 일상적 사실을 나란히 놓았을 뿐인데, 그 병치에서 도시적 익명성과 슬픔의 평준화가 솟아오릅니다. 묘사하지 않고 배열함으로써 이미지가 만들어진 사례입니다.

1-4. 통사 구조 자체가 학습 가치가 있을 것

외운다는 것은 결국 통사를 몸에 익히는 일입니다. 같은 의미라도 다른 통사로는 쓸 수 없는 문장, 그 통사가 곧 의미인 문장이 외울 가치가 있습니다.

아내가 채식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그녀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 한강, 「채식주의자」

"~하기 전까지, ~한 적이 없었다"라는 통사 구조 자체가 사건 이전과 이후를 한 호흡 안에 갈라놓습니다. 도입부 설계의 정석이라 외워두시면 시간 구조를 한 문장에 압축하는 법을 익히게 됩니다.

2. 외워서는 안 될 문장의 다섯 가지 패턴

외워서는 안 될 문장은 단순히 못 쓴 문장이 아닙니다. 그럴듯해 보여서 손쉽게 모방하게 되는 문장, 한 번 손에 붙으면 빠지지 않는 문장이 가장 위험합니다. 다음 다섯 가지 패턴은 특히 조심하십시오.

2-1. 비유를 비유로 받아치는 문장

처음 비유에서 얻은 정서적 효과를 다음 문장에서 다시 주물러 풀어버리는 패턴입니다. 비유가 발견의 도구가 아니라 장식이 됩니다.

도윤의 시선이 과거 이 집에 살았던 사람들의 영혼이 말라붙은 양 군데군데 누르스름한 얼룩이 끼어 있는 빛바랜 벽지를 이리저리 맴돌다 형광등에서 멈췄다. 형광등에 그을린 주변 벽지에 달라붙은 영혼은 속세에 미련이 강했는지 누리끼리한 갈색이었다.

얼룩을 영혼에 비유한 뒤, 그 비유를 사실인 것처럼 한 번 더 주물러 색깔까지 부여합니다. 비유가 두 번 사용되는 순간 첫 비유의 힘이 풀려버립니다. "누르스름한―누리끼리한―갈색"의 동어반복도 어휘 선택의 망설임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비유는 한 번에 일을 마치고 빠져야 합니다.

2-2. 수식이 한 명사 앞에 과적된 문장

좋은 문장은 수식을 분산시키거나 절을 끊어냅니다. 한 명사 앞에 수식 절이 길게 매달리면 호흡이 무너집니다. 본인이 가져온 문장에서 핵심 명사 하나를 찾고, 그 앞에 붙은 수식이 몇 어절인지 세어보십시오. 다섯 어절을 넘어가면 대개 통사 설계가 미숙한 문장입니다.

2-3. 명사구를 마침표로 끊어 긴장을 조작하는 문장

이 패턴이 가장 위험합니다. 명사구를 마침표로 끊어 나열하면 무조건 긴장감이 생기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지요.

울음소리. 한숨 소리. 낮게 투덕거리는 소리. 신음 소리. 짧은 비명.

작품 안에서는 작동할 수 있으나, 떼어 외우면 본인의 글에서 남발됩니다. 게다가 나열된 소리들이 "울음=슬픔, 신음=고통"처럼 감정을 직접 지시하고 있어 청각 묘사로도 정확하지 않습니다. 진짜 좋은 청각 묘사는 감정을 지시하지 않는 소리를 골라냅니다.

같은 단문 끊기지만 다음 문장은 다릅니다.

아이가 조금 칭얼거렸다. 몸을 뒤척였다. 태오는 깜짝 놀라 멈춰섰다. 아이가 칭얼대다 몸을 엎드렸다. 다시 잠들었다. 새근거렸다.

이쪽은 동사 단문입니다. 시간의 흐름과 인물의 신체적 정지가 동시에 만들어집니다. 명사 나열과 동사 단문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2-4. 소재의 정서적 연상에 기댄 문장

커튼·햇살·마루·창문·기차·바다처럼 그 자체로 정서적 연상이 강한 소재를 평이하게 묘사하면, 문장의 힘이 아니라 소재의 힘으로 문장이 서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것을 자기 문장의 힘으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진단해 보는 방법이 있습니다. 문장 속 명사를 모두 무난한 다른 명사로 바꿔보십시오. 커튼을 문으로, 햇살을 공기로. 바꿔도 문장이 살아 있다면 진짜 좋은 문장이고, 바꾸자마자 죽어버리면 소재에 기댄 문장입니다.

2-5. 직접인용 의문문으로 정서를 호소하는 문장

"언제까지 씻어? 얼마나 더 씻어야 해? 이렇게 울게 되고" 같은 패턴입니다. 시 안에서는 정서적으로 작동하지만, 통사 구조가 단순하고 외워서 체화할 만한 정확함보다 호소력에 기대고 있어 학습 효과가 적습니다.

3. 번역서를 외우지 말아야 할 이유

자주 가져오시는 출처 가운데 번역 소설이 있습니다. 카뮈, 카프카, 무라카미 하루키, 살리 루니. 이 문장들이 좋게 느껴지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외우시면 안 됩니다. 이유를 짚어드립니다.

3-1. 번역서의 문장은 원작자의 문장이 아닙니다

번역서의 문장은 원작자가 쓴 것이 아니라 번역자가 쓴 것입니다. 번역자의 한국어 감각, 어휘 선택, 통사 처리의 결과물이지요. 무라카미 하루키의 같은 작품이 김춘미의 번역인지 임홍빈의 번역인지에 따라 전혀 다른 한국어가 됩니다. 본인이 외운 것이 누구의 문장인지 본인도 모르게 되는 셈입니다.

3-2. 한국어 통사 감각이 아니라 번역 통사 감각이 손에 붙습니다

번역 문장에는 원어의 통사 구조가 흔적으로 남습니다. 영어 번역체의 "~하는 것이었다", 일본어 번역체의 "~인 것이다", 관계대명사를 풀어낸 긴 수식 절. 이런 구조는 한국어로서 부자연스럽거나, 자연스럽더라도 한국 작가들이 일상적으로 쓰는 통사가 아닙니다. 외우면 본인의 글이 "번역체"가 됩니다. 입시 심사위원은 그것을 한 줄 안에 알아봅니다.

3-3. 음악성과 리듬이 사라진 자리에서 의미만 외우게 됩니다

문장의 절반은 의미고 절반은 리듬입니다. 번역은 의미를 옮기지만 리듬은 옮기지 못합니다. 원작의 호흡, 모음의 배치, 음절 수의 박자가 모두 다른 언어의 것으로 대체됩니다. 외우시는 것은 시신경에 비친 의미일 뿐, 입과 귀로 굴러가는 한국어 문장이 아닙니다.

3-4. 그래도 외우고 싶다면

번역서를 읽는 일 자체는 권장합니다. 다만 외우는 일에는 권하지 않습니다. 정 외우고 싶으시다면 "이 번역자의 한국어가 좋아서 외운다"고 명확히 의식하시고, 번역자 이름까지 함께 기억하십시오. 김석희, 안정효, 황보석, 정영목 같은 번역자의 한국어는 그 자체로 산문의 한 영역을 이루므로 학습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때도 "원작자가 이렇게 썼다"고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4. 장르문학을 외우지 말아야 할 이유

추리, 판타지, SF, 로맨스, 스릴러, 웹소설. 즐겨 읽는 장르의 문장을 외우려는 경우가 많습니다.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재미있는 글"과 "문장이 외울 가치가 있는 글"은 다른 영역에 있습니다.

4-1. 문장의 우선순위가 다릅니다

장르문학은 플롯의 추진력을 최우선에 둡니다. 다음 페이지로 독자를 끌고 가는 것이 문장의 임무입니다. 그래서 정보 전달의 효율이 높고, 문장 단위의 밀도는 일부러 낮춥니다. 모든 문장이 "읽히는 속도"에 맞춰져 있지요. 외울 만한 문장은 오히려 그 흐름을 방해합니다. 장르문학에서 외울 문장을 찾기 어려운 것은 작가의 실력 문제가 아니라 장르의 설계 원리 문제입니다.

4-2. 클리셰화된 표현이 정확함의 자리를 대신합니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눈동자가 흔들렸다",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장르문학의 표현은 독자가 즉각 알아볼 수 있도록 코드화되어 있습니다. 장르 내부에서는 효율적인 약속이지만, 외우시면 본인의 글에서 그대로 튀어나옵니다. 클리셰는 한 번 손에 붙으면 빠지지 않습니다.

4-3. 캐릭터·세계관 묘사가 도식화되어 있습니다

"날카로운 콧날", "조각 같은 이목구비", "서늘한 눈빛", "고풍스러운 저택." 인물과 공간 묘사가 미리 정해진 어휘 풀에서 조립됩니다. 이런 문장을 외우시면 인물을 "보는" 능력이 자라지 않고 "부르는" 능력만 자랍니다. 입시에서 가장 빨리 탈락하는 글이 바로 이런 글입니다.

4-4. 장르 안에서도 문장으로 살아남는 작가들

물론 예외는 있습니다. 추리에서 마쓰모토 세이초, SF에서 김초엽·정세랑·테드 창, 판타지에서 어슐러 르 귄. 이들은 장르 안에서도 문장 단위의 정확함을 포기하지 않은 작가들입니다. 다만 이 작가들조차 외우실 때는 장르적 효율을 위해 쓰인 문장과 그 작가의 문장으로서 외울 가치가 있는 문장을 구분하실 수 있어야 합니다. 그 구분이 아직 어려우시다면, 우선 본격문학 쪽에서 외우는 훈련을 충분히 하신 뒤에 돌아오시는 편이 낫습니다.

5. 좋은 묘사 ― 무엇을 쓰지 않을 것인가

묘사는 본 것을 적는 일이 아닙니다. 본 것 가운데 무엇을 적지 않을지 선택하는 일입니다. 시선 안에 들어온 모든 것을 적으면 묘사가 아니라 목록이 됩니다. 좋은 묘사는 잘라낸 자리에서 만들어집니다.

5-1. 감정을 지시하지 않는 디테일을 고를 것

가장 자주 빠지는 함정은 디테일을 통해 감정을 "설명"하려는 것입니다. 슬픔을 쓰기 위해 우는 얼굴을 묘사하고, 외로움을 쓰기 위해 빈 의자를 묘사하지요. 그러면 묘사가 감정의 동의어로 전락합니다. 진짜 좋은 묘사는 감정과 직접 연결되지 않는 디테일을 골라옵니다.

아이를 안고 있지 않는데도 재울 시간이 되면 팔이 저릿하고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리움이라는 단어가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대신 "재울 시간"이라는 시간 조건과 "팔이 저릿"이라는 신체 감각이 들어섭니다. 신체가 시간을 기억한다는 사실 하나로 그리움 전체가 환기됩니다.

5-2. 시점 인물의 시선이 묻은 묘사일 것

같은 방을 묘사하더라도 형사와 도둑은 다른 것을 봅니다. 묘사에는 보는 사람의 욕망·직업·심리가 묻어 있어야 합니다. "객관적인 묘사"는 대개 "아무도 보지 않은 묘사"입니다. 본인이 쓴 묘사에서 시점 인물 이름을 가리고 다른 인물 이름을 넣어보십시오. 누구의 시선이어도 똑같다면 그건 시선이 빠진 묘사입니다.

5-3. 동사가 살아 있을 것

묘사를 형용사에 맡기면 정적인 사진이 되고, 동사에 맡기면 움직이는 장면이 됩니다. "낡은 의자"는 형용사고 "의자가 삐걱댔다"는 동사입니다. 형용사를 줄이고 동사를 늘리는 것만으로도 묘사가 살아납니다.

주저하듯 불이 켜졌다.

"불이 켜졌다"라는 동사 하나에 "주저하듯"이라는 부사 하나만 얹었습니다. 형용사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점멸하는 불의 운동성과 그것을 바라보는 인물의 심리가 동시에 들어섭니다.

5-4. 피해야 할 것 ― 시각 일변도와 형용사 과적

묘사가 평면적인 첫 번째 이유는 시각에만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청각·후각·촉각·온도·공기의 밀도까지 함께 들어와야 공간이 살아납니다. 두 번째 이유는 형용사 과적입니다. "낡고 어둡고 음습한 골목"처럼 형용사를 세 개 쌓으면, 한 개일 때보다 묘사가 약해집니다. 형용사는 하나만 정확히 고르시거나, 차라리 동사로 바꾸십시오.

6. 좋은 은유 ― 거리와 절제

은유는 두 사물 사이의 거리에서 발생합니다. 거리가 가까우면 은유가 아니라 동의어가 되고, 거리가 너무 멀면 자의적인 말장난이 됩니다. 좋은 은유는 "멀지만 닿는" 자리에 정확히 놓입니다.

6-1. 거리가 멀어야 살아난다

"눈물처럼 흐르는 빗방울"은 은유가 아닙니다. 빗방울과 눈물은 너무 가깝습니다. 둘 다 액체고 떨어지는 것이지요. 그러나 "춥다는 건 곤경을 그리는 데 좋은 도구"(서윤후)는 은유입니다. 추위는 기상 현상이고 곤경은 정서이며 도구는 사물입니다. 세 영역이 한 문장에 들어와 부딪힙니다. 그 부딪힘에서 발견이 일어납니다.

본인이 쓴 은유의 두 항을 종이에 적어 보십시오. 그 둘이 같은 카테고리에 속한다면 ― 둘 다 자연물이거나, 둘 다 신체 감각이거나, 둘 다 시간 표현이라면 ― 은유로서 약합니다.

6-2. 한 번만 쓰고 빠질 것

앞서 "비유를 비유로 받아치는" 패턴에서 다룬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좋은 은유는 한 번에 일을 마치고 사라집니다. 같은 비유를 다음 문장에서 다시 주물러 색깔이나 형태를 부여하면, 첫 비유의 발견이 풀려버립니다. 은유는 폭죽이지 양초가 아닙니다.

6-3. 추상을 구체로 번역할 것

좋은 은유의 기본 방향은 추상에서 구체입니다. "슬픔이 깊다"는 약한 은유입니다. "깊다"가 너무 흔한 추상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슬픔이 무릎까지 차오른다"고 쓰면 은유가 신체화됩니다. 추상 명사가 만져지는 사물의 자리로 내려옵니다. 외울 만한 시인들의 은유는 거의 예외 없이 이 방향으로 갑니다.

6-4. 감각의 전이

한 감각을 다른 감각으로 옮겨 쓰는 것입니다. "붉은 비명"은 시각으로 청각을, "차가운 침묵"은 촉각으로 청각을, "달콤한 풍경"은 미각으로 시각을 받아냅니다. 다만 공감각도 클리셰가 된 것이 많습니다. "푸른 슬픔", "따뜻한 시선" 같은 표현이 본인의 펜에서 나왔다면, 누가 이미 쓴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보십시오.

6-5. 피해야 할 것 ― 죽은 은유와 자기설명

"심장이 멎는 듯했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세상이 무너지는 듯했다." 이미 죽은 은유입니다. 죽은 은유를 살려 쓰시려면 그 죽음을 의식하고 비틀어야 합니다. 또 하나, 은유 뒤에 "마치 ~인 것처럼"을 덧붙여 본인의 비유를 설명하는 패턴도 피하십시오. 좋은 은유는 설명을 거부합니다. 설명이 필요하다면 은유가 잘못 놓인 것입니다.

7. 좋은 병치 ― 두 사실 사이의 거리

병치는 한국 현대시와 단편소설에서 가장 강력한 수사 가운데 하나입니다. 두 개의 사실을 인과나 접속사 없이 나란히 놓는 것입니다. 묘사도 아니고 은유도 아닌, 사실의 배열만으로 정서를 만들어냅니다. 가장 늦게 익히게 되지만 가장 빨리 글의 격을 올려주는 기법입니다.

7-1. 두 사실의 거리가 곧 정서의 진폭

병치된 두 사실 사이의 거리가 멀수록 그 사이의 빈 공간이 커지고, 그 빈 공간에 독자의 감정이 들어찹니다. 너무 가까우면 그냥 나열이 되고, 너무 멀면 자의적이 됩니다. 적절한 거리를 찾는 것이 병치의 전부입니다.

장 보러 가는 길 실종자 전단지를 받는다 나눠주는 이는 식당을 개업한 사람과 얼굴이 다르지 않다. ― 서윤후

실종자 전단지를 나눠주는 이와 식당 개업 전단지를 나눠주는 사람. 두 풍경이 도시의 길거리라는 같은 공간에서 만나지만, 그 함의는 정반대입니다. 상실과 개업, 사라짐과 시작. 그런데 둘이 "얼굴이 다르지 않다"고 진술됩니다. 이 한 줄이 도시적 익명성과 슬픔의 평준화를 동시에 발생시킵니다. 어떤 형용사로도 쓸 수 없는 정서가 두 사실의 병치에서 솟아오르지요.

7-2. 인과를 끊을 것

병치의 핵심은 "왜냐하면", "그래서", "따라서"를 모두 빼는 것입니다. 인과를 표시하는 순간 두 사실 사이의 빈 공간이 메워져버리고, 독자는 더 이상 그 사이에서 정서를 만들 수 없습니다. 두 사실을 놓기만 하시고 둘을 잇는 일은 독자에게 맡기십시오.

같은 두 사실에 인과를 채워 넣으면 어떻게 되는지 보십시오.

실종자 전단지를 받았다. 그래서 도시가 슬프게 느껴졌다. 식당을 개업한 사람의 얼굴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와 "슬프게"가 들어가는 순간 모든 것이 죽습니다. 인과를 풀어 설명하고 정서를 명명하는 순간 병치의 힘은 완전히 사라집니다.

7-3. 접속사 없이, 마침표 또는 행갈이로

병치는 통사적으로도 "붙이지 않는" 기술입니다. 두 사실을 마침표로 끊거나(산문), 행갈이로 갈라놓거나(시), 같은 문장 안에 쉼표 없이 그저 이어 붙입니다. 서윤후의 위 행에서 두 사실 사이에는 어떤 접속사도 없습니다. 그저 옆에 놓여 있을 뿐이지요.

7-4. 시간의 병치 ― 한 문장 안에 두 시제

공간의 병치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 문장 안에 과거와 현재, 사건 이전과 이후를 함께 놓는 것도 병치의 한 종류입니다.

아내가 채식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그녀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 한강

사건 이전(채식 시작 전)과 사건 이후의 회고(생각한 적이 없었다)가 한 문장 안에서 병치됩니다. 두 시간 사이의 거리가 곧 이 소설 전체의 정서적 진폭이 됩니다.

7-5. 피해야 할 것 ― 자의적이거나 너무 가까운 병치

두 가지 함정이 있습니다. 하나는 거리가 너무 가까운 병치입니다. "눈물이 흘렀다. 비도 내렸다." 둘 다 액체가 떨어지는 사실이라 병치가 아니라 동어반복이 됩니다. 다른 하나는 거리가 너무 먼 자의적 병치입니다. 두 사실 사이에 어떤 정서적·이미지적 끈도 없으면 독자는 빈 공간을 채울 수 없고 그저 어리둥절해집니다. "멋있어 보이려고 멀리 던진" 병치는 대개 이쪽으로 떨어집니다.

7-6. 직접 해 보실 훈련

하루 동안 본 풍경 가운데 정서적으로 무관해 보이는 두 장면을 골라 한 문장 안에 접속사 없이 놓아 보십시오. 그리고 둘 사이에 어떤 정서가 발생하는지 한 줄로 적어 보십시오. 발생하지 않으면 다른 두 장면으로 다시 시도하십시오. 병치의 감각은 이런 반복으로만 길러집니다.

8. 문장을 가져오시기 전에

문장을 골라 오시기 전에 다음 다섯 가지를 스스로 물어보십시오. 한 가지라도 답하실 수 없다면 그 문장은 아직 가져올 단계가 아닙니다.

첫째, 이 문장에서 비유를 모두 빼면 무엇이 남는가. 남은 동사와 명사만으로 문장이 서 있는가.

둘째, 이 문장 속 핵심 명사를 다른 무난한 명사로 바꾸어도 문장이 살아 있는가. 죽는다면 소재의 정서에 기댄 문장이다.

셋째, 이 문장의 통사 구조를 그대로 두고 내용만 바꾸어 한 문장을 새로 써볼 수 있는가. 그것이 외우는 일의 목적이다.

넷째, 이 문장은 번역서에서 가져온 것인가. 그렇다면 번역자의 이름을 알고 있는가.

다섯째, 이 문장이 장르문학에서 왔다면, 같은 작가의 다른 문장 다섯 개와 비교해 보았는가. 그래도 이 문장이 외울 가치가 있는가.

이 다섯 가지 질문에 모두 답이 나오시면, 그때 "왜 이 문장이 외울 가치가 있는가"를 한 줄로 적어 함께 가져오십시오. 그 한 줄이 본인의 안목입니다.

부록. 결의 예시 모음

아래 문장들은 "이런 결의 문장을 찾아오라"는 방향 제시입니다. 외울 목록이 아닙니다. 본인이 직접 읽고 직접 고르셔야 합니다.

산문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그 애를 낳은 건, 우리가 너무 어렸을 때라. ― 김애란

무재 씨와 나는 오래 걸었다. ― 황정은

아내가 채식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그녀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 한강

아이를 안고 있지 않는데도 재울 시간이 되면 팔이 저릿하고 가슴이 뜨거워졌다.

주저하듯 불이 켜졌다.

장 보러 가는 길 실종자 전단지를 받는다 나눠주는 이는 식당을 개업한 사람과 얼굴이 다르지 않다. ― 서윤후, 「소요한 생활」

춥다는 건 곤경을 그리는 데 좋은 도구라서 / 많은 여름이 겨울처럼 그려졌고 ― 서윤후, 「무한한 밤 홀로 미러볼 켜네」

시는 작품 전체의 맥락 안에서 한 행을 외우는 것이 원칙입니다. 행만 따로 떼어내면 의미가 흔들리는 경우가 많으니, 반드시 시 전체를 먼저 읽으시고 한 행을 고르십시오.

읽어 보실 작가들

한국어 문장의 정확함을 배우실 수 있는 작가들입니다. 산문에서는 김애란, 황정은, 한강, 김연수, 김훈, 정지돈, 박솔뫼. 시에서는 김행숙, 진은영, 황인찬, 서윤후, 이장욱, 김혜순. 이 명단은 출발점일 뿐이며, 여기서부터 본인의 안목으로 다른 작가를 더해가시는 것이 결국의 목적입니다.

― 끝 ―
09

사유, 도덕, 윤리, 정답, 그리고 주제의식

사유, 도덕, 윤리, 정답, 그리고 주제의식

학생들의 편지에서 발견한 공통 문제
뉴스페이퍼 창작 아카데미 보충 강의서
* * *

이 강의서는 기법이 아닌 사유의 문제를 다룹니다.

관찰, 시점, 내적 독백, 장면의 시간 이후에 오는 것 — 글의 뼈대가 되는 사유에 관하여.

들어가며 — 왜 이 강의가 필요한가

지난 과제에서 여러분은 “20년 후의 나에게 쓰는 편지”를 제출했습니다. 그 편지들을 읽으며 한 가지 공통된 문제를 발견했습니다. 이 문제는 강의 1~4에서 다뤘던 관찰, 시점, 내적 독백, 장면의 시간과는 층위가 다른 문제입니다. 기법의 문제가 아니라 사유의 문제입니다.

여러분의 편지에는 구체가 있어야 할 자리에 도식이 있었습니다. 사유가 있어야 할 자리에 선언이 있었습니다. 발견이 있어야 할 자리에 정답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편지는 문장 하나하나는 성실한데, 편지 전체가 묘하게 비어 있었습니다. 이 비어 있음의 정체가 오늘 강의의 주제입니다.

먼저 질문을 하나 던지겠습니다. 여러분이 편지에 쓰신 “나답게 살고 싶다”, “남들에게 휘둘리지 않겠다”, “행복하길 바란다”, “불안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 이 문장들은 여러분이 사유한 결과입니까, 아니면 어딘가에서 흘러들어온 정답입니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먼저 네 가지를 구분해야 합니다. 도덕, 윤리, 정답, 사유. 이 넷은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것입니다.

1부. 네 가지의 구분 — 도덕, 윤리, 정답, 사유

도덕이란 무엇인가

도덕은 사회가 이미 만들어놓은 행동 규범입니다. 어른에게 인사해라. 거짓말하지 마라. 약속을 지켜라. 도덕은 여러분이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존재했고, 여러분이 죽은 뒤에도 존재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든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물려받았습니다.

도덕의 특징은 질문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 어른에게 인사해야 합니까”라고 물으면 어른들은 당황합니다. 답이 준비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도덕은 이유 없이 작동합니다. 이유 없이 작동하기 때문에 효율적이고, 효율적이기 때문에 사회를 굴러가게 만듭니다.

[이론적 배경] 에밀 뒤르켐의 사회적 사실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1858–1917)은 도덕을 ‘사회적 사실’이라 불렀습니다. 사회적 사실이란 개인의 바깥에 존재하면서 개인에게 강제력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교실에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면 주변의 시선이 여러분을 다시 앉히는데, 그 시선의 힘이 바로 사회적 사실의 강제력입니다. 도덕은 물처럼 우리를 감싸고 있기 때문에, 물속의 물고기가 물을 인식하지 못하듯 우리도 도덕을 잘 인식하지 못합니다.

윤리란 무엇인가

윤리는 도덕과 다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둘을 섞어 쓰지만, 철학에서 이 둘은 구분됩니다. 윤리는 “이 구체적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스스로 답하려는 태도입니다. 도덕이 일반적 규범이라면, 윤리는 개별적 판단입니다.

예를 들겠습니다. “거짓말하지 마라”는 도덕입니다. 그런데 어떤 친구가 자살을 결심하고 여러분에게 자기가 숨겨둔 약의 위치를 물을 때, 여러분은 거짓말을 해야 합니까 안 해야 합니까. 여기서 도덕은 답을 주지 못합니다. 이 순간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이 윤리입니다. 이 구체적 친구, 이 구체적 상황, 이 구체적 약, 이 구체적 순간 안에서 스스로 판단하는 것. 윤리는 항상 구체에서 일어납니다.

도덕과 윤리의 결정적 차이는 판단의 주체에 있습니다. 도덕의 주체는 사회이고, 윤리의 주체는 나입니다. 도덕은 물려받은 것이고, 윤리는 그때그때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시]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

장 발장이 빵 한 조각을 훔친 장면을 생각해봅시다. “도둑질하지 마라”는 도덕입니다. 그러나 굶어 죽어가는 조카를 살리기 위해 빵을 훔친 장 발장 앞에서 이 도덕은 멈춥니다. 자베르 경감은 끝까지 도덕의 편에 섭니다. 법은 법이라고. 장 발장은 도덕의 바깥에서 윤리를 만들어갑니다. 이 구체적 아이, 이 구체적 굶주림, 이 구체적 빵 앞에서 자기 행동을 스스로 판단합니다. 소설 전체가 이 둘의 충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자베르가 마지막에 강에 뛰어든 것은, 도덕만으로는 인간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자기 몸으로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정답이란 무엇인가

정답은 이미 답이 정해져 있는 물음에 대한 올바른 응답입니다. 수학 문제에는 정답이 있습니다. 시험에는 정답이 있습니다. 운전면허 필기에는 정답이 있습니다. 정답의 세계는 질서정연하고 안정적입니다. 틀릴 수는 있지만, 어디에 정답이 있는지는 분명합니다.

정답의 특징은 발견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정답은 이미 누군가가 만들어두었고, 여러분은 그것을 찾아내기만 하면 됩니다. 교과서에, 교사에게, 매뉴얼에, 구글에. 정답을 찾는 일은 지식의 문제입니다. 사유의 문제가 아닙니다.

[예시] 정답이 지배하는 교실

국어 시간에 선생님이 묻습니다. “이 시의 주제가 무엇인가요?” 학생은 교과서와 참고서를 떠올립니다. ‘자연의 아름다움’, ‘고향에 대한 그리움’. 이것은 정답입니다. 그런데 한 학생이 “이 시를 읽으면 왠지 치과 대기실 의자가 떠올라요”라고 말하면 교실이 웃습니다. 왜 웃을까요? 정답의 세계에서 이 대답은 ‘틀린 답’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유의 세계에서 이 대답은 가장 흥미로운 출발점입니다. 치과 대기실 의자의 차가운 비닐 감촉과 이 시 사이에 무엇이 있는가? 그 연결을 파고들면 그 학생만의 주제의식이 나올 수 있습니다.

사유란 무엇인가

사유는 정답이 없는 곳에서 스스로 생각을 밀고 가는 것입니다. 사유는 답을 찾는 활동이 아니라 물음을 더 깊이 파고드는 활동입니다. 사유의 결과물은 또 하나의 물음일 때가 많습니다. 답이 나올 수도 있고 안 나올 수도 있습니다. 나온다 해도 그 답은 “이 순간 이 사람에게 일단 이렇게 보인다”는 잠정적 답일 뿐입니다.

사유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감각에서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머릿속에 있는 추상어로 시작하면 사유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눈에 본 것, 손에 닿은 것, 귀에 들은 것, 몸이 느낀 것 — 이 감각 하나에서 시작해서, 그 감각을 계속 들여다보는 동안 천천히 무엇인가가 드러납니다. 그 드러나는 것이 사유의 결과입니다.

[이론적 배경] 하이데거의 ‘사유’ 개념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1889–1976)는 사유를 ‘계산적 사고’와 ‘숙려적 사유’로 나누었습니다. 계산적 사고는 목표를 정하고 효율적 수단을 찾는 것입니다. 시험 문제를 풀 때, 최적의 경로를 검색할 때 우리는 계산적으로 사고합니다. 숙려적 사유는 다릅니다. 답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물음 앞에 멈춰 서서 그 물음이 자기에게 무엇을 드러내는지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이데거는 현대인이 계산적 사고에만 능숙해져서 숙려적 사유를 잊어버렸다고 경고했습니다. 여러분의 편지에서 보인 문제가 정확히 이것입니다.

네 가지 비교표
주체 작동 방식 속도 결과물
도덕 사회 규범을 따름 즉각적 복종 또는 위반
윤리 개인 상황 안에서 판단 느림 구체적 결정
정답 교과서/권위 답을 찾아 대입 빠름 맞음/틀림
사유 나의 감각 물음을 파고들어감 매우 느림 또 다른 물음
2부. 네 가지가 왜 다른가 — 한 사례로 보기

이 구분이 아직 추상적일 수 있으니, 한 사례로 보겠습니다. 여러분 중 한 사람이 지난 편지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하고는 싶었는데, 주변 선생님과 친구들이 ‘네가 뭔 노래냐.’라고 말하며 하지 말라고 해서, 연기로 옮기게 되었지.”

이 한 문장에 네 가지가 어떻게 다르게 작동하는지 보겠습니다.

도덕의 반응

“어른이 말하면 따라야지.” 혹은 “자기 꿈은 자기가 지켜야지.” 도덕은 이 상황에 두 개의 반대되는 규범을 동시에 던져놓고 어느 쪽이 맞는지는 알려주지 않습니다. 도덕은 일반적이기 때문에 구체적 상황에 그대로 적용되지 않습니다.

윤리의 반응

“이 선생님은 나를 진짜 걱정해서 말한 것인가, 아니면 자기 기준에서 판단한 것인가. 이 친구들은 나를 아껴서 말한 것인가, 아니면 나를 자기 위치에서 판단한 것인가. 나는 이 말을 들을 자리에 있는가, 들을 자리가 아닌가.” 윤리는 이 순간 작가가 스스로 판단하려고 시도하는 태도입니다. 답이 바로 나오지 않습니다.

정답의 반응

“자기 꿈을 포기하면 안 된다.” 혹은 “현실적으로 실력이 부족하면 포기하는 게 맞다.” 정답은 이미 정해진 답을 꺼내옵니다. 정답은 빠르고 명쾌합니다. 그런데 정답이 빠르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너무 빨라서 이 구체적 순간이 가진 복잡함을 전부 건너뛰어버립니다.

사유의 반응

이게 가장 다릅니다. 사유는 답을 꺼내오지 않습니다. 사유는 그 순간에 멈춰 섭니다. “네가 뭔 노래냐”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내 몸은 어디에 있었는가. 그 말을 들은 순간 내 목구멍은 어떻게 됐는가. 그 말 이전에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그 말 이후에 나는 어디로 걸어갔는가. 그날 밤 잠들기 전 내 머리에는 무엇이 떠올랐는가. 그 말이 처음 들었을 때의 충격과, 한 달 뒤 떠올릴 때의 감각과, 일 년 뒤 떠올릴 때의 감각은 어떻게 달랐는가.

사유는 이 질문들을 던지면서, 답을 서두르지 않는 것입니다. 답을 서두르면 정답이 끼어듭니다. 정답은 편하지만, 정답이 끼어드는 순간 이 구체적 순간의 진실은 도망갑니다.

[추가 예시] 같은 사건, 네 가지 글쓰기

하나 더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떤 학생이 부모님의 이혼을 겪었다고 합시다. 이 사건을 네 가지 방식으로 써본다면 이렇게 됩니다.

도덕으로 쓴 글: “부모님은 끝까지 참았어야 했다” 혹은 “부모님도 각자의 행복을 찾을 권리가 있다.” 두 문장 다 규범입니다. 이 글에 그 학생은 없습니다.

윤리로 쓴 글: “아빠가 나가던 날 나는 붙잡지 않았다. 붙잡는 것이 옳았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다만 그때 내가 서 있던 거실의 형광등이 왜 그렇게 하얗게 느껴졌는지, 그 하얌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판단하지 못했다.” 이건 윤리에 가깝습니다. 구체적 순간에서 판단하려는 시도가 보입니다.

정답으로 쓴 글: “이혼은 아이에게 상처가 되지만, 결국 시간이 해결해준다.” 깔끔합니다. 그러나 이건 상담 교사의 말이지 이 학생의 사유가 아닙니다.

사유로 쓴 글: “아빠가 나가던 날 현관 신발장 옆에 내 실내화가 있었다. 실내화 코가 찌그러져 있었다. 그걸 왜 봤는지 모른다. 아빠 등이 사라진 뒤에도 나는 한참 그 실내화를 보고 있었다. 코가 찌그러진 실내화. 누가 밟았나. 내가 밟았겠지.” 이것이 사유입니다. 이혼이라는 거대한 사건 앞에서 작가는 실내화 코 하나에 멈춰 섭니다. 그 멈춤 안에서 무엇인가가 드러납니다. 작가도 그것이 무엇인지 아직 모릅니다.

3부. 왜 문학은 도덕도 윤리도 정답도 아니고 사유인가

문학은 도덕이 아닙니다. 도덕은 규범이고, 문학은 규범을 만들지 않습니다. 문학은 오히려 규범의 바깥에 있는 사람들을 보여줍니다. 강의서에서 다뤘던 하성란의 «당신의 백미러»에서 최순애는 도덕 안에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도덕의 언어로는 이 사람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문학은 윤리에 가깝지만 윤리 자체는 아닙니다. 윤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묻지만, 문학은 “이 사람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먼저 봅니다. 문학은 판단을 유보합니다. 판단을 유보하는 동안 사람이 드러납니다.

문학은 절대로 정답이 아닙니다. 이게 가장 중요합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받은 교육의 99퍼센트는 정답을 찾는 훈련이었습니다. 시험, 수행평가, 입시. 정답을 빠르게 정확하게 찾는 사람이 좋은 학생이었습니다. 그 훈련이 너무 깊어서, 여러분은 글을 쓸 때도 정답을 찾으려 합니다. “주제의식이 뭐가 맞지?”, “감동적인 결말이 뭐지?”, “선생님이 원하는 답이 뭐지?” 그런데 문학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정답을 찾는 순간 문학은 멈춥니다.

문학은 사유입니다. 정확히는, 사유의 한 형태입니다. 철학이 개념으로 사유한다면, 문학은 감각으로 사유합니다. 한 사람의 구체적 몸, 구체적 장소, 구체적 순간을 끝까지 들여다보면서 그 안에서 무엇이 드러나는지를 기다리는 것. 이게 문학이 하는 사유입니다.

[이론적 배경] 메를로퐁티의 지각 현상학

프랑스 철학자 모리스 메를로퐁티(1908–1961)는 인간의 사유가 추상적 관념이 아니라 몸의 지각에서 시작된다고 보았습니다.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첫 번째 도구는 머리가 아니라 몸입니다. 손끝의 촉감, 발바닥의 압력, 눈에 들어오는 빛의 색조 — 이런 지각들이 모여서 의미가 됩니다. 문학이 ‘감각으로 사유한다’는 것은 메를로퐁티의 이 통찰과 맞닿아 있습니다. 작가는 세계를 먼저 몸으로 받아들이고, 그 몸의 기억을 언어로 옮기는 사람입니다.

[예시] 감각으로 사유하는 문학의 사례들

윤동주, «서시»: 이 시에서 화자는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도덕적 선언이 아닙니다. ‘별’이라는 감각, ‘죽어가는 것’이라는 감각, 그리고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떨림이 있습니다. 그 떨림이 이 시의 사유입니다. 윤동주는 정답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별을 올려다보는 목의 각도, 바람의 차가움을 느끼며 사유한 것입니다.

황정은, «계속해보겠습니다»: 이 소설에서 나기는 “계속해보겠습니다”라는 말을 반복합니다. 이 말은 희망의 선언이 아닙니다. 이 말은 다음 발걸음을 내딛는 발바닥의 감각입니다. 왜 계속하는지 나기도 모릅니다. 다만 몸이 계속 걷고 있습니다. 작가는 그 걸음의 감각을 끝까지 따라갑니다. 답을 내리지 않습니다.

4부. 사유의 반대편에 있는 것 — 도식과 호소

사유를 이해하려면 사유의 반대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사유의 반대는 게으름이 아닙니다. 사유의 반대는 도식과 호소입니다.

도식이란 무엇인가

도식은 이미 만들어진 해석 틀을 현실에 덮어씌우는 것입니다. 한 학생의 편지에서 이런 문장이 있었습니다.

“남들에게 맞춰서 무언가를 하다 보면, 내가 원하는 걸 포기하게 되더라.”

이 문장은 깔끔하고 설득력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이 문장은 작가가 발견한 것이 아닙니다. 이 문장은 자기계발서, 유튜브, SNS에서 이미 수천 번 반복된 문장입니다. 작가는 이 문장을 자기 삶에 덮어씌웠을 뿐입니다. 자기가 실제로 겪은 구체적 순간들 — 노래를 포기한 날, 친구의 부탁을 들어준 날, 거짓말을 한 날 — 이 도식 안에서 전부 같은 것이 됩니다.

[이론적 배경] 한나 아렌트와 ‘악의 평범성’

이것이 강의서에서 다뤘던 아이히만의 문제와 같은 구조입니다. 한나 아렌트(1906–1975)는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보며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는 개념을 만들었습니다. 아이히만이 수백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악마여서가 아니라, 사유를 멈췄기 때문입니다. 그는 구체적 인간 한 명 한 명을 보지 않았습니다. 숫자로, 범주로, 도식으로 처리했습니다. 여러분이 자기 삶에 도식을 씌울 때, 여러분은 자기 자신을 아이히만처럼 다루는 것입니다. 구체적 순간들을 일반명사 하나로 압축해버리는 것입니다.

[예시] 도식의 구체적 패턴들

여러분의 편지에서 발견된 대표적 도식들을 모아보았습니다.

도식 문제
“나답게 살자” ‘나다움’이 무엇인지 한 번도 구체적으로 묻지 않았다.
“후회 없이 살자” 후회가 왜 나쁜 것인지, 후회 없는 삶이 가능한지 묻지 않았다.
“남 눈치 보지 말자” 타인의 시선이 왜 고통스러운지, 어떤 시선이 감각에 남았는지 구체적으로 보지 않았다.
“시간이 해결해줄 것” 시간이 무엇을 해결하는지, 해결되지 않는 것은 무엇인지 묻지 않았다.
호소란 무엇인가

호소는 사유 대신 바깥의 존재에게 답을 맡기는 것입니다. 여러 학생이 편지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미래의 네가 지금의 나를 끌어줬으면 좋겠어”, “20년 뒤에는 이 불안이 사라졌으면 좋겠어”, “나답게 살고 있으면 좋겠어”. 이건 사유가 아닙니다. 이건 기도입니다.

기도 자체가 나쁘다는 말이 아닙니다. 기도는 기도대로의 자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는 문학이 아닙니다. 기도는 답이 이미 정해져 있는 요청이고, 문학은 답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채로 묻는 사유입니다. 기도는 닫혀 있고, 사유는 열려 있습니다.

여러분이 20년 후의 자신에게 무언가를 요청하는 순간, 여러분은 지금 이 자리의 사유를 멈춘 것입니다. 지금의 손, 지금의 숨, 지금의 감각을 더 보는 대신, 20년 뒤의 누군가가 이 문제를 대신 해결해줄 것이라고 상상한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 문제로부터의 도피이지, 자기 문제에 대한 사유가 아닙니다.

[예시] 호소를 사유로 바꾸기

호소: “20년 뒤의 나는 지금의 불안을 이겨냈으면 좋겠어.”

사유: “오늘 새벽 3시에 눈이 떠졌다. 천장에 가로등 불빛이 비스듬히 걸려 있었다. 그 불빛의 각도가 변한 것 같았다. 어제랑 같은 불빛인데 왜 다르게 보일까. 이불 밖으로 손을 내밀었다. 손이 차가웠다. 이 차가움은 겨울의 차가움과 다른 차가움이었다. 불안의 차가움인지, 아니면 그냥 손이 찬 것인지 나는 구분하지 못했다.”

차이가 보이십니까? 호소는 미래에 책임을 넘깁니다. 사유는 지금 이 순간의 감각에 머무릅니다. ‘불안’이라는 일반명사 대신 ‘가로등 불빛의 각도’, ‘이불 밖 손의 차가움’ 같은 구체적 감각이 들어옵니다. 이 구체 안에 이미 주제의식의 씨앗이 있습니다.

도식과 호소는 왜 쉬운가 — 사유를 피하는 다섯 가지 이유

여러분이 도식과 호소로 가는 것이 게을러서가 아닙니다. 사유를 피하는 데는 깊은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를 하나씩 짚어보겠습니다.

첫째, 뇌는 에너지를 아끼려 한다

인간의 뇌는 체중의 2퍼센트에 불과하지만 전체 에너지의 20퍼센트를 소비합니다. 뇌는 본능적으로 에너지를 절약하려 합니다. 그래서 이미 만들어진 패턴을 반복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남들에게 휘둘리지 말자’ 같은 도식은 뇌에 이미 저장된 패턴입니다. 그 패턴을 꺼내 쓰면 에너지가 거의 들지 않습니다. 반면 사유는 패턴이 없는 곳에서 새로운 연결을 만드는 작업이어서 에너지를 많이 씁니다. 뇌는 본능적으로 사유를 피합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의지와 관계없는, 생물학적 경향입니다.

둘째, 불확실함은 고통이다

사유는 본질적으로 불확실합니다. 사유를 시작하면 답이 나올지 안 나올지 모릅니다. 나온다 해도 언제 나올지 모릅니다. 이 불확실함은 인간에게 고통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모호성 회피(ambiguity aversion)’라고 부릅니다. 인간은 확실한 손해를 불확실한 이득보다 선호할 때가 많습니다. 도식은 확실합니다. ‘나답게 살자’라는 문장은 틀릴 수 없습니다. 너무 일반적이어서 틀릴 여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반면 사유의 결과물은 틀릴 수 있습니다. 구체적이기 때문에 반박당할 수 있습니다. 그 위험을 감수하느니 안전한 도식 안에 머무는 것이 편합니다.

셋째, 교육이 정답만을 훈련시켰다

여러분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12년간 정답을 찾는 훈련을 받았습니다. 정답을 맞히면 점수가 올라갑니다. 칭찬을 받습니다. 등수가 오릅니다. 반면 수업 시간에 “선생님, 저는 이 문제의 답을 모르겠는데, 문제 자체가 이상한 것 같아요”라고 말하면 어떻게 됩니까. 대부분의 교실에서 이 발언은 시간 낭비로 취급됩니다. 12년간 이 훈련을 반복하면, 여러분의 뇌는 모든 물음 앞에서 자동으로 정답을 검색합니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글의 주제의식이 뭐가 맞지?’라고 묻는 순간, 여러분의 뇌는 이미 정답 검색 모드로 들어간 것입니다. 사유 모드가 아니라.

[이론적 배경]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

독일 출신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1900–1980)은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인간이 자유를 원하면서도 동시에 자유를 두려워한다고 말했습니다. 자유란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대신 답을 정해주면 편합니다. 권위에 복종하면 편합니다. 유행을 따르면 편합니다. 프롬은 이것을 ‘자유로부터의 도피’라고 불렀습니다. 사유를 피하는 것도 같은 구조입니다. 사유란 자기가 자기에게 자유를 주는 것입니다. 아무도 답을 정해주지 않는 자리에 자기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 자리가 외롭고 불안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은 도식이라는 안전한 울타리 안으로 돌아갑니다.

넷째, 사유하면 자기 자신과 마주해야 한다

이것이 아마 가장 결정적인 이유일 것입니다. 사유는 바깥이 아니라 안을 향합니다. 한 구체적 감각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그 감각이 나 자신에 대해 무엇인가를 말하기 시작합니다. 노래를 포기한 날의 감각을 들여다보면, ‘선생님이 나를 무시했기 때문에 포기했다’는 깔끔한 이야기 대신, ‘사실 나도 내 실력이 의심스러웠다’는 불편한 진실이 올라올 수 있습니다. 부모님의 이혼을 들여다보면, ‘부모님이 불행해서 슬프다’는 도식 뒤에 ‘사실 나는 부모님보다 나 자신이 걱정이었다’는 이기심이 보일 수 있습니다.

이 불편함을 견디기 어렵습니다. 도식은 나를 보호합니다. ‘남들 때문에 힘들었다’라는 도식은 나를 피해자의 자리에 놓아줍니다. 피해자의 자리는 안전합니다. 내가 틀렸을 가능성, 내가 비겁했을 가능성, 내가 이기적이었을 가능성을 보지 않아도 되니까요. 사유는 그 안전한 자리에서 나를 끌어냅니다. 그래서 사유는 불편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유를 피합니다.

다섯째, 세계가 빠른 답을 보상한다

여러분이 살고 있는 세계는 빠른 답에 보상을 줍니다. SNS에서 짧고 명쾌한 문장이 ‘좋아요’를 받습니다. 자기계발서는 복잡한 문제를 한 줄로 정리해줍니다. 유튜브는 10분 안에 인생의 답을 알려줍니다. 이 환경에서 ‘나는 아직 모르겠다’, ‘이 문제는 답이 없는 것 같다’, ‘한참 더 생각해봐야 한다’ 같은 태도는 보상을 받지 못합니다. 오히려 우유부단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래서 사유하지 않는 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사회 전체가 사유보다 정답을, 물음보다 결론을, 멈춤보다 속도를 보상하는 구조 안에서 여러분이 사유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물살을 거슬러 수영하라는 것과 비슷합니다. 어렵습니다. 하지만 문학은 그 물살을 거슬러 간 사람들이 남긴 흔적입니다.

[예시] 같은 하루, 두 사람의 차이

두 학생이 같은 날 같은 경험을 합니다. 교실에서 발표를 하다 말이 꼬여서 반 아이들이 웃었습니다.

사유하지 않는 학생의 일기: “오늘 발표하다 창피당했다. 다시는 발표 같은 거 안 할 거다. 남들 시선이 너무 싫다.” — 5분 만에 쓸 수 있습니다. 감정에 이름이 붙어 있고(‘창피’), 결론이 나 있고(‘안 할 거다’), 원인이 바깥에 있습니다(‘남들 시선’).

사유하는 학생의 일기: “말이 꼬이는 순간 내 혀가 입천장에 붙는 느낌이 있었다. 조용해진 교실에서 형광등 소리가 들렸다. 누가 웃었는데 그 웃음이 악의적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내 옆자리 민수는 웃지 않았다. 민수의 얼굴이 이상하게 선명하게 기억난다. 왜 웃은 애들 얼굴은 기억 안 나고 안 웃은 민수 얼굴만 기억날까.” — 이 글에는 결론이 없습니다. 이름도 안 붙어 있습니다. 대신 혀의 감각, 형광등 소리, 민수의 얼굴이라는 구체가 있습니다. 이 구체 안에서 뭔가가 움직이고 있지만, 아직 이름이 없습니다. 이것이 사유의 시작입니다.

* * *

그런데 편한 길로 갈 때 문학은 생기지 않습니다. 문학은 어려운 길로 간 흔적입니다. 그 흔적이 주제의식입니다.

5부. 주제의식이란 무엇인가

이제 주제의식의 정의를 드릴 수 있습니다.

주제의식은 사유의 결과물입니다. 작가가 한 구체적 감각을 오래 들여다본 끝에 그 감각 안에서 드러난 무엇입니다.

주제의식은 “이 글이 무엇에 관한 글인가”에 대한 답이 아닙니다. 그 질문에 답하면 소재가 나옵니다. 이혼, 진로, 불안, 시선. 이건 소재입니다. 주제의식은 “이 글이 어떤 감각 하나를 붙잡고 있는가”에 대한 답입니다. 감각이 주제의식이고, 소재는 그 감각을 드러내는 재료일 뿐입니다.

한 학생이 아버지의 이혼에 관한 편지를 썼습니다. 이 편지의 소재는 이혼입니다. 그러나 주제의식은 이혼이 아닙니다. 주제의식은 “혀에 남은 딸기잼의 단맛이 20년 뒤 이빨의 시림으로 바뀔지도 모른다는 감각 하나”입니다. 작가가 이 감각을 의식하고 썼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감각이 편지 안에 들어 있고, 이 감각이 편지 전체를 수렴시킵니다. 그러면 주제의식이 선 것입니다.

주제의식의 세 가지 특징
첫째, 주제의식은 일반명사가 아니다

“사랑”, “외로움”, “성장”, “자유”, “정의” — 이런 단어들은 주제의식이 아닙니다. 이건 소재의 이름이거나 추상어입니다. 주제의식은 구체입니다.

[예시] 소재와 주제의식의 구분
소재 (일반명사) 주제의식 (구체적 감각)
이별 택시 뒷좌석에서 본 상대방의 손가락이 점점 작아지는 감각
성장 어릴 때 좋아하던 과자의 맛이 변한 것이 아니라 내 혀가 변했다는 발견
고독 빈 강의실에서 형광등이 혼자 켜져 있을 때의 윙 소리
우정 친구의 어깨에 기대려다 멈칫한 0.5초의 망설임
둘째, 주제의식은 쓰다가 발견되는 것이다

주제의식은 작가가 미리 정하고 쓰는 것이 아닙니다. 작가가 한 구체에서 출발해서 정직하게 사유를 밀고 가면, 다 쓴 다음에 “내가 이 감각을 붙잡고 있었구나”를 뒤늦게 발견합니다. 그 뒤늦은 발견이 주제의식입니다. 미리 정해놓고 쓰면 도식이 됩니다. 발견하면서 쓰면 주제의식이 됩니다.

[이론적 배경] 플래너리 오코너의 ‘쓰기와 발견’

미국 소설가 플래너리 오코너(1925–1964)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내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기 위해 쓴다.’ 이것은 글쓰기에 대한 가장 정확한 정의 중 하나입니다. 글을 쓰기 전에 생각이 먼저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쓰는 동안 생각이 만들어집니다. 주제의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쓰기 전에 주제의식을 정하는 것은 정답을 미리 정해놓고 시험을 치르는 것과 같습니다.

셋째, 주제의식은 결론이 아니다

“남들에게 휘둘리지 말자”는 결론입니다. 결론은 닫혀 있습니다. 주제의식은 열려 있는 물음의 형태를 띱니다. “이 혀의 단맛이 시림으로 바뀔 것인가, 아닌가?”는 주제의식입니다. 답이 없습니다. 작가도 모릅니다. 모르는 채로 묻습니다. 그 모름이 문학의 힘입니다.

[예시] 결론으로 끝난 글 vs. 물음으로 끝난 글

결론으로 끝난 글: “그래서 나는 깨달았다. 진짜 중요한 것은 남의 시선이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것을. 앞으로는 나답게 살 것이다.” — 이 문장을 읽고 나면 더 생각할 것이 없습니다. 글이 닫혀 있습니다.

물음으로 끝난 글: “거울을 봤다. 거울 속의 내 얼굴이 낯설었다. 어제도 이 얼굴이었는데. 눈 밑에 그림자가 져 있었다. 그 그림자를 손가락으로 만져봤다. 차가운 유리만 닿았다.” — 이 문장을 읽고 나면 자꾸 생각이 이어집니다. 왜 자기 얼굴이 낯설었을까? 그 그림자는 무엇이었을까? 글이 열려 있습니다.

6부. 사유를 시작하는 법

이 강의를 정답처럼 받아들이시면 안 됩니다. “아, 사유해야 하는구나”를 하나의 새로운 도식으로 만드시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사유는 방법이 아니라 태도입니다. 다음의 연습들은 태도를 몸에 붙이기 위한 입구입니다.

연습 1: 이름 붙이기를 참는다

여러분이 무엇을 느낄 때, 즉시 그것에 이름을 붙이려 하는 충동이 올라옵니다. “나 지금 불안해”, “나 지금 외로워”, “나 지금 화나”. 이 이름 붙이기가 사유를 가장 빠르게 멈추게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순간 그 감각의 복잡한 질감이 사라집니다.

연습은 간단합니다. 이름이 붙기 전까지 멈춰 서 있으세요. 손끝이 어떻게 차가운지, 숨이 어디서 막히는지,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지. 이름 없이 한 5분만 버티세요. 처음에는 어렵습니다. 익숙해지면 그 5분 안에서 이전에 안 보이던 것이 보입니다. 그 보인 것이 여러분의 주제의식의 재료입니다.

[구체적 방법] 5분 감각 일기

매일 자기 전 5분, 오늘 하루 중 가장 강렬했던 감각 하나를 기록합니다. 단, 규칙이 있습니다. 감정 단어(‘슬펐다’, ‘화났다’, ‘기뻤다’)를 쓰지 않습니다. 오로지 몸의 감각만 씁니다. 예를 들어 ‘오늘 점심시간에 급식실 문을 열었을 때 습기 섞인 바람이 안경에 닿아서 앞이 하얘졌다. 3초 정도 아무것도 안 보였다. 그 3초가 생각보다 길었다.’ 이렇게 쓰는 것입니다.

연습 2: 구체를 확대한다

한 장면을 떠올리세요. 그 장면에서 가장 구체적인 사물 하나를 고르세요. 그 사물만 10분 동안 쓰세요. 다른 것은 쓰지 않고, 그 사물의 색, 모양, 냄새, 소리, 표면의 감촉만 쓰세요. 이 연습이 여러분이 도식에서 내려오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 구체는 도식을 무너뜨립니다.

[구체적 방법] 사물 확대경 연습

지금 여러분의 책상 위에 있는 물건 하나를 고르세요. 펜이든, 지우개든, 물컵이든. 그것을 10분 동안 관찰하며 쓰세요. 단, 그 물건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어떤 의미인지’는 쓰지 마세요. 오로지 눈에 보이는 것만 쓰세요. 예를 들어 ‘이 볼펜의 뚜껑에 이가 나 있다. 내가 씹은 자국이다. 왼쪽으로 약간 기울어진 자국이 네 개. 가장 깊은 자국은 아마 수학 시간에 만든 것이다.’ 이런 식으로요. 상징이나 의미가 없는데도 글이 이상하게 생생해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겁니다. 그 생생함이 문학의 시작입니다.

연습 3: 결론을 내지 않는다

글을 쓰실 때 끝부분에서 결론을 내고 싶은 충동이 올라옵니다. “그래서 나는 깨달았다”, “그러므로 나는 ~하고 싶다”. 이 충동을 참으세요. 글을 질문으로 끝내거나, 동작 하나로 끝내거나, 그냥 멈추세요. 결론을 내지 않으면 글이 열립니다. 열린 글에만 주제의식이 삽니다.

[구체적 방법] 마지막 문장 지우기

글을 다 쓴 뒤, 마지막 문장을 지워보세요. 그래도 글이 괜찮으면, 그 마지막 문장은 없어도 되는 문장이었습니다. 대부분의 결론이 그렇습니다. 결론은 작가가 독자를 안심시키려고 붙인 것이지, 글이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 문장을 지우고도 글이 불안해 보이면? 그 불안이 좋은 것입니다. 그 불안이 글을 열어놓는 것입니다.

연습 4: 바깥에 맡기지 않는다

20년 뒤의 자신에게, 미래에, 신에게, 운명에 무언가를 맡기려는 충동이 올라올 때 멈추세요. 그 충동이 올라온다는 것은 지금 이 자리에서 사유를 멈추고 도피하고 싶다는 신호입니다. 그 순간이 정확히 사유해야 할 순간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더 오래 머무세요.

[구체적 방법] ‘지금’으로 되돌리기

글을 쓰다가 ‘~했으면 좋겠다’, ‘~이길 바란다’ 같은 문장이 나오면, 그 문장을 지우고 대신 ‘지금 나는’으로 시작하는 문장을 써보세요. ‘행복했으면 좋겠다’ 대신 ‘지금 나는 의자에 앉아 있다. 엉덩이가 뜨겁다. 오래 앉아 있어서.’ 미래에 맡기던 시선을 현재로 되돌리는 순간, 감각이 살아납니다.

나가며 — 사유가 어려운 이유, 그리고 기다림에 대하여

마지막으로 하나만 말씀드리고 마치겠습니다. 사유는 어렵습니다. 특히 지금 여러분의 나이에서 어렵습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정답을 찾는 훈련을 받아왔고, 그 훈련이 너무 깊어서 정답 없는 세계에서 멈춰 서는 법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이 편지에서 도식과 호소로 도망간 것은 여러분이 게을러서가 아니라, 사유하는 방법을 배운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강의가 있습니다. 사유는 배울 수 있습니다. 다만 정답처럼 배울 수는 없고, 몸에 붙이면서 배워야 합니다. 여러분이 매일 한 번씩 이름 붙이기를 참고, 구체 하나를 확대하고, 결론을 미루고, 바깥에 맡기지 않으면, 어느 날 여러분은 자기가 한 구체적 감각을 오래 들여다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발견이 사유의 시작입니다.

[이론적 배경]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편지

오스트리아 시인 릴케(1875–1926)는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조언했습니다. 답을 구하려 하지 말고 물음 자체를 살아보라고. 지금은 답을 살 수 없다고.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을 살아보는 것이라고. 언젠가 먼 훗날, 자기도 모르게 답 속으로 들어가 살게 될 것이라고. 이것이 사유의 태도입니다. 답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물음 안에서 살아보는 것. 주제의식은 그렇게 물음 안에서 살아본 사람에게만 찾아옵니다.

주제의식은 그 사유의 끝에서 옵니다. 미리 오지 않습니다. 빨리 오지 않습니다. 기다려야 옵니다.

* * *

문학은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의 장르입니다. 여러분이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라며, 이번 강의를 마치겠습니다.

* * *
부록. 핵심 개념 정리
개념 정의
도덕 사회가 만들어놓은 일반적 행동 규범. 주체는 사회. 질문을 허락하지 않는다.
윤리 구체적 상황에서 스스로 판단하려는 태도. 주체는 나. 항상 구체에서 일어난다.
정답 이미 정해진 답. 빠르고 명쾌하지만 구체적 순간의 복잡함을 건너뛴다.
사유 정답 없는 곳에서 감각을 출발점 삼아 물음을 파고드는 것. 느리고 잠정적이다.
도식 기존 해석 틀을 현실에 씌우는 것. 사유의 반대. 구체를 일반명사로 압축한다.
호소 바깥의 존재에게 답을 맡기는 것. 사유로부터의 도피.
주제의식 사유의 결과물. 구체적 감각 하나가 글 전체를 수렴시키는 힘. 결론이 아니라 물음이다.
소재 글이 다루는 대상(이혼, 진로 등). 주제의식을 드러내는 재료일 뿐이다.
참고 문헌 및 더 읽을 자료

•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사유의 부재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에 관하여

• 마르틴 하이데거, «사유란 무엇인가» — 계산적 사고와 숙려적 사유의 구분

• 모리스 메를로퐁티, «지각의 현상학» — 몸의 지각이 사유의 출발점이라는 논의

• 에밀 뒤르켐, «사회학적 방법의 규칙들» — 사회적 사실로서의 도덕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 물음 안에서 사는 것에 관하여

• 플래너리 오코너, «미스터리와 매너» — 쓰기를 통한 발견에 관하여

• 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감각으로 사유하는 시의 전범

• 황정은, «계속해보겠습니다» — 판단 유보 속에서 드러나는 삶의 감각

10

취향이라는 이름의 게으름

취향이라는 이름의 게으름

— 갠스의 취향문화론에서 부르디외의 구별짓기를 거쳐 알고리즘 시대의 문학까지

「허버트 J. 갠스의 취향문화론」 후속 강의서
고등학교 문예창작과 지망생을 위한 강의서
1. 갠스가 남긴 질문

앞선 강의에서 우리는 허버트 J. 갠스의 취향문화론을 살펴보았습니다. 갠스는 미국 사회에 다섯 개의 취향문화가 병존하며, 각각의 취향문화는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고 주장했습니다. 다시 한번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고급문화(High Culture) — 형식적 혁신, 독창성, 난해함을 가치로 삼는다. 취향공중은 소수의 지식인, 예술가, 대학 교수 등이다. 문학에서는 제임스 조이스, 사무엘 베케트, 한국으로 치면 이상이나 최승자의 실험적 작품이 여기에 해당한다. 음악에서는 현대 클래식과 아방가르드 재즈, 미술에서는 마르셀 뒤샹 이후의 현대미술이 이 범주에 들어간다.

상위중산층 문화(Upper-Middle Culture) — 지적 자극과 정서적 만족의 균형을 추구한다. 취향공중은 전문직 종사자, 고학력 중산층이다. 문학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 한강, 편혜영처럼 줄거리와 형식적 깊이를 모두 갖춘 작가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뉴요커(The New Yorker)나 한국의 문학동네 같은 매체, 봉준호의 영화, 넷플릭스 예술영화가 이 취향문화의 전형적 콘텐츠다.

하위중산층 문화(Lower-Middle Culture) — 도덕적 명확성, 감정적 동일시를 중시한다. 미국의 지배적 취향문화이며, 대중매체의 가장 큰 시장이다. 한국으로 치면 주말 드라마, 막장 드라마, 베스트셀러 자기계발서, 로맨스 소설이 여기에 해당한다. 선악이 분명하고, 인물에 감정이입이 쉽고, 결말이 도덕적으로 만족스러운 이야기를 선호한다.

저문화(Low Culture) — 즉각적 오락, 감각적 자극, 전통적 가치를 추구한다. 취향공중은 구세대 노동계급이다. 타블로이드 신문, 액션 영화, 컨트리 음악이 미국의 전형적 예시이고, 한국에서는 스포츠신문, 성인 오락 프로그램, 트로트 등이 이 범주에 가깝다.

유사민속문화(Quasi-Folk Low Culture) — 친숙함, 반복, 단순성을 선호한다. 취향공중은 비숙련 노동자와 농촌 빈곤층이다. 만화, 구식 서부극, 연속극(soap opera) 등 2차 대전 이전의 민속문화와 상업적 대중문화가 혼합된 형태다. 한국에서는 과거의 라디오 연속극, 재래시장의 뽑기 만화, 어르신들의 일일극 시청 습관 등이 이에 가깝다.

갠스의 핵심 주장은 이 다섯 취향문화 사이에 본질적 우열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셰익스피어 드라마와 TV 시트콤 사이에 본질적 우열은 없다. 고급문화가 대중문화보다 가치 있다는 믿음은 문화 자체의 속성이 아니라 계급적 위치의 반영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선호하는 문화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

이것은 문화적 민주주의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선언이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취향 존중'이라는 원칙의 사상적 뿌리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갠스의 한계도 확인했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한계는, 갠스가 취향의 자율성을 전제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 취향을 자유롭게 '선택'한다는 전제. 취향이 교육과 계급에 의해 형성된다고 스스로 밝혀놓고, 동시에 그 선택이 자유롭다고 말하는 모순. 바로 이 모순의 내부로 들어간 사람이 피에르 부르디외입니다.

* * *
2. 부르디외의 폭로 — 취향은 선택이 아니다

1979년, 갠스의 저서가 나온 지 5년 뒤,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구별짓기: 취향판단의 사회적 비판(La Distinction: Critique sociale du jugement)』을 출간합니다. 부르디외가 발견한 것은 불편한 사실입니다. 취향은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라 사회적 조건의 산물이다.

부르디외는 1960년대 프랑스 사회를 대상으로 방대한 경험적 연구를 수행합니다. 음식 취향, 음악 취향, 미술 취향, 의복 취향, 여가 활동 —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 걸쳐 사람들의 문화적 선택을 조사했습니다. 결과는 놀라울 정도로 일관적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취향은 그들의 사회적 위치와 정확히 대응했습니다. 어떤 음악을 들으면 편안하고 어떤 음악을 들으면 불편한지, 어떤 그림 앞에서 감동하고 어떤 그림 앞에서 멍해지는지 — 이 모든 반응이 교육 수준과 출신 계급에 의해 예측 가능했습니다.

부르디외는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아비투스(habitus)'라는 개념을 도입합니다. 아비투스란 한 사람이 태어나서 자라면서 무의식적으로 체화하는 인식, 판단, 행동의 체계입니다. 어떤 것을 '자연스럽다'고 느끼고 어떤 것을 '어색하다'고 느끼는지, 어떤 상황에서 편안하고 어떤 상황에서 불편한지 — 이것은 여러분이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자란 가정의 대화 방식, 다닌 학교의 문화, 속한 계층의 일상적 관습이 여러분의 몸에 새겨넣은 것입니다. 아비투스는 의식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강력합니다. 자기가 선택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부르디외의 가장 날카로운 개념이 등장합니다. '문화자본(cultural capital)'. 문화자본이란 특정한 문화적 능력, 지식, 감각의 총체입니다. 클래식 음악을 듣고 감동할 수 있는 능력, 현대미술을 보고 무언가를 읽어낼 수 있는 능력, 문학작품의 형식적 실험을 즐길 수 있는 능력 — 이것들은 타고나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과 교육을 통해 습득되는 것이며, 그 습득 기회는 계급에 따라 불균등하게 분배됩니다.

부르디외의 핵심 명제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것입니다. 취향은 분류한다, 그리고 분류하는 자를 분류한다. 여러분이 '나는 이런 것이 좋다'고 말하는 순간, 여러분은 자신이 어떤 사회적 위치에 있는지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사회적으로 지배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취향이 '좋은 취향'으로 정의되고, 그 정의가 마치 자연법칙처럼 통용된다는 것입니다. 부르디외는 이것을 '상징 폭력(symbolic violence)'이라고 불렀습니다. 지배 계급의 취향이 보편적 기준으로 위장되고, 피지배 계급이 그것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는 과정. 이 과정에서 물리적 강제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피지배 계급이 스스로 '나는 그런 걸 모르니까'라고 말하는 순간, 상징 폭력은 완성됩니다.

갠스가 '모든 취향은 동등하다'고 선언했을 때, 부르디외는 묻습니다. 그 '동등한 취향'은 대체 어디서 왔는가? 갠스는 대중의 문화적 선택을 존중하라고 말하지만, 그 선택 자체가 이미 사회적 조건에 의해 제한되어 있다면, 우리가 존중하고 있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불자유의 산물입니다. 취향의 자율성이라는 전제가 허구라면, '취향 존중'은 실제로 현상 유지를 존중하는 것에 가까워집니다.

* * *
3. 알고리즘 시대 — 취향이 정체성이 되다

갠스의 시대(1970년대)에 취향을 형성하는 것은 계급과 교육이었습니다. 부르디외의 시대(1970~80년대)에도 아비투스는 가정과 학교를 통해 수십 년에 걸쳐 형성되는 것이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취향 형성의 주체로 '사회적 조건'을 지목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시대에는 전혀 새로운 변수가 등장합니다.

알고리즘입니다.

여러분이 숏폼 영상을 위로 넘기는 동작은 1초 안에 완료됩니다. 그 1초 동안 뇌가 내리는 판단은 '좋다' 아니면 '싫다'뿐입니다. 영상 속 사람이 왜 저런 표정을 짓는지, 이 영상이 어떤 맥락에서 만들어졌는지 — 이런 질문은 1초 안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스와이프는 분류 행위이고, 분류는 질문을 차단합니다. 알고리즘은 이 분류 데이터를 수집하여 여러분의 취향 프로필을 만들고, 여러분이 좋아할 만한 것만 보여줍니다.

부르디외가 말한 아비투스가 가족과 학교를 통해 수십 년에 걸쳐 형성되는 것이라면, 알고리즘적 아비투스는 몇 주 만에 형성됩니다. 그리고 한번 형성되면 스스로를 강화합니다. 좋아하는 것만 보면 좋아하는 것이 더 좁아지고, 싫어하는 것은 아예 보지 않게 되니 싫어하는 것에 대해 생각할 기회 자체가 사라집니다.

그런데 여기서 갠스나 부르디외의 시대와 결정적으로 다른 현상이 발생합니다. 갠스의 시대에 취향은 삶의 한 영역이었습니다. 어떤 음악을 듣고 어떤 영화를 보느냐는 중요하지만, 그것이 곧 '나는 누구인가'를 의미하지는 않았습니다. 부르디외의 시대에도 취향은 계급적 위치의 표지(marker)였을 뿐, 정체성 자체는 아니었습니다.

여러분의 시대에는 다릅니다. 취향이 곧 정체성입니다. 'OO를 좋아하는 나'가 곧 '나'입니다. 플레이리스트가 자기소개이고, 좋아하는 콘텐츠의 목록이 인격의 요약본입니다. SNS 프로필에 적는 것은 이름이나 직업이 아니라 취향입니다. 어떤 음악을 듣고, 어떤 영화를 보고, 어떤 브랜드를 소비하는지가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결정합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생각해봅시다. 취향이 정체성이 되면, 취향에 대한 비판은 정체성에 대한 공격이 됩니다. '이 영화는 별로다'라는 말이 '너는 별로다'라는 말로 들립니다. '이 소설의 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분석이 '네가 좋아하는 것을 무시하고 있다'는 모욕으로 번역됩니다. '취향 존중'이 절대적 원칙이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취향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곧 나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니까.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사유가 정지합니다. "그건 제 취향이 아니에요"는 '나는 이것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겠습니다'의 가장 세련된 표현이 됩니다. 왜 취향이 아닌지, 무엇이 불편한지, 어떤 기대가 충족되지 않았는지에 대한 질문은 차단됩니다. 취향이라는 단어가 사유의 문을 닫아버리는 것입니다.

* * *
4. 취향 군주의 세계

이 체계 안에서 여러분은 자기 세계의 군주가 됩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만으로 구성된 세계, 내가 싫어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세계. 알고리즘이 이 세계의 건축가이고, '취향 존중'이 이 세계의 헌법입니다.

갠스는 모든 취향문화가 동등하다고 선언했습니다. 부르디외는 그 동등함이 환상이라고 폭로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시대에는 제3의 상황이 발생합니다. 취향문화들이 동등한지 아닌지의 문제가 아니라, 각자가 자기 취향문화 안에 완벽하게 고립되어 다른 취향문화를 만날 기회 자체가 사라진 것입니다.

갠스의 시대에는 취향문화들 사이에 경계가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 경계를 넘나들 수 있었습니다. 클래식 음악회에 가는 사람이 주말에 액션 영화를 볼 수 있었고, 타블로이드 신문을 읽는 사람이 가끔 순문학을 집어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알고리즘 시대에는 이 넘나듦이 원천적으로 차단됩니다. 여러분의 피드에는 여러분이 이미 좋아하는 것만 나타납니다. 여러분이 한 번도 관심을 보이지 않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앞선 강의(「문학은 왜 존재하는가」)에서 우리는 아이히만을 이야기했습니다. 아이히만의 문제는 악의가 아니라 사유의 부재였습니다. 자기 앞의 서류 너머에 있는 구체적 인간을 상상하지 않은 것, 자기가 이미 알고 있는 범주 안에서 세상을 처리한 것. 취향 군주의 세계에서도 구조적으로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다만 형태가 다를 뿐입니다. 아이히만은 관료제의 효율 안에서 사유를 멈췄고, 취향 군주는 알고리즘의 편안함 안에서 사유를 멈춥니다. 아이히만은 '명령'이라는 방패 뒤에 숨었고, 취향 군주는 '취향'이라는 방패 뒤에 숨습니다.

물론 규모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취향 군주는 누구를 수용소로 보내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신의 작동 방식 —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 이미 좋아하는 것, 이미 편안한 것 안에 머무르면서 그 바깥의 존재를 보지 않는 것 — 은 같습니다. 그리고 보지 않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 없는 것이 됩니다.

* * *
5. '취향이 아니다'는 문학적 판단이 아니다

여러분이 작가가 되려는 사람이라면, 여기서 결정적인 문제가 발생합니다.

갠스는 모든 사람이 자기 취향을 자유롭게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독자에게는 맞는 말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작가에게는 맞지 않습니다. 작가가 작품 앞에서 해야 하는 일은 좋고 싫음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 작품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형도의 「안개」를 봅시다. 이 시를 읽고 '우울해서 싫다'거나 '공장 이야기는 내 취향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그러나 그 순간 여러분은 이 시가 왜 여공의 얼굴을 '희고 아름답다'고 썼는지를, 그 반어가 어떤 현실을 드러내는지를, 시인이 왜 한마디의 논평도 하지 않았는지를 묻지 않고 넘어가게 됩니다. 취향이라는 스와이프가 작동한 것입니다.

하성란의 「당신의 백미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소설을 읽고 '전개가 느리다'거나 '명동 매장 이야기가 지루하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느린 전개가 바로 최순애를 범주가 아닌 구체적 인간으로 만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었다는 것을, 취향의 판단은 놓칩니다. 불편함을 넘겨버렸기 때문입니다.

부르디외의 용어로 말하면, '취향이 아니다'라는 판단은 아비투스의 자동 반응입니다. 여러분의 몸에 새겨진 문화적 조건이 낯선 것 앞에서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지, 여러분이 의식적으로 분석하고 판단한 결과가 아닙니다. 그리고 이 자동 반응을 '내 취향'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순간, 사유는 멈춥니다.

문학은 여러분의 취향에 봉사하지 않습니다. 문학은 여러분의 취향을 교란합니다. 좋아하는 것만 보려는 눈을 붙잡고, 보고 싶지 않은 것 앞에 세워놓습니다. 이것은 불쾌한 경험입니다. 그러나 앞선 강의에서 보았듯이, 바로 그 불쾌함이 분류를 멈추게 하고, 멈춘 자리에서 구체적 타인의 존재가 들어옵니다. 문학이 요구하는 것은 취향의 만족이 아니라 취향의 중단입니다.

* * *
6. 불편한 것 앞에 머무르는 능력

작가에게 필요한 능력은 아름다운 문장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불편한 것 앞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기형도가 공장 지대의 읍을 바라볼 때, 그는 '이건 내 취향이 아니야'라고 말하고 돌아서지 않았습니다. 안개 속에서 겁탈당하는 여직공과 얼어 죽는 취객과 공장으로 가는 아이들 앞에 서서, 그 풍경이 자기 안에서 어떤 감각을 일으키는지를 끝까지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감각을 '착취'나 '비참'이라는 이미 있는 단어로 처리하는 대신, '희고 아름다우며'라는 자기만의 언어를 발명했습니다. 이것은 아비투스의 자동 반응을 멈추고, 그 멈춘 자리에서 새로운 인식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하성란이 최순애를 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1990년대 후반 한국 사회에서 트랜스젠더를 소설에 등장시킨다는 것 자체가 불편한 선택이었습니다. 더 불편한 것은, 최순애를 동정의 대상으로도 계몽의 도구로도 쓰지 않겠다는 결정이었습니다. 하성란은 최순애를 이미 알고 있는 범주 — 갠스 식으로 말하면 어떤 취향문화의 전형 — 로 처리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최순애를 이해할 수 없는 구체적 존재로 놓아두었습니다.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읽다가 불편해서 책을 덮은 적이 언제입니까. 그리고 그때 여러분은 그 불편함 앞에 머물렀습니까, 아니면 '내 취향이 아니야'라고 말하고 넘겼습니까.

* * *
7. 취향 너머의 세계

갠스는 모든 취향이 동등하다고 말했습니다. 부르디외는 그 동등함이 환상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강의에서 우리가 도달한 지점은 이것입니다. 문제는 취향들 사이의 위계가 아니라, 취향이라는 것 자체가 사유를 대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취향을 버리라는 말이 아닙니다. 취향이 사유의 끝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이건 내 취향이 아니에요'라고 말한 뒤에 마침표를 찍지 마십시오. 쉼표를 찍으십시오. 그리고 물어보십시오. 이 작품이 내게 불편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 불편함이 나의 어떤 전제를 건드리는가. 내가 보고 싶지 않은 것은 무엇이고,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

이 질문들 앞에서 '좋다/싫다'의 분류는 작동을 멈춥니다. 아비투스의 자동 반응이 잠시 정지합니다. 그리고 그 정지된 시간 안에서 — 앞선 강의에서 반복해서 말한 것처럼 — 구체적 타인의 존재가 들어옵니다. 기형도의 시가 보여주는 창백한 여공의 얼굴, 하성란의 소설이 들려주는 최순애의 한숨. 이것들은 여러분의 취향 안에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취향 바깥에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군주인 세계는 편안합니다. 그러나 그 세계에는 여러분밖에 없습니다. 문학은 여러분을 그 세계 밖으로 끌어내는 힘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작가가 되겠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도 그 편안한 세계 밖으로 끌어내겠다는 뜻입니다.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불편함이 누군가의 분류 프로그램을 멈추게 하고, 그 멈춘 자리에서 세상에 실제로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비로소 들어올 수 있다면, 그것이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입니다.

11

취향 바깥의 인물 합평 정리

취향 바깥의 인물

합평 정리 강의
"낯선 사람"과 "이미 타자화된 사람"은 다르다
뉴스페이퍼 창작 아카데미
6부 구성
1부. 여러분의 작품을 돌아봅니다
먼저, 세 작품이 공통으로 잘한 것

합평에서 이미 이야기했지만, 정리하고 넘어갑니다.

세 작품 모두 금지 조건을 형식적으로는 지켰습니다. 범주 명칭을 쓰지 않았고, "슬펐다" "외로웠다"를 쓰지 않았고, 마지막에 교훈을 달지 않았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보여주기의 규칙을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특히 감각 묘사에서 좋은 시도들이 있었습니다.

작품 1: 수박 주스, 정치인의 아침

"까드득 까득. 귀를 타고 머리를 울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오로지 나만이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얼음을 깨무는 소리가 이 인물만의 사적인 감각으로 처리된 것이 좋았습니다. 설거지 소리의 "달그락"과 빈 컵의 "달그락"이 겹쳐지는 것도 의도가 보이는 배치였습니다.

작품 2: 노래방, 성매매 여성의 밤
"나는 웃으며 그를 바라본다."

이 한 문장이 이 작품에서 가장 강한 문장이었습니다. 직전까지 뱃속이 울렁거리고 심장이 쿵쿵 뛰는데, 다음 행동이 웃음입니다. 몸의 반응과 표면의 행동 사이의 간극. 이것이 감정 단어 없이 감정의 구조를 보여주는 것의 좋은 예입니다.

작품 3: 물, 엘리베이터 청소 아주머니
"락스 통을 들었다 놨다 하는 소리 / 텅, 텅"

락스를 쓸지 말지 망설이는 행위가 소리로만 전달된 것이 좋았습니다. "띠링"이라는 엘리베이터 소리 하나로 장면을 전환한 것도 깔끔했습니다.

그런데, 세 작품 모두 같은 곳에서 멈췄습니다

질문을 하나 던지겠습니다.

여러분이 고른 인물은 정말로 "취향 바깥"에 있는 사람이었습니까?

돌아봅시다. 세 작품의 인물은 각각 정치인, 성매매 여성, 청소 노동자입니다.

이 사람들은 낯선 사람이 아닙니다. 이 사람들은 이미 수없이 재현된 사람들입니다. 드라마에서, 다큐멘터리에서, 사회 고발 기사에서, 영화에서. 여러분이 이 인물들을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다고 생각했겠지만, 사실 여러분의 머릿속에는 이미 이 인물들의 이미지가 있었습니다. 그 이미지가 여러분의 글을 썼습니다.

이것이 오늘 강의의 핵심입니다: "낯선 사람"과 "이미 타자화된 사람"은 다릅니다.

2부. 낯섦과 타자화의 차이
왜 여러분은 그 인물을 골랐는가

과제는 "취향 바깥의 인물"을 요구했습니다. 여러분의 뇌는 이것을 어떻게 처리했을까요?

아마 이런 과정이었을 겁니다. "내 취향 바깥 → 내가 관심 없는 사람 → 나와 다른 사람 → 사회적으로 주변화된 사람." 이 연쇄가 자동으로 작동했을 겁니다. 그래서 정치인이 나오고, 성매매 여성이 나오고, 청소 노동자가 나옵니다.

문제는, 이 자동 연쇄 자체가 이미 분류라는 것입니다.

"취향 바깥 = 사회적 약자 또는 사회적 타자"라는 등식이 여러분의 머릿속에서 작동한 겁니다. 그런데 이 등식은 여러분이 만든 것이 아닙니다.

부르디외: 아비투스와 취향의 구조

지난 강의에서 피에르 부르디외를 이야기했습니다. 부르디외는 취향이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라 사회적 조건의 산물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시다.

부르디외의 핵심 개념 중 하나가 "아비투스"입니다. 아비투스란 우리가 세계를 인지하고 행동하는 방식을 구조화하는, 체화된 성향 체계입니다. 쉽게 말하면,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채 세계를 분류하는 방식입니다.

여러분이 "취향 바깥의 인물"을 떠올렸을 때, 아비투스가 작동했습니다. 여러분의 사회적 위치, 대학에 진학하려는, 문예창작을 공부하는, 특정 세대에 속한 사람이라는 위치가 "타자"를 특정한 방향으로 상상하게 만든 겁니다. 그 방향이란, 미디어가 이미 "타자"로 재현해놓은 사람들을 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설이 생깁니다. 여러분은 "내가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사람"을 쓰려고 했지만, 실제로 쓴 것은 "내가 이미 이미지를 갖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미지가 있으니까 쓸 수 있었던 겁니다. 진짜로 상상해본 적 없는 사람은 쓸 수 없어서 고르지 못한 겁니다.

스튜어트 홀: 재현의 정치학

문화 이론가 스튜어트 홀은 재현이 단순한 반영이 아니라 의미의 생산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집단을 특정한 방식으로 반복 재현하면, 그 재현이 현실처럼 작동합니다.

여러분이 "취향 바깥의 인물"로 성매매 여성을 떠올린 것은 여러분의 자유로운 선택이 아닙니다. 미디어가 "사회의 그늘"을 재현하는 방식이 여러분의 상상력을 미리 구조화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구조 안에서 선택한 겁니다.

3부. 말할 수 없는 자와 바라보는 자
스피박: 하위주체는 말할 수 있는가

가야트리 스피박은 1988년에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하위주체는 말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단순히 물리적으로 말할 수 있느냐는 것이 아닙니다. 하위주체의 말이 기존 권력 구조 안에서 "들릴 수 있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스피박이 말하는 하위주체란, 지배적인 담론 체계 안에서 자기 자신을 대표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말할 수 없음"이 당사자의 무능력 때문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는 점입니다. 하위주체가 말을 해도, 그 말은 지배 담론의 틀 안에서 번역되고, 왜곡되고, 소비됩니다.

이것을 여러분의 작품에 적용해봅시다.

여러분이 성매매 여성의 3분을 썼을 때, 여러분은 그 인물을 "대신 말하게" 한 겁니다. 이것은 선의에서 나온 행위입니다. 그러나 스피박의 질문을 따라가면, 문제가 보입니다. 여러분이 그 인물을 대신 말하게 하는 순간, 그 인물은 여러분의 언어, 여러분의 감수성, 여러분의 서사 구조 안에 놓입니다. 그 인물이 자기 자신의 언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문예창작을 공부하는 여러분의 문학적 틀 안에서 재현되는 겁니다.

스피박이 경고하는 것은 "쓰지 말라"가 아닙니다. "대신 말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쓰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위주체를 대신 말할 때, 두 가지 위험이 있습니다. 첫째, 그 인물을 여러분의 윤리적 감수성을 증명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것. 둘째, 그 인물의 경험을 여러분이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번역함으로써 실제 경험의 질감을 지우는 것. 두 번째 위험이 더 교묘하고 더 흔합니다.

재현의 폭력: 선의의 함정

여기서 중요한 구분을 하나 더 합시다. 재현에는 두 종류의 폭력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악의적 재현입니다. 혐오, 희화화, 고정관념의 강화. 이것은 알아보기 쉽습니다.

두 번째는 선의적 재현의 폭력입니다. 연민, 공감, 대변. 이것은 알아보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작품 2(노래방)를 다시 봅시다. 이 작품은 악의적 재현이 아닙니다. 오히려 매우 섬세하고, 감각적이고, 이 인물의 몸에 가까이 다가가려는 진지한 시도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진지함이 문제를 만듭니다. 이 작품을 읽은 독자는 무엇을 느낍니까? 아마 "충격", "안타까움", "인간에 대한 연민" 같은 것을 느낄 겁니다. 그리고 그 감정을 느낀 후에 독자는 자기 자신에 대해 "나는 이런 현실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다"라고 확인합니다.

이것이 스피박이 말하는 구조적 문제입니다. 하위주체의 경험이 지배 집단의 윤리적 자기 확인의 재료로 소비되는 것. 글을 쓴 여러분도, 글을 읽는 독자도, 그 인물의 실제 경험에는 한 발짝도 다가가지 못한 채, 다가갔다는 감정만 갖게 되는 것.

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는 것에 관하여

수전 손택은 2003년 저서에서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는 것은 어떤 행위인가? 그 바라봄은 연대인가, 소비인가?

손택의 논의를 문학 창작의 맥락으로 가져옵시다. 여러분이 "취향 바깥의 인물"을 쓸 때, 여러분은 타인의 삶을 바라보는 위치에 서게 됩니다. 여기서 손택이 짚는 핵심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첫 번째 문제: 고통의 스펙터클

손택은 고통의 이미지가 반복 소비되면 두 가지 결과를 낳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무감각화입니다. 너무 많이 보아서 더 이상 반응하지 않게 되는 것. 다른 하나는, 이것이 더 중요한데, 고통의 이미지가 관람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작품 2를 다시 봅시다. 이 작품의 감각 묘사는 뛰어납니다. 담배 냄새, 미러볼의 색, 혀의 촉감, 침의 온도. 그런데 이 묘사의 뛰어남 자체가 문제를 만듭니다. 묘사가 뛰어날수록, 독자의 감각적 체험이 강렬할수록, 이것은 "경험"이 아니라 "관람"에 가까워집니다. 독자는 이 인물의 몸을 감각적으로 경험하지만, 그 경험은 안전합니다. 책을 덮으면 끝나니까요.

손택이 말하는 것은, 이 "안전한 강렬함"이 오히려 진짜 이해를 막는다는 것입니다. 강렬한 감각적 경험을 했다는 것이 그 인물을 이해했다는 것과 같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일 수 있습니다. 감각적 충격이 사유를 대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문제: 바라보는 자의 위치

손택은 또한 이렇게 묻습니다.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는 "나"는 누구인가? 그 바라봄의 행위 자체에 이미 권력 관계가 내재해 있지 않은가?

이것을 여러분의 과제에 적용하면 이렇게 됩니다. "취향 바깥의 인물"을 쓰는 여러분은 바라보는 자입니다. 바라봄을 당하는 인물은 바라봄의 대상입니다. 이 관계는 대칭적이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쓸 수 있고, 그 인물은 쓸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 인물을 선택할 수 있지만, 그 인물은 여러분에게 선택되었다는 사실조차 모릅니다.

이 비대칭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식한다고 해서 비대칭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인식하지 못한 채 쓰면, 여러분은 그 인물을 대상화하면서도 자신이 공감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됩니다.

손택이 제안하는 태도

손택은 타인의 고통 앞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태도가 "겸손"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도덕적 겸손이 아닙니다. 인식론적 겸손입니다. "나는 이 사람의 경험을 모른다"는 인정. "나의 바라봄은 한계가 있다"는 자각.

문학에서 이 겸손은 어떤 형태를 취합니까? 다 쓰지 않는 것입니다. 독자에게 완전한 감각적 경험을 제공하려는 욕망을 절제하는 것입니다. 빈 곳을 남겨두는 것입니다. 그 빈 곳이 독자에게 "나는 이 사람을 모른다"는 느낌을 주는 것입니다.

과제의 자기 점검 질문을 다시 봅시다. "모르는 것이 아는 것보다 많다는 느낌을 받았는가?" 이 질문은 손택의 인식론적 겸손과 정확히 같은 자리에 있습니다.

4부. 클리셰의 구조를 해부합니다
재현의 축적이 클리셰를 만든다

클리셰는 거짓이 아닙니다. 클리셰는 한때 발견이었던 것의 반복입니다.

누군가 처음으로 청소 노동자의 하루를 썼을 때, 그것은 발견이었습니다. 누군가 처음으로 성매매 여성의 감각을 묘사했을 때, 그것은 문학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발견이 반복되면, 형식이 됩니다. 형식이 축적되면, 독자는 장면을 읽기 전에 이미 알고 있습니다. "아, 이런 이야기구나." 이 "아, 이런 이야기구나"가 클리셰입니다.

여러분의 작품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작품은 이미 존재하는 재현의 축적 위에 서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실력이 아니라 선택입니다. 인물 선택에서 이미 클리셰가 시작된 겁니다.

"사회적 타자"와 "인식적 공백"

구분을 하나 만들겠습니다.

사회적 타자: 사회 구조 안에서 주변화된 위치에 있는 사람. 이 사람들에 대한 서사는 이미 존재합니다. 다큐멘터리, 르포, 사회 고발 소설, 뉴스. 이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방식으로만 보이는" 사람들입니다.

인식적 공백: 아무런 서사도 부여되지 않은 존재. 극적이지 않고, 재현되지 않았고, 누구의 연민도 분노도 끌지 않는 사람. 말 그대로 여러분의 인식 체계에 구멍으로 존재하는 사람입니다.

과제 안내문에 있던 예시를 다시 봅시다. 새벽 4시 재래시장 생선 장수, 결혼식장 축가 트로트 가수, 공사장 앞 교통 정리원. 이 사람들은 사회적 약자라서 예시에 든 것이 아닙니다. 이 사람들은 서사가 없어서 예시에 든 것입니다. 영화에 나오지 않고, 다큐멘터리 주인공이 되지 않고, 누구의 SNS 피드에도 등장하지 않는 사람들.

각 작품에서 클리셰가 작동한 지점
작품 1: 수박 주스

이 작품의 정치인은 안온한 아침, 헌신적인 아내, 넥타이, 보좌관의 전화로 구성됩니다. 이것은 정치인의 아침이 아니라 "정치인의 아침"이라는 이미지입니다. 이 장면에서 정치인만의 고유한 감각, 정치인이기 때문에 느끼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내와 남편이라는 관계의 일반적인 따뜻함만 있습니다. 이 장면의 주인공을 의사로, 변호사로, 회사원으로 바꿔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작품 2: 노래방

이 작품은 감각 묘사가 가장 뛰어났습니다. 그러나 이 인물이 놓인 상황 자체가 이미 하나의 장르입니다. 성착취 서사는 영화에, 소설에, 르포에 수없이 존재합니다. 이 작품이 그 장르의 관습을 따르고 있지는 않지만, 인물 선택 자체가 이미 "사회적 타자를 통해 충격을 전달하겠다"는 전략 위에 서 있습니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이 인물은 여러분의 "취향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감수성이 가장 강하게 반응하는 영역에 있습니다. 문예창작을 공부하는 사람이 사회적 약자의 고통을 서사화하는 것. 이것은 취향 바깥이 아니라 취향의 정중앙입니다. 순문학이 이 영역을 반복적으로 다루어왔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이것은 오히려 가장 익숙한 소재입니다.

작품 3: 물

청소 노동자의 묵묵한 노동, 무시하는 주민. 이것은 공익 광고의 서사 구조입니다. "안녕하냐는 말을 튕겨내는 사람"이라는 한 줄이 이 구조를 확정합니다. 닦아도 안 지워지는 얼룩과 인사를 튕겨내는 에어팟의 대비. 이 대비를 만드는 순간, 이 시는 관찰이 아니라 메시지가 됩니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이미 존재하는 것입니다.

5부. 그러면 어떻게 써야 하는가
스피박과 손택을 창작에 적용하기

지금까지의 이론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부르디외: 여러분의 인물 선택은 자유롭지 않다. 아비투스가 구조화한다.

스튜어트 홀: 기존 재현이 여러분의 상상력을 미리 채운다.

스피박: 타자를 대신 말하는 것은 구조적 위험을 수반한다.

손택: 타인의 삶을 바라보는 것 자체에 권력 관계가 있다.

이 네 가지를 알고 나면, "쓸 수 없는 것 아닌가"라는 질문이 나올 수 있습니다. 아닙니다. 쓸 수 있습니다. 다만 방법이 달라져야 합니다.

이제부터 방법을 이야기합니다. 원칙만 말하면 공허해지니까, 같은 인물을 두 가지 방식으로 쓴 예문을 보면서 가겠습니다. 하나는 클리셰에 빠진 글이고, 다른 하나는 빠져나온 글입니다. 차이가 어디에서 생기는지를 직접 확인하십시오.

인식적 공백을 찾는 방법
방법 1: 극적이지 않은 사람을 고르십시오

여러분이 떠올린 인물이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면, 그 인물은 이미 서사화된 인물입니다. 대신, 다큐멘터리의 배경에 스쳐 지나가는 사람을 고르십시오.

예를 들어봅시다. 결혼식장에서 축가를 부르는 트로트 가수. 이 사람의 3분을 쓴다고 합시다. 이 사람에 대한 기존 서사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영화에 나오지 않습니다. 다큐멘터리 주인공이 되지 않습니다. 이 사람이 축가를 부르기 직전 3분. 대기실에서 목을 풀고 있는지, 화장실 거울 앞에서 넥타이를 고치고 있는지, 휴대폰으로 다음 일정을 확인하고 있는지. 여러분은 전혀 모릅니다. 이미지가 없습니다. 그때 비로소 관찰과 상상이 시작됩니다.

방법 2: "왜 이 사람을 골랐지?"를 자문하십시오

인물을 떠올렸을 때, 즉시 자문하십시오. "나는 이 사람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가?" 만약 연민, 분노, 죄책감, 동정 같은 감정이 이미 있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이 사람을 이미 분류했다는 뜻입니다. 기존 재현이 여러분에게 심어놓은 감정입니다.

진짜 취향 바깥의 인물에 대해서는 아무 감정이 없습니다. 관심조차 없습니다. 그 "관심 없음"이 정확히 출발점입니다.

방법 3: 직업이 아니라 동작에서 시작하십시오

"청소 노동자"를 떠올리면 클리셰가 따라옵니다. 대신, 동작에서 시작하십시오. 여러분이 어제 본 어떤 동작. 횡단보도에서 깃발을 흔들던 손,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데우는 동안 유리문 밖을 보던 눈,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카트를 밀던 발. 그 동작의 주인을 따라가십시오.

직업에서 시작하면 범주가 먼저 옵니다. 동작에서 시작하면 감각이 먼저 옵니다. 이 순서의 차이가 클리셰와 관찰의 차이입니다.

방법 4: 다 쓰지 마십시오

이것은 손택에게서 가져온 방법입니다. 여러분이 이 인물에 대해 "안다"고 느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쓰지 마십시오. 그 "앎"은 대부분 기존 재현에서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여러분이 모르는 것만 쓰십시오. 이 사람의 손이 무엇을 만지고 있는지는 관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는 모릅니다. 그 모름을 그대로 두십시오.

모름을 그대로 두면 빈 곳이 생깁니다. 그 빈 곳이 독자에게 불편함을 줍니다. 그 불편함이 "이 사람에 대해 모르는 것이 아는 것보다 많다"는 느낌입니다. 그것이 문학입니다.

예문으로 봅니다: 같은 인물, 두 가지 글

지금까지 네 가지 방법을 말했습니다. 이제 이것이 실제로 글에서 어떤 차이를 만드는지 봅시다. 같은 인물을 두 번 씁니다. 한 번은 클리셰에 빠진 채로, 한 번은 빠져나온 채로. 여러분이 직접 비교하면서 읽으십시오.

예문 1. 공사장 앞 교통 정리원
클리셰 버전

한여름 볕 아래서 그는 하루 종일 깃발을 흔들었다. 아무도 그를 쳐다보지 않았다. 차들은 그의 앞을 빠르게 지나쳤고, 먼지가 얼굴에 달라붙었다. 땀이 헬멧 안쪽을 타고 눈으로 흘러내렸지만, 닦을 틈이 없었다. 그는 묵묵히 깃발을 흔들었다. 사람들은 그가 없으면 이 길을 지나갈 수 없다는 것을 모른다. 그의 형광 조끼는 땀으로 색이 바랬다.

무엇이 문제인가:

이 글은 "보이지 않는 노동자"라는 기존 서사를 그대로 반복합니다. "아무도 쳐다보지 않았다", "묵묵히", "사람들은 모른다". 이 문장들은 관찰이 아니라 공익 광고의 내레이션입니다. 이 사람의 고유한 3분이 아니라, "교통 정리원 일반"의 이미지입니다. 작품 3(물)에서 "안녕하냐는 말을 튕겨내는 사람"이 했던 것과 같은 작동 방식입니다. 독자는 이 글을 읽기 전에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읽고 나서도 새로 아는 것이 없습니다.

다시 쓴 버전

깃발 봉이 손바닥의 같은 자리를 눌러, 굳은살 위에 또 굳은살이 올라와 있었다. 오른손으로 봉을 잡고, 왼손은 주머니 안에서 껌 포장지를 만지작거렸다. 스피아민트. 아까 씹다 뱉은 건데, 접어서 다시 포장지에 넣었다. 버릴 데가 없었다. 11시 47분. 점심 교대까지 13분. 트럭 한 대가 서행하다 멈추고, 조수석 창문이 내려갔다. 안에서 팔 하나가 나와 손가락으로 왼쪽을 가리켰다. 그는 깃발을 세워 차를 멈추고, 그 팔에게 오른쪽을 가리켰다. 팔이 들어갔다. 창문이 올라갔다. 트럭이 오른쪽으로 틀었다. 왼손이 주머니 안에서 껌 포장지의 모서리를 접었다 폈다.

무엇이 달라졌는가:

"아무도 쳐다보지 않았다"가 사라졌습니다. 대신 이 사람의 손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가 있습니다. 굳은살의 촉각, 껌 포장지의 촉각, "11시 47분"이라는 구체적 시간. 이 사람은 "묵묵히 견디는 노동자"가 아니라, 점심 교대까지 13분을 세고 있는 사람입니다. 트럭 조수석의 "팔"도 중요합니다. 이 사람의 시점에서 운전자는 사람이 아니라 창문에서 나온 팔입니다. 이것이 이 인물의 고유한 감각입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나면, 이 사람에 대해 모르는 것이 아는 것보다 많습니다. 껌은 왜 버리지 않고 접어서 넣었는지, 점심에 무엇을 먹을지, 교대 후에 어디로 가는지.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 빈 곳이 열려 있습니다.

예문 2. 새벽 재래시장 생선 좌판
클리셰 버전

새벽 4시, 시장은 아직 어두웠다. 그녀는 차가운 물에 손을 담가 생선을 씻었다. 손은 이미 트고 갈라져 있었다. 수십 년을 이 자리에서 버텨온 손이었다. 얼음 위에 생선을 가지런히 놓으면서, 오늘도 하루가 시작되었다. 아무도 오지 않는 새벽, 그녀는 혼자서 좌판을 열었다. 형광등이 켜지고 비늘이 빛났다.

무엇이 문제인가:

"트고 갈라진 손", "수십 년을 버텨온", "아무도 오지 않는 새벽". 이것은 인간극장의 내레이션입니다. 이 글이 쓰고 있는 것은 한 사람의 3분이 아니라 "서민의 고단한 새벽"이라는 이미지입니다. "수십 년을 버텨온 손"이라는 문장은 특히 문제입니다. 이것은 이 3분의 시간 바깥으로 튀어나가서 이 인물의 삶 전체를 요약하려는 서술이고, 그 요약은 연민을 유발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금지 3(교훈을 넣지 말 것)을 형식적으로는 안 어겼지만, 서사의 방향 자체가 교훈을 향해 있습니다.

다시 쓴 버전

스티로폼 박스의 테이프를 뜯자, 칼이 비닐을 그으며 삐 하고 울었다. 얼음 사이에서 갈치 열두 마리가 나왔다. 한 마리가 꼬리 쪽으로 살짝 휘어 있어서, 그것을 맨 아래에 깔았다. 나머지는 머리를 왼쪽으로 맞춰 늘어놓았다. 아홉 마리를 놓자 한 줄이 찼다. 전화기가 울렸다. 액정에 '수산'이라고 떴다. 전화를 받으며 왼손으로 열 번째 갈치를 집었는데, 손가락 사이로 얼음물이 흘러 고무장갑 안으로 들어갔다. 차가운 물이 손목까지 올라오는 동안, 전화 너머에서 오늘 우럭 없다는 말이 들렸다. 끊고 나서 고무장갑을 벗어 안을 털었다. 물이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지며 얼음 가루가 하얗게 흩어졌다. 갈치 한 마리가 남았다. 열두 번째. 놓을 자리가 애매했다. 비스듬히 걸쳐 놓으면 머리 방향이 안 맞고, 두 번째 줄을 시작하자니 줄이 허전했다. 잠깐 들고 있다가, 첫 줄 맨 끝에 살짝 겹쳐 놓았다.

무엇이 달라졌는가:

"서민의 고단한 새벽"이 사라졌습니다. 대신 갈치 열두 마리를 배열하는 3분이 있습니다. 이 글에서 주목할 것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구체적 숫자입니다. "생선을 놓았다"가 아니라 "갈치 열두 마리", "아홉 마리를 놓자 한 줄이 찼다", "열 번째를 집었다." 숫자가 있으면 범주가 해체됩니다. "생선 장수"가 아니라 갈치 열두 마리를 다루고 있는 한 사람이 됩니다.

둘째, 이 사람의 고유한 판단이 있습니다. 휘어진 갈치를 맨 아래에 까는 것, 머리 방향을 왼쪽으로 맞추는 것, 열두 번째를 겹쳐 놓는 것. 이것은 이 사람만의 기준입니다. 왜 왼쪽인지, 왜 겹쳐 놓았는지, 글은 설명하지 않습니다. 독자는 모릅니다. 그 모름이 이 사람을 한 개인으로 만듭니다.

셋째, 감정이 없습니다. "차가운 물이 손목까지 올라오는" 것은 촉각이지 고통이 아닙니다. 이 글은 이 사람이 힘든지 안 힘든지에 관심이 없습니다. 이 사람이 갈치를 어떻게 놓는지에 관심이 있습니다. 이 무관심이 역설적으로 이 사람을 가장 존중하는 태도입니다. 이 사람은 여러분의 연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예문 3. 결혼식장 축가 트로트 가수 (시)
클리셰 버전
그는 남의 행복을 위해 노래했다
수백 번의 결혼식을 지나왔지만
그의 왼손 약지에는 반지가 없었다
마이크를 쥔 손은 언제나 웃음을 지었고
노래가 끝나면 박수 속에 뒷문으로 사라졌다
아무도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 않았다
그는 봉투 하나를 받아 들고
주차장에서 시동을 걸었다
무엇이 문제인가:

"남의 행복을 위해 노래했다", "반지가 없었다", "아무도 이름을 기억하지 않았다". 이것은 시가 아니라 서사화된 안타까움입니다. "반지가 없다"는 디테일은 고독과 결핍의 기호로 작동하고, "뒷문으로 사라졌다"는 비가시성의 은유입니다. 이 시는 이 사람을 관찰한 것이 아니라, "이름 없는 존재의 쓸쓸함"이라는 기존 서사를 축가 가수라는 소재에 씌운 것입니다.

다시 쓴 버전
신부 측 하객석 뒤편 복도
양복 상의 단추 두 번째를 잠그다 풀었다
잠그면 배가 당기고 풀면 벌어진다
휴대폰에 가사를 띄웠다
"그대 내 품에" 32포인트
스크롤을 한 번 내려 확인하고 올렸다
복도 끝 정수기에서 종이컵에 물을 받았다
한 모금 마시고 나머지를 버렸다
종이컵을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쓰레기통이 안 보였다
안쪽에서 사회자 목소리가 울렸다
축가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는 단추를 잠갔다
무엇이 달라졌는가:

"남의 행복을 위해"가 사라졌습니다. "반지가 없다"도 사라졌습니다. 대신 단추가 있고, 가사를 확인하는 휴대폰 화면이 있고, 종이컵이 있습니다.

이 시의 핵심은 단추입니다. "잠그면 배가 당기고 풀면 벌어진다". 이 한 줄이 이 사람의 몸과 이 양복의 관계를 말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줄에서 그는 단추를 잠급니다. 왜 잠갔는지 시는 말하지 않습니다. 배가 당기는 걸 아는데도 잠근 겁니다. 그 이유는 독자가 상상해야 합니다. 무대에 서니까? 예의? 습관? 모릅니다. 그 모름이 열려 있습니다.

또 하나, "그대 내 품에" 32포인트라는 디테일. 가사를 32포인트로 키워놨다는 것은 이 사람이 가사를 외우지 못했거나, 외웠더라도 확인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이것은 이 노래가 이 사람의 노래가 아니라 주문받은 노래라는 것을 시가 말하지 않고 보여주는 것입니다. 종이컵을 접어 주머니에 넣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쓰레기통이 안 보여서 넣은 것인지, 이 사람의 습관인지, 글은 말하지 않습니다. 그저 동작만 있습니다.

세 예문에서 공통으로 작동하는 것

클리셰 버전과 다시 쓴 버전의 차이를 정리합니다.

첫째, 출발점이 다릅니다. 클리셰 버전은 범주(교통 정리원, 생선 장수, 축가 가수)에서 출발해서 그 범주에 어울리는 이미지를 채웁니다. 다시 쓴 버전은 동작(깃발 봉의 굳은살, 갈치의 배열, 단추의 잠금)에서 출발해서 그 동작의 주인을 따라갑니다.

둘째, 숫자와 고유명사가 있습니다. "생선"이 아니라 "갈치 열두 마리". "노래"가 아니라 "그대 내 품에, 32포인트". "점심때"가 아니라 "11시 47분, 교대까지 13분". 숫자와 고유명사는 범주를 해체합니다. 범주는 일반적인 것이고, 숫자는 구체적인 것입니다. 구체적인 것은 분류할 수 없습니다.

셋째, 이 사람의 고유한 판단이 있습니다. 휘어진 갈치를 아래에 까는 것, 껌 포장지를 접어서 다시 넣는 것, 단추를 잠그는 것. 이 판단들은 설명되지 않습니다. 왜 그렇게 하는지 글이 말해주지 않습니다. 설명되지 않는 판단은 독자에게 "이 사람에 대해 내가 모르는 것이 있다"는 느낌을 줍니다.

넷째, 감정도 의미도 부여하지 않습니다. 클리셰 버전에는 "아무도 쳐다보지 않았다", "아무도 이름을 기억하지 않았다" 같은 문장이 있습니다. 이 문장들은 이 인물의 감각이 아니라 작가의 해석입니다. 다시 쓴 버전에는 이런 해석이 없습니다. 있는 것은 손, 물, 생선, 단추, 시간뿐입니다. 해석의 부재가 이 인물을 작가의 메시지로부터 해방시킵니다.

다섯째, 빈 곳이 있습니다. 다시 쓴 버전을 읽고 나면, 이 사람에 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교통 정리원은 점심에 무엇을 먹습니까? 모릅니다. 생선 장수는 왜 머리를 왼쪽으로 맞춥니까? 모릅니다. 축가 가수는 이 노래를 좋아합니까? 모릅니다. 이 모름이 열려 있는 것, 그것이 보여주기의 최종 목표입니다.

6부. 정리와 과제
오늘의 핵심

첫째, "낯선 사람"과 "이미 타자화된 사람"은 다릅니다. 전자는 서사가 없는 사람이고, 후자는 이미 서사가 있는 사람입니다.

둘째, 여러분이 "취향 바깥"이라고 느끼는 것 중 상당 부분은 취향의 변형입니다. 문예창작을 공부하는 사람이 사회적 약자의 고통을 서사화하는 것은 취향 바깥이 아니라 취향의 정중앙입니다.

셋째, 인물 선택에서 이미 클리셰가 시작됩니다. 아무리 묘사가 뛰어나도, 인물 자체가 기존 재현의 반복이면, 독자는 장면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분류합니다.

넷째, 타자를 대신 쓰는 행위에는 구조적 위험이 있습니다. 스피박이 말하는 "대신 말하기"의 문제, 손택이 말하는 "바라봄의 권력 관계"를 인식한 상태에서 쓰십시오.

다섯째, 진짜 취향 바깥은 극적이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관심이 가지 않는 곳, 감정이 일어나지 않는 곳, 서사가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곳. 그곳에서 시작하십시오.

여섯째, 다 쓰지 마십시오. 모르는 것을 모르는 채로 두십시오. 그 빈 곳이 문학의 자리입니다.

과제: "취향 바깥의 인물" 재도전

같은 과제를 다시 냅니다. "취향 바깥의 인물"의 3분을 쓰되, 이전 과제의 세 가지 금지는 그대로 유지합니다.

형식: 꽁트(원고지 5매, 약 1,500자) 또는 시(20행 이내). 자유 선택.

추가 조건 1. 검색 테스트: 여러분이 고른 인물을 검색하십시오. 네이버에, 유튜브에, 넷플릭스에. 그 인물에 대한 콘텐츠가 이미 존재한다면, 다큐멘터리가 있다면, 영화가 있다면, 르포가 있다면, 그 인물은 버리십시오. 검색 결과가 거의 없는 사람, 콘텐츠화되지 않은 사람을 찾으십시오.

추가 조건 2. 동작에서 시작할 것: 직업이나 범주가 아니라, 여러분이 실제로 목격한 구체적 동작 하나에서 출발하십시오. 그 동작의 주인이 누구인지 따라가면서 쓰십시오.

추가 조건 3. 감정 자문: 쓰기 전에 스스로 물으십시오. "나는 이 사람에 대해 이미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가?" 연민, 분노, 동정이 이미 있다면, 그 인물은 의심하십시오.

이 조건들이 불편하다면, 그 불편함이 정확히 오늘 강의의 요점입니다.

자기 점검 질문 (작품과 함께 제출)

1. 나는 이 인물을 어디에서 처음 보았는가? (실제 경험인가, 미디어에서 본 것인가?)

2. 이 인물을 검색했을 때 무엇이 나왔는가?

3. 이 인물에 대해 쓰면서 "안다"고 느낀 것이 있었는가? 그 "앎"은 어디에서 왔는가?

4. 이 작품에서 내가 의도적으로 쓰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